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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투표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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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도 끝났고, 개표도 끝났다. 결과가 나오면 지지하던 후보와 정당에 따라 반응은 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이번 선거 결과가 매우 '건강'하다는 데에 동의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먼저 16년 만에 '여대야소'의 구도가 깨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16년간 우리의 경제, 사회, 교육, 안보 상황이 나아졌는가? 우리들 주머니 사정은 나아졌는가? 그렇지 않은데도 선거 때마다 똑같은 얼굴들이 꽃다발을 목에 건 채 웃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잘하면 뽑아주고, 못하면 내쫓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박근혜 대통령마저 선거에 앞서 '물갈이'를 주문하지 않았던가? 권력은 자신이 휘둘러 놓고, 그 결과에 대한 '심판'은 야당에게 하라고 국민에게 요구하는 독특한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로써 4월 내내 옷장 안으로 들어갈 줄 몰랐던 대통령의 '빨간 옷'이 무안해졌고, 그 기세등등하던 '진박'은 패배로 찌그러진 '진 박'이 되고 말았다. 선거 결과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란다.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선거결과가 도대체 얼마 만인가.

무소불위의 완력을 자랑하던 거대 여당은 제 2당으로 주저 앉았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정치적 기반을 잃었을 뿐 아니라,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게 정당 득표율에서도 앞서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당이 혁신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어떤 운명이 될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모든 정당을 긴장시켰다면, 선거는 제 역할을 한 셈이다.

비록 선거는 끝났지만, 아쉬워하지 마시라. 볼거리는 아직 충분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글에서 몇 가지 구경거리를 알려드리려고 한다.

관전포인트 1: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패배 논평

4.13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 대표실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4.13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 대표실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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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밤, 여당의 패색이 짙어지자, 새누리당의 안형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며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초심"이니, "국민들을 따뜻하게 껴안지 못했다"느니 하는 모호한 이야기만 할 뿐,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는 최경환 의원 역시 13일 새누리당의 패배를 점친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하고 개선할 점은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14일) 패배가 현실이 되자 그는 "뼈를 깎는 각오로 반성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체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심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새누리당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오로지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 뒤 "국민이 바라는 변화와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정말 흥미로운 논평은 청와대에서 나왔다. 14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총선 결과를 언급하며 "20대 국회가 민생을 책임지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국민들의 이 같은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선거 결과가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구체적' 환멸감은 이미 지난해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경제개혁연구소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왜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는지가 명백히 드러난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을 때, 23%가 넘는 국민이 낙제 점수인 'F'를 주었다. 'A'를 준 사람은 5.3%에 지나지 않았고, 최하점수인 'D'와 'F'를 합한 비율이 무려 41%에 달했다. 1년 전인 2014년에도 같은 조사를 했었다. 당시 'F' 점수를 매긴 국민은 9.4%였다. 불과 1년 사이에 경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경제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고 우기면서, 느닷없이 '태극기 달기'와 '교과서 국정화'에 돌진했다. 입만 열면 '경제 살리기'를 외치던 정부가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이데올로기에서 찾은 것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그리 '느닷없는' 정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그것을 해결할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통계수치를 '마사지'하고, 친정부 언론을 통해 대통령의 '외교성과' 같은 것을 자랑하고, '바른 교과서'로 국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1세기 한국에서 70년대 '아버지 시절'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확히 말해 '실패'는 아니다. 실패란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민들의 경제난을 완화할 정책을 마련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인 대다수가 겪는 빈곤과 고용불안정은 박근혜 정부가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라. 월급쟁이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게 만드는 법안이다. 박 대통령은 책상을 주먹으로 치고, 거리 서명을 유도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격하게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그 와중에도 소줏값과 담뱃값은 올렸다.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고, 서민의 몫까지 부유층에 몰아주는 데 있어서 그는 매우 '유능'하고 집요했다.

앞의 '국민의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민이 이 사실을 아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무려 72.8%가 정부의 정책이 '대기업 위주'라고 말했고, 이보다 높은 77.4%가 현 정부의 세금정책이 '부유층에 유리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경제연구원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무려 94.1%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이유로 고용 불안(42.2%), 가계부채 증가(29.2%), 그리고 소득 감소(22.5%)를 꼽았다. '경제행복 예측지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고요건 완화와 임금 삭감을 '민생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국민이 늘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현명하게 지도자를 골라온 것은 아니지만, 제 목을 겨누는 칼을 반길 만큼 어리석은 바보들은 아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준엄한 심판'을 믿는다면, 이제까지 국민들을 '엿먹여 온' 경제 정책부터 되돌릴 일이다. 당연히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비정규직 폐지, '부자 감세' 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보수당의 집권 목적은 서민이 아니라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서민을 괴롭히기 위해 권력을 잡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게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려고 할 때 다수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관전포인트 2 : 언론의 몰골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언론의 '물타기 보도'다. 모두가 잘 알듯, 한국의 지상파, 보수신문, 종합편성 케이블(종편) 채널은 아예 대놓고 새누리당 편을 들었다. 물론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제 한국 언론은 선거 결과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 뻔한 '오만', '소통,' '공천' 이야기에서부터 구체적 내용 빠진 '심판'까지 뻔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이런 시도는 개표가 끝나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벌써 주옥같은 작품이 여럿 등장했다. 예컨대 연합의 '호남 높고 영남 낮은 투표율, 與 참패 전주곡이었나' 같은 기사가 그렇다.  

"지역별로 보면 야권의 텃밭인 호남권의 투표율이 높고 여권의 안방인 영남이 낮은 '서고동저(西高東低)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같은 투표율은 공천 파동 등 새누리당의 내홍에 실망한 여당 지지층들이 대거 투표를 포기했지만, 야당 지지층은 위기감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 결과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환멸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여당의 내홍에 대한 실망감과 야권 분열의 위기감이 맞물린 결과였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언론의 전방위적인 공세에도 놀랄 만한 성과를 일구어 냈으니, 뿌듯해할 만한 자격이 있다.

마지막으로 보너스 관전 포인트 하나를 알려 드린다. 혹시 주말에 영화를 볼 계획이 있다면 <클로버 10번지>를 고려해 보시기를 권한다. 스릴러, 드라마, 공상과학 장르를 짜맞춰 놓은 듯한 이 영화는 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보너스 관전 포인트 :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 한국 찾기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한 장면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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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고 가던 여성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다. 깨어 보니, 침대에 누워 있고, 붕대 감긴 발 한쪽이 사슬에 묶여 있다. 지하실로 보이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때 나이 든 사내가 밥을 들고 나타나는데, 그는 자기가 여자를 '구해줬다'고 주장한다. 알 수 없는 세력이 침입해 와서 생화학 공격으로 공기를 오염시킨 탓에 밖의 사람들은 전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도 문을 여는 순간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먹을 것을 주고, 소일할 오락거리도 주지만, 함께 지내기는 너무 끔찍한 사람이다. 고압적으로 여자 일상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려 들고, '믿을 수 없다'며 화장실을 가고 목욕을 할 때도 커튼 뒤에서 지켜본다. 당신이라면 밖에 존재한다는 '위협'을 믿고 그 삶에 적응하겠는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끔찍한 삶에서 벗어나겠는가?

정부의 부유층 감세에 항의하며 사람답게 살 임금을 요구하니, 그러면 끔찍한 경제위기가 찾아온다고 겁을 준다. 그 말을 믿고 있자니, 이제 임금을 깎고 아무 때나 해고하겠다고 한다. 자유를 요구하니, 정부는 북한이라는 위협을 들이대며 참으라고 하고, 거기에 순응하니 이제 화장실과 욕탕도 (그리고 휴대폰과 이메일도) 들여다 보겠다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가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황당함으로 따지면 우리 사회도 만만치 않다.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통령이 자기가 집권한 결과 발생한 일에 대해 '야당을 심판해달라'고 주문한 것을 보자. '유체이탈'이 대통령 화법을 지칭하는 말이 될 만큼 우리나라도 꽤나 '괴기'스럽다.


태그:#박근혜, #총선, #클로버필드 1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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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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