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총체적인 면을 아우르지 못하고 단면만을 보면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총체적인 면을 아우르지 못하고 단면만을 보면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 pexels

관련사진보기


지난 주 점심시간에 매주 주 2회 우리 학교로 순회 오시는 상담 선생님과 우연히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선생님께서 그동안 경험하신 상담 관련 일화를 듣게 됐다.

[이야기①] 지능이 낮다며 특수 학급으로 배속된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상담을 하다 보니, 아이는 지능이 낮은 게 아니고 어릴 적 가정이 해체되면서 충분히 지적 자극을 받을만한 상황에 놓여 있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학교 수업에 따라가는 것도 힘겹게 되자 아이는 점점 학력이 뒤쳐졌고 부지불식간에 지능이 낮은 아이로 생각돼, 아무런 의심 없이 몇 년 동안 특수교육을 받았다는 거다. 

안타까운 아이의 사연을 들으면서 총체적인 면을 아우르지 못하고 단면만을 보면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아찔한 일인지 다시 절감했다. 그리고 사회가 발달하고 정교해질수록, 시스템이 효율화되고 공고화되면서 반대 급부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도 늘어나는 것 같다.  

[이야기②] 영라(가명)는 밝고 명랑한 아이로 늘 해맑은 웃음이 가시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상담을 하고 싶다고 찾아와서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영라의 고민은 아이들과의 관계 때문에 시작됐다. 자신은 원래 밝고 명랑한 성격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학급 아이들이 외향적인 아이들이 많다보니,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대로 친구들에게 다가갔다가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갈 것 같아 계속 밝게 보이려고 노력해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거다.  

[이야기③] 성호(가명)는 교실에 들어가는 게 압박감이 들고 답답하다며 찾아오는 아이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 중인데,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거의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보건실에서 침상휴식을 하고 있다. 성호에게 두렵다고 도망치면 그게 자꾸 습관이 될 수 있다고 때로는 다그치기도 하는데,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무섭다는 게 성호가 느끼는 사실인데, 왜 무서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안 되느냐,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나면 나조차도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  

[이야기④] 강희(가명)는 꼼꼼하고 야무진데다 세심하기까지 해서 교우관계도 나무랄 데 없고, 공부도 성실하게 잘 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던 아이였다. 그러므로 별안간 수업 도중에 보건실로 내려와 온 몸이 굳는 것 같다며 덜덜 떨며 울 때,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수업 시간조차도 웅성거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아이들이 많은 학급에서 1년 여를 지내면서 남몰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신학기, 새롭게 편성된 학급은 괜찮은지 물었더니 다행히 아이들이 다들 차분해서 뭔가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우연히 에바 일루즈가 쓴 <사랑은 왜 아픈가>를 뒤적이다 일부 단락이 눈에 띄었다. 감정 사회학의 대가인 저자의 주장은 사회가 발달하면서 자유가 많아진 것 같지만, 실상은 특정 상황에서는 특정 감정을 가지도록 강요되고 있고, 사랑 역시 자본주의 상품으로 시장을 통해 매개되면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 못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아픔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또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감정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학자의 진단은 아이들에게도 일맥상통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간호사·승무원 등 감정노동자들의 아픔은 차츰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검사 후 병원 또는 상담기관행'으로 단순해지고 있다.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미친 사람 취급 받지 않기 위해서, 모범생으로 보이기 위해서 아이들도 저마다 '아픔'을 감추고 버티고 있는 형국인데, 지금의 학교와 정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아프면 안 된다'는 명제 아래에서 '아픔의 진실'은 들춰내기가 참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실, #보건교사, #감정노동, #학교보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