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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덴 조 중심전각. 에르덴 조의 핵심을 이루는 세 개의 중심전각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몽골 한 중앙의 고도(古都) 하르호린(Kharkhorin)에 서 있었다. 옛 몽골의 왕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채 왕궁의 유적 위에는 거대한 불교사원 에르덴 조(Erdene Zuu) 사원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에르덴 조 사원의 핵심을 이루는 전각인 3개의 전각을 향해 걸어갔다. 북쪽의 주운 조(Zuun zuu), 중앙의 걸 조(Gol zuu), 남쪽의 바론 조(Baruun zuu)가 나란히 줄을 서서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가장 먼저 남쪽의 바론 조에 들어가 보았다.

전각 안에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과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져 있다. 나란히 서 있는 이 3개의 전각 안에는 모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는데, 묘하게도 석가모니불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론 조의 석가모니불은 석가모니 80세 때의 모습을 하고 있다. 80세는 석가모니가 입적할 당시의 나이이니 이 불상은 석가모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에르덴 조에서는 부처님의 생애를 3단계로 나누어서 북쪽 주운 조에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인 14세 때의 모습을, 중앙의 걸 조는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35세 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본존불들은 각각 석가모니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 노년 시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바론 조의 석가모니불은 전혀 80세의 석가모니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몽골 친구에게 이 불상이 80세가 된 석가모니가 과연 맞냐고 물어보았다.
중심 전각의 불상. 3개의 전각 안에는 14, 35, 80세를 상징하는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다. ⓒ 노시경
"열반을 앞둔 석가모니의 얼굴이 너무 포동포동한 데다가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입가에 주름만을 만든 것 같아. 80세의 석가모니 얼굴이 너무 천진난만한 얼굴이고, 얼굴에 종교적 수행을 거친 깊이가 보이지 않는데?"
"혹시 이 불상이 14세의 석가모니불 아니야?"

하지만 내가 들고 간 몽골 안내서에도 이 불상이 80세의 석가모니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아무래도 청나라의 공격 당시 사원이 파괴되고 그 이후에도 사회주의 국가 당시에 불교를 배척하면서 몽골 불교 역사가 단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상은 그 나라 불교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데 몽골에서는 오랜 시간 불교 역사의 단절 속에 불상을 만드는 내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에르덴 조 사원의 대웅전 격인 전각인 걸 조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걸 조는 나중에 만들어진 남과 북의 전각과 비교해서 전각 내부의 세계도 화려하고 기이하다. 걸 조에 들어서자마자 바론 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불상이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에르덴 조의 중심전각이기에 모시는 본존불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모신 것 같다. 이 불상은 마치 몽골의 깊은 초원 속에서 사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걸 조에 모셔진 35세의 석가모니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듯 그윽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걸 조 내부에는 기이한 불교설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본존불 앞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잔뜩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호법존(護法尊) 앞에서 나의 눈길이 멈췄다.
슈리 데비. 불법을 위협하는 악귀를 죽이는 수호상이다. ⓒ 노시경
"이 조각상이 법당 안의 유일한 여성 수호상이라고? 전혀 여성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이렇게 거구의 몸집이 되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조각상은 힌두교의 가장 인기 있는 여신인 슈리 데비(Shri Devi)야. 인간 사회의 유지를 위해 변신을 하는 이 여신은 이곳 몽골 땅에 와서 불교의 수호상이 되었지."

몽골 친구의 이야기는 불교 설화의 신비의 세계로 이어졌다.

"부처님은 불법을 위협하는 악귀를 죽이기 위해 여러 호법신을 보냈지. 그런데 모두 악귀를 죽이지 못하고 차례대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 마지막에 남게 된 호법신이 바로 슈리 데비야. 그녀는 악귀와 결혼하여 악귀의 마음을 산 후 방심한 악귀를 죽이는 데에 성공하였지. 슈리 데비는 자기가 탄 노새의 등 위에 악귀의 가죽을 덮고 그 위에 앉아서 돌아왔다고 해. 게다가 슈리 데비는 악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죽였는데 그 아이를 입에 물고 돌아왔지."
악귀. 슈리 데비에게 죽임을 당한 악귀의 껍질이 슈리 데비의 노새 안장에 깔려 있다. ⓒ 노시경
악귀의 가죽 위에 앉아 있는 슈리 데비의 모습이 법당 안에 그대로 재현되어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법당 안 슈리 데비는 만화에서 나온 듯한 노새를 타고 있고, 노새의 몸통 위에는 악귀의 얼굴 가죽과 몸통 가죽이 덮여 있다. 설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니 노새의 모습이 너무나 징그럽다. 불법 수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내용 자체가 우리가 아는 불교의 이야기와는 다른 살벌한 이야기들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걸 조 내부에 있으니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걸 조 내부에는 벽에 아래로 길게 거는 티베트 탱화(幀畵)인 탕카(Thangka)가 수많은 불상 뒤쪽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탕카는 모두 석가모니가 고행 속에 수도하던 산 속 동굴과 깊은 숲 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걸 조 내부의 석가모니는 지금 산 속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석가모니가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에르덴 조 사원 북쪽의 주운 조 전각에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인 14세 때의 석가모니 불상이 있다. 석가모니의 어릴 때의 모습이라 볼 살이 통통하고 얼굴이 큰 편이지만 14세보다는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전각 내부는 허름한 모습이지만 근대 이전의 과거 불교사원 내부는 이렇게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 같다.
세 쌍둥이. 세 분의 석가모니불을 만나고 나오는 순간 세 쌍둥이를 만났다. ⓒ 노시경
주운 조 전각 앞을 지나는데 한 젊은 엄마가 데리고 온 세 쌍둥이들을 만났다. 넓은 국토에 인구가 많지 않은 몽골에서 특히 이 세 쌍둥이는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을 것 같다. 세 쌍둥이들은 똑같이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상의를 입고 사이 좋게 손을 잡고 다니고 있다. 옆에 계신 할아버지는 젊은 엄마의 핸드백을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봐서 친정 아버지인 것 같다. 가족들이 소박하게 관광지로 소풍을 다니던 19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겹쳐져서 자꾸 눈이 갔다.

그런데 순간 머리 속을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에르덴 조의 주요 전각이 남북선상에 세 개가 나란히 있고 그 세 개의 전각에 나이가 다른 세 분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이 앉아 계시는데 그 앞에서 세 쌍둥이를 만난 것이다. 전각에 모셔진 부처님의 외모는 다르지만 결국 이 세 쌍둥이 같이 다 같은 부처님이라는 뜻이 아닐까? 세 분의 부처님 같이 달라 보이는 삼라만상의 외형은 눈에 보이는 일순간의 형상일 뿐이라는 가르침인 것 같다.
게르 사원. 게르 안에서 불교 신자가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다. ⓒ 노시경
스님 설법. 노스님이 사원을 찾은 가족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다. ⓒ 노시경
에르덴 조 사원 안에 들어온 몽골 불교신자들은 큰 게르로 만들어진 사원 안에 모두 모여 있다. 게르 사원 안에서 스님들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모두들 경건한 모습이다. 게르의 가장 안쪽에서는 노스님이 여러 가족을 앉혀 두고 설법을 하고 있다. 종교시설에서 인생의 가르침을 듣고 복을 구하는 모습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다름이 없다.

사원 안 가는 곳마다 수많은 몽골인들이 마음을 담아 불공을 드리고 있다. 불교 사찰의 기와건물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신자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하다. 얼굴 외모가 너무 비슷하여 한국사람인가 하고 다시 보면 유창한 몽골어를 하고 있는 몽골 사람들이다. 가끔 선글라스를 끼고 세련된 외모를 가진 이들도 유심히 보면 몽골인들이다. 국제화 시대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몽골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도 없다. 어느 나라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이토록 닮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원의 몽골인들. 사원 안에서 만난 몽골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정말 많이 닮았다. ⓒ 노시경
라쁘린 사원. 몽골의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 곳으로 수많은 스님들이 독경을 하고 있다. ⓒ 노시경
에르덴 조 사원의 북문 앞에는 다른 기와 전각과는 확연히 다른 라쁘린(Lawrin) 사원이 강한 햇살을 받으며 서 있다. 흰 칠을 한 벽돌건물에 군데군데 금빛이 화려한 이 이국적 건물은 티벳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이 사원은 들어갈 때 모자도 벗어야 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원래 몽골의 승가대학으로 몽골 불교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은 스님들이 열심히 수도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라쁘린 사원 내부까지 조심스럽게 들어가보았다. 흡사 영화 속의 수백 년 전 몽골 사원에 들어온 듯 사원 내부는 고풍스럽고 투박하다. 사원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고 사원 건물의 중심이 되는 가운데 방에는 붉은 장삼을 걸친 스님 수십 명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사원 내에는 고요함 속에 독경 소리만이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몽골의 불교신자들은 엄숙함 속에서 손을 모아 스님들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몽골여행을 하면서 초원과 가축들만을 접하다가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스님들을 보니 몽골의 면모가 새롭게 느껴진다.
사원의 서양 여행자. 사원 안에는 차분하게 유적지를 답사하는 서양인들이 많다. ⓒ 노시경
사원 내의 넓디 넓은 유적 터에는 서양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잦다. 이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살던 유럽의 옛 땅을 유린했던 몽골 제국의 근원지를 찾아보고 있다. 에르덴 조 사원을 찾은 서양인들은 사원 내의 전경을 동영상으로 담으며 바람 이는 잡초 더미 속의 유적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그들은 몽골 가이드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상세하게 물어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서양 여행객들은 언제 보아도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차분하게 유적지를 답사하는 여유가 있다.

에르덴 조 사원 밖으로 나가려는데 다시 눈 앞에 세 쌍둥이가 지나간다. 세 쌍둥이는 워낙 똑같이 생겨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세 쌍둥이들은 마치 자기들을 잊지 말라는 듯이 눈 앞에서 재미있게 어울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원의 북문 쪽으로 걸어갔다. 북문은 전체가 열려있지 않고 아래 부분의 쪽문만 열려 있었다. 문 밖에는 다시 몽골의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초원에는 푸른 초지만 펼쳐져 있었고, 그 초지는 아스라히 멀리 보이는 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하르호린, #에르덴 조 사원,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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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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