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규슈올레, 우레시노 코스
 규슈올레, 우레시노 코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올해 목표는 규슈올레 완주다. 17개 코스를 전부 걸어야지. 새 코스가 만들어지면 그것도 다 걸어야지. 이런 목표를 정했고, 기운차게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17개 코스를 한꺼번에 다 걸으면 좋지만, 도보여행은 가끔은 쉼표를 찍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여유가 닿을 때마다 몇 개 코스를 나눠서 걷기로 했다.

그 첫 출발로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규슈올레 7개 코스를 걸었다. 14박 15일 일정인데 고작 7개 코스밖에 걷지 않았느냐고? 물론 서두른다면 보름 일정 동안 10개 코스 이상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보여행을 할 때 속도를 지향하지 않는다.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걸으며 주변을 구경하면서 숨을 고르는 것이 도보여행의 참 매력이다. 그러니 규슈에 간 김에, 규슈올레를 걸으러 간 김에 일본 여행을 가도 평소에는 절대로 갈 일이 없는 올레 코스 주변 지역을 천천히 둘러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정을 여유롭게 넉넉히 잡았다.

덕분에 일정 중간에 이번에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새롭게 문을 연 후쿠오카 청과물 시장과 화장실 변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변기회사 '토토'를 견학할 수 있었다. 또  규슈의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돌아보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히라도 성, 가라쓰 성,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사가 성 혼마루 등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도 다 일정을 여유롭게 잡았기 때문이다. 도보여행이란 이렇게 하는 거지, 하면서 홀로 흐뭇해했다.

아, 규슈올레 완주 목표를 세우면서 그 앞에 단서를 달았다. '혼자 걷는'이다. 그것도 여자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번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하면서 만난 이들은 홀로 다니는 나를 보면서 꼭 물었다. 혼자 왔냐고? 홀로 여행하는 여자들이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여자 혼자 도보여행을 하는 건 흔하지 않은가 보다. 놀라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규슈올레 길 표시.
 규슈올레 길 표시.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이번에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홀로 걷는 도보여행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 나만의 속도로 걷는 것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을 혼자 걸으면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던데, 무섭기는커녕 호젓하고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너무 좋았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은 숲의 속삭임이었고, 이따금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늘이 내가 걷고 있는 것을 지켜본다는 신호였다. 그러니 무서울 턱이 있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질 수밖에 없지.

규슈올레가 처음 개장한 것은 2012년 2월 29일. 다케오 코스가 가장 처음 만들어졌다. 규슈올레는 대한민국에 도보 열풍을 불게 한 제주올레가 모태가 되어 탄생했다는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길게 설명하지 않으련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서 10년 넘게 일한 한국인 이유미씨가 제주올레를 보고, 규슈에 올레를 유치하고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2012년 2월 29일, 첫 번째 규슈올레 다케오 코스가 길을 연 뒤 지금까지 17개 코스로 늘었다. 앞으로도 계속 코스는 늘어날 예정이다.

17개 규슈올레는 규슈 전 지역에 흩어져 있다. 후쿠오카 현, 사가 현, 나가사키 현, 가고시마 현 등등에. 제주올레는 1코스부터 시작해서 21코스가 하나로 이어지지만 규슈올레는 지역 특성과 사정 때문에 이어지지 않고 하나씩 독립된 길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1개 코스를 걷고 다른 코스를 걸으려면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뒤따른다. 그 점이 제주올레를 걷는 것과 다른 매력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규슈올레를 걸으면서 규슈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므로.

내가 규슈올레를 처음 걸은 건 2014년 12월 하순이었다. 고양시 녹지과 직원들이 규슈올레 벤치마킹을 갈 때 운 좋게 동행할 수 있었다. 고양시에는 고양누리길이 있다. 도농복합지역인 고양시에 조성된 고양누리길은 도시와 농촌 지역 그리고 숲으로, 하천으로 이어지면서 한강과 북한산 등을 조망할 수 있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걷기 좋은 길이다. 그 때문에 도보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을 만들고 관리하는 고양시 녹지과 직원들이 규슈올레를 찾았고, 그때 그들과 함께 규슈올레 3개 코스를 걸었다. 이후 2차례 더 규슈올레를 걸을 기회가 있었고, 17개 코스 가운데 8개 코스를 걸었다. 하지만 혼자 걸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규슈올레 전 코스를 혼자 걸어야지, 작정했다. 이미 걸었던 길도 혼자 다시 걸을 생각이었다.

규슈올레 길 표시. 진홍색은 역 방향.
 규슈올레 길 표시. 진홍색은 역 방향.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규슈올레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 걷고 싶어지는 길이다. 규슈 전 지역에 흩어져 있어 지역 특성이 길마다 다르고,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달랐다. 그게 규슈올레 코스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흥미롭다. 그러니 걷는 느낌 또한 국내의 길을 걸을 때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규슈올레는 걸으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제주올레를 일본에 수출한 것이니까. 그래서 규슈뿐만 아니라 일본 전 지역에 '올레'가 조성돼 한국인들과 함께 일본인들도 걷는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익숙한 길 표시가 그런 마음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걸어보면 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인 건 언어였다. 일본어, 못 한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겨우 읽는 수준? 그래도 여행을 하다 보니 이유미씨 말대로 '서바이벌 일본어'가 늘었다. 길을 잃었을 때, 버스를 잘못 탔을 때, 전철을 갈아타는 방법을 역무원에게 물을 때, 호텔 프런트에 배낭을 맡길 때, 어찌 됐건 의사소통이 되더라는 얘기다.

그래도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히라도에서 광어정식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주방장 아저씨와 손짓, 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다음에 규슈올레를 걸으러 갈 때는 일본어를 배워서 가야겠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한 경험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자 여행기를 쓴다. 나처럼 홀로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여행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추억이 되기는커녕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리므로 내 기억에 오래 남겨두기 위해서.

이번 규슈올레 도보여행은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이유미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정, 교통편, 숙소 예약 등등. 덕분에 편하게 규슈올레를 즐길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유미씨의 친절하면서도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손을 내밀어 보기를 권한다.

규슈올레에 대한 보다 많은 깨알 정보가 필요하다면 손민호 기자의 <규슈올레>를 읽는 것도 좋다. 나 역시, 규슈올레 도보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 꼼꼼하게 읽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태그:#규슈올레, #도보여행, #일본, #규슈, #제주올레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