메뉴 건너뛰기

close

첫번째 급식판. 밥과 국, 김치와 단호박 범벅, 그리고 소 갈비찜과 골뱅이 소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급식판. 밥과 국, 김치와 단호박 범벅, 그리고 소 갈비찜과 골뱅이 소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오늘 저는 '참 슬픈' 어떤 식판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먼저 첫 번째 식판 사진입니다. 흑미 쌀밥에 콩나물국, 그리고 소 갈비찜에 골뱅이 소면, 김치와 단호박 반찬입니다. 참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두번째 식판. 밥과 국, 그리고 김치와 단호박 벅범은 첫번째 메뉴와 같습니다. 그러나 소 갈비찜 대신 탕수육이 있을 뿐 골뱅이 소면은 아예 없습니다.
 두번째 식판. 밥과 국, 그리고 김치와 단호박 벅범은 첫번째 메뉴와 같습니다. 그러나 소 갈비찜 대신 탕수육이 있을 뿐 골뱅이 소면은 아예 없습니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두 번째 식판. 일단 식판 재질부터 좀 다릅니다. 첫 번째 식판은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이건 스테인리스 식판입니다. 담긴 음식도 다릅니다. 밥과 국, 그리고 김치와 단호박은 같습니다. 그런데 소 갈비찜 대신 탕수육이 있고, 골뱅이 소면은 없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후식도 있습니다. 첫 번째 메뉴에서는 아주 먹음직스럽게 큰 후무사 자두가 두 개, 그리고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시원한 수정과가 항아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메뉴는 달랐습니다.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식혜를 하나씩 나눠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럼 이제 묻고 싶습니다. 두 식단의 가격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그리고 이 식판의 주인은 각각 누구였을까요? 두 식판 뒤에 숨은 비밀,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급식으로 들여다본 학교의 속살

지난 2011년 당시 저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감사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곽노현 후보가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후 단행한 일련의 개혁 조치를 통해서였지요.

교육청의 감사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불신의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불신이 해소되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전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곽노현 교육감은 시민감사관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사상 최초로 외부 감사 전문가를 공개 채용했습니다. 저도 이를 통해 감사관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지요.

덕분에 저는 서울특별시 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내부를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도 교육청 감사에 적지 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차 경험을 통해 일부 불신이 너무 지나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육청 감사가 비위 사실 적발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권한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장 나갔던 곳의 감사 결과가 미진할 경우 감사관실 내부에서 엄청난 질타를 받습니다.

물론 공무원 중 일부가 여전히 비판 받을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전, 잘못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구태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방형 직위로 채용된 감사관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바로잡아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육청 감사관실에서 근무하며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것은 학교 출장 감사였습니다. 학교는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학생의 안전과 안정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통제가 불가피한 곳이지요. 저는 업무차 학교를 방문하면서 현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출장 감사 기간은 통상 주 5일. 이 기간 동안 감사 담당자들은 해당 학교의 운영 전반에 대한 종합 감사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사입니다. 거의 매주 낯선 지역의 학교로 가니 괜찮은 식당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애를 먹곤 합니다.

그때 저는 감사 담당 동료에게 "학교 감사를 나가면 그중 한 끼는 학교 급식을 먹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 급식이 실제로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하고, 각 학교 급식의 수준은 어떤지 확인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동료들은 고맙게도 모두 찬성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매주 월요일 점심 때마다 학교 행정실로 해당 급식비를 입금한 후 급식을 먹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모 사립 여자 고등학교 식당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마치 대기업 식당처럼 깨끗했습니다. 또 식단을 골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한식, 분식, 양식 등 세 가지 메뉴를 만들어 학생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들 "이런 학교라면 다시 학생이 되어 다니고 싶다"는 말을 꺼낼 정도였습니다.

또 다른 사립 고등학교는 단품 메뉴였지만 음식의 질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은 감자탕이 나왔는데, '이것이 학교 식당에서 나온 밥인가' 싶었습니다. 참 푸짐하고 맛깔났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대부분 학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급식 수준. 그런 급식을 먹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팠습니다. 밥 한 주걱, 국 하나, 그리고 멸치 조림이나 콩자반, 채소 무침이나 김치. 이런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에게 밥 한 끼는 소중합니다. 군인과 마찬가지로 통제된 공간에 갇힌 아이들에게 밥은 단순한 식사에 그치지 않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학교 급식의 질과 맛, 그리고 청결도는 학생들의 주요한 민원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 고등학교의 부끄러운 급식

이런 학교 급식과 관련하여 제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앞서 언급한 두 식판에 대한 기억입니다.

2011년 여름, 감사를 나가면 식사의 한 끼는 꼭 학교 급식을 먹기로 한 후 제일 처음 갔던 서울 모 사립 고등학교에서의 일입니다. 학교 행정실로 급식을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급식비를 학교 행정실로 송금했습니다. 2011년 당시 통상 한 끼 급식비는 3800원에서 4200원 수준. 교직원 급식비는 학생들이 내는 급식비보다 몇백 원 정도 더 비쌌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하러 가는데 행정실장이 '식당 위치를 알려준다'며 찾아왔습니다. 첫날이라 학내 구조를 모르니 고맙게 생각하고 따라갔습니다. 우리를 데려간 곳은 학생 식당 안의 또 다른 작은 식당. 알고 보니 교직원 전용 식당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 학생과 교직원 식당을 따로 운영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적지 않은 학교에서 교직원 식당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급식으로 나온 음식도 달랐습니다. 음식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주 맛나 보이는 소 갈비찜, 그리고 골뱅이 소면과 단호박 벅범, 김치와 과일, 수정과까지. 우리가 낸 돈에 비해 너무 잘 차려진 음식에 당황했습니다. '교직원 식당이라 달리 나오나 보다' 싶었지만, 사립 고등학교에서 이 문제까지 간섭할 권한은 없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래서 "행정실장님, 저희는 그냥 나가서 학생들과 같은 밥을 먹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 학교는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급식이 똑같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드시면 됩니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좋은 급식을 주다니, 정말 좋은 학교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순진하다고 할까요, 아니면 바보라고 할까요. 행정실장님이 그렇게 당당히 말씀하시니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저는 그야말로 미안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저는 학생들의 배식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급식이 늘 오늘처럼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실장님이 저를 자꾸 막았습니다. '지금은 배식 중이라 복잡하니 나중에 보시라'는 취지였습니다.

순간 저는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학생들의 밥, 참담했습니다. 소갈비 찜 대신 나온 초라한 탕수육, 골뱅이 소면이 없는 급식. 그 밥을 앞에 두고 '저 아저씨는 누군데 저렇게 서 있지'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 앞에서 저는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같이 먹는 밥'이 정답

흔히 선생님을 일컬어 '군사부일체'라 부르며 높이 예우해야 한다고 합니다. 임금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느 부모가 자기 입에는 좋은 음식을 넣고, 자식 입에는 그보다 못한 음식을 먹인단 말입니까.

그날 제가 느낀 부끄러움과 충격은 지금까지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 좋은 학교 급식이라고 생각해서 찍은 교직원 급식 사진과 학생들이 받은 급식 사진을 들고 행정실장을 찾아갔습니다. "왜 사실과 다른 말로 우리를 속였냐"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행정실장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습니다. '국과 밥, 김치와 단호박 범벅은 같고 소 갈비찜은 모든 학생에게 해 줄 수가 없어 탕수육으로 바꿨는데, 학생들은 탕수육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봤냐'고 하니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던 것은 두 번째 답변이었습니다. "그럼 메뉴 중에 골뱅이 소면은 아예 대체 음식도 없던데, 그건 왜 그런 것이냐"고 물으니 "학생과 교직원이 내는 급식비가 달라 원래 교직원에게는 반찬이 하나 더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학생과 교직원 급식비는 얼마나 차이 나나요?"

그리고 듣게 된 답변, 300원이었습니다. 급식비 300원 차이로 한쪽은 소 갈비찜에 골뱅이 소면, 그리고 고급 자두인 후무사 2개와 수정과를 맘껏 먹었습니다. 반면 학생들은 탕수육 몇 조각에 작은 식혜를 먹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300원 차이 때문에 교직원과 학생 급식이 이렇게 다르다면, 차라리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300원씩 더 걷고 소갈비 찜을 주시면 안 되나요?"

그러자 행정실장님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건 학생들 돈으로 교직원들이 고기 먹은 것밖에 안된다"며 시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급식이 개선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말로는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 했는지 다시 그 학교에 가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이 식판 사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과연 이것이 교육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해결 방안은 하나입니다.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똑같은 급식을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급식은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직원용 음식만 따로 조리하거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밥을 먹는 선생님들은 "급식 맛이 너무 없다"는 학생들의 푸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먹는 문제로 차별이 생기는 부끄러운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은 2011년 어느 여름날의 일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코웃음 나오는 일이길 기대합니다. 학생들이 "그건 옛날 이야기고 지금은 안 그래요"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 날이 오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태그:#학교 급식, #교육청 감사 개혁
댓글3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