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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20대 총선 당선자들이 14일 오전 중구 중앙공원 충혼탑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하갑 최인호, 남구을 박재호, 부산진갑 김영춘, 북강서갑 전재수, 연제 김해영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20대 총선 당선자들이 14일 오전 중구 중앙공원 충혼탑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하갑 최인호, 남구을 박재호, 부산진갑 김영춘, 북강서갑 전재수, 연제 김해영 당선자.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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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난 13일 오후 6시 TV에서 총선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부산 최대 격전지라던 북·강서갑 전재수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부산에서만 7곳 경합. 4곳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박빙 우세가 점쳐진다는 예측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죠.

한동안 여기저기서 "7개 맞냐?"라든가 "몇 %포인트로 앞서냐" 따위의 이야기가 돌림노래처럼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물론 저도 그 틈에 끼어있었죠. 부산에서 몇 번의 선거를 취재했지만, 야당이 이렇게나 선전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사실 주변에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부산 더민주 1위가 호남 전체보다 많다는 거야?"

의아한 듯 타사 기자가 물어왔습니다.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 전체에서 더민주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1위로 나온 곳은 3곳. 부산은 4곳이었죠. 사실 이때까지도 "출구조사는 원래 잘 틀린다" 또는 "막판에 보수층 표는 결집하게 되어있다"는 기존의 정치 상식이 기자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상식은 오후 8시를 넘어가며 깨지기 시작합니다. 전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사방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진갑 김영춘 쪽도 난리 났어요", "박재호 (남구을) 후보는 벌써 당선 세리머니 준비한다는데요", "연제구, 더민주로 넘어갑니다", "사하갑 최인호 후보 당선 소감 받으신 분 있나요?" 조금 전까지 잡담을 주고받던 기자들이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고 타자 치는 기계라도 되는 듯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급하게 써서 날린 부산 지역 당선자 기사만 5꼭지. 부랴부랴 이동하는 각 후보의 선거 캠프는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근처만 가도 함성이 건물 밖으로 새 나왔습니다. 새벽을 넘겨 일하는 기자들이 "세상에 부산에서, 세상에 부산에서" 계속 혼잣말을 되뇌었죠. 젊은 기자들보다 나이든 선배 기자들의 반응이 더 격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부산 유권자 무시했던 새누리의 뒤늦은 후회

14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선거결과 관련 합동 기자회견에서 당선자와 낙선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새누리당은 "시민 여러분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던 점 사과드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소통과 실천으로 시민들의 편에 서서 일하겠다"고 밝혔다.
▲ 고개 숙인 부산 새누리 14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선거결과 관련 합동 기자회견에서 당선자와 낙선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새누리당은 "시민 여러분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던 점 사과드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소통과 실천으로 시민들의 편에 서서 일하겠다"고 밝혔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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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당의 텃밭이라고 불렸던 부산은 어쩌다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우선 많은 사람은 새누리당의 자만을 이유로 듭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부산 현역의원 교체율은 '0' 명입니다. 불출마한 정의화 국회의장,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문대성 의원을 빼놓고는 모두 공천을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전국에서 공천 학살로까지 불렸던 현역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부산은 고요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일었지만 김정훈 새누리당 부산시당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대다수 민의를 반영한 공천"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내건 선거 문구가 '초심'이었습니다. '초심'을 강조했지만 '민심'은 전혀 몰랐던 셈입니다. (관련기사: 부산 현역 교체율 '0' 비판에 '힘있는 중진론')

같은 시간 더민주는 새로운 후보를 찾는데 골몰합니다. '히든카드'는 단연 연제구의 김해영 당선자입니다. '친박' 실세를 자부했던, 3선 중진의 힘을 공언했던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의 맞상대였습니다. '흙수저' 신화를 내세운 39살의 젊은 정치 신인은 실세 정치인을 누르고 당선하는 이변을 만들어냅니다.

14일 오후에는 선거결과에 대한 새누리당 부산시당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훈 선대위원장은 뒤늦게야 "시민 여러분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말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관련기사: 고개 숙인 부산 새누리 "더 분골쇄신").

장수생들의 반란... 묵묵히 지역구 닦아온 후보들 빛났다

13일 저녁 부산 북강서갑 전재수 당선자(더불어민주당)가 북구 구포동 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3일 저녁 부산 북강서갑 전재수 당선자(더불어민주당)가 북구 구포동 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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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새누리당의 '실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전까지 지역 유권자에게 야당 후보는 "선거 때 어디선가 내려와서 표만 받고 낙선하면 사라지는 사람"으로 통했지만 그건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더민주 전재수 북·강서갑 당선자는 한 지역에서 국회의원만 3번째 도전이었습니다. 구청장 선거까지면 4번째죠. 남구을 박재호 당선자는 국회의원만 4번째 도전이었습니다. 최인호 당선자 역시 네 번째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두 번째 만에 부산진갑에서 당선한 김영춘 시당위원장은 빠른 편에 속할 듯합니다.

이들은 모두 해당 지역구에서 더민주의 당 지지율을 넘어서는 득표력을 보였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한번은 전재수 당선자가 유권자들을 만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적 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전 당선자는 유권자 중 반을 "형님"이라 불렀고, 그들은 전 당선자를 "재수야"라고 불렀습니다.

전 후보의 유세차가 지나가자 설거지하다가 고무장갑을 낀 채 달려 나와 손을 흔드는 식당 사장님을 보면서 저는 거대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야권의 꿈 '야도 부산'은 돌아온 걸까요?

14일 오전 부산 중앙공원 충혼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총선 당선자들을 취재진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14일 오전 부산 중앙공원 충혼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총선 당선자들을 취재진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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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젊은 유권자들은 기억도 못 하는 1990년 3당 합당 이전의 부산이 일정 부분 회복되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당이 텃밭이라 자부할만한 곳은 찾기 어렵습니다. 야당 후보와 1:1로 맞붙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여당 후보는 이제 부산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야당의 약진이 영원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번에 확인했듯 민심은 자칫 소홀했던 권력에는 가혹한 회초리를 내려칩니다. 내 삶이 나아질 정치로 야당을 택했던 유권자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14일 오전 더민주 당선자들은 중구 중앙공원의 충혼탑과 민주공원을 차례로 방문해 참배했습니다. 감사를 표시했고, 새로운 정치를 다짐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처럼 한 명의 유권자로서 국민을 위하겠다는 그들의 각오를 지켜볼 겁니다. 그리고 한 명의 기자로서 이제 권력이 된 사람들이 국민과 한 약속을 얼마나 지켜나가는지 기록하겠습니다.


태그:#총선,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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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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