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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스시집에서 일한 지 1주일. 이곳의 시스템을 대략 알게 됐다. 13호주달러에서 시급이 시작된다. 6개월마다 1호주달러씩 인상. 그나마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16호주달러가 최고. 그 이상을 넘어가는 사람은 매니저와 주방 이모 정도다. 다시 말해 정식으로 채용되거나 10년 이상 근무해 일의 능률이 최고점을 찍어야 한다는 게다. 예외란 없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도 16호주달러

요리학교 출신이든 전기공 출신이든 딴 거 없다. 시급은 13호주달러에서 시작한다.
 요리학교 출신이든 전기공 출신이든 딴 거 없다. 시급은 13호주달러에서 시작한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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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규칙은 '르 꼬르동 블루' 출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르 꼬르동 블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 3개월마다 학비를 1만 달러 이상 내는 곳이란다. 그만큼 명성있고 교육비가 비싸다. 그곳에 다니는 동료도 시급 16호주달러를 받는다. 이 주방에서 13호주달러에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은 없다. 이 임금이 그나마 오른 것이란다.

"예전엔 10호주달러밖에 안 했어요. 그것에 비하면 나은 거죠."

처음 호주에 오는 사람들 상당수가 스시집에서 일한다. 스시집은 어디에 가나 있고, 사람을 항상 구하니까. 그만큼 나가는 사람도 많다.

"시간당 13호주달러에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일은 고되지만 15호주달러 받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셰어 마스터(셰어하는 하우스의 주인)는 커피 한잔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스시집은 저임금 착취에 가까워요. 스시집 사장은 '레인지 로버'를 끌고 다니는데 그게 어디서 나왔겠어요?"

그런데 왜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저임금인데다가 다른 데 가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딴 거 없다. 급해서 일을 시작한 거다.

"전 여기서 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말이죠."

슬쩍 옆구리를 찌르자 나오는 이야기. 갓 스무살 된 동료의 말이다. 그는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으로 호주에 왔다. 교육청에서 셰어비와 일자리 알선까지 받았다.

"원래 전기를 만지는 일을 했었어요. 고등학교도 전기 관련 학교를 나왔고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호주에서의 나날은 녹록지 않았다. 전기를 아무리 잘 알더라도 메인은 오지인(호주 현지인).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그저 서브로 일한단다.

"임금도 생각만큼 받지 못했죠. 그 프로그램도 3개월인가 했어요. 비자 기간은 남았는데 지원은 끊겼고….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 했죠."

급한 그가 찾은 곳은 스시집.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지 어언 4개월.

"여기 일이 저임금인 건 알죠. 가끔 1시간씩 늦게 퇴근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당장 돈 벌 수 있는데."

비자에 묶인 삶

'르 꼬르동 블루' 출신 동료는 어디를 가도 취업이 가능하다. 호주에서 요리사는 취업하기 가장 유리한 직종으로 꼽힌다. 요리사 자체가 힘든 직업이라 오지인들은 잘 선택을 안 한다고 한다. 특히 '르 꼬르동 블루' 같은 학교 출신들은 더욱 대접받는다고. 그런데 그는 스시집에서 일하고 있다.

"비자 때문이죠. 457비자라고 취업비자가 있어요. 그걸 받아야 영주권을 딸 수 있는데 여기 사장님이 해준다고 했거든요."

457비자는 경력은 없지만 필요한 인재라고 해 사장의 보증 아래 발급받을 수 있는 비자다. 이 비자로 2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영주권 받고 잘하다가 스시집도 하나 내준다고 했어요. 그거 믿고 일하는 거죠."

계약서도 없다. 그저 일을 하다 보면 사장이 해준다는 약속만 믿는 것. 믿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기도 많다고 한다.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지. 사람 속 알기가 쉬운 게 아니잖아."

호주에서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는 또 다른 친구의 말이다. 그래서 취업 사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저임금에 노동을 강요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비자를 위해서라면 감내해야 한다. 또 다른 동료도 마찬가지다. 에이전시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단다.

"여기 사장님이 착하다고 했거든요. 비자를 잘 내주는 편이라고. 에이전시에서 추천해서 왔어요."

그녀의 나이는 스물. 보다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돼 미리 영주권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녀도 '457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비자'의 힘

비자, 그것이 문제로다.
 비자, 그것이 문제로다.
ⓒ visitvictor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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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비자는 전가의 보도다. 영주권을 원하는 한인들에게 그것만큼 잘 먹히는 약점이 없다. 단 하나의 약속(457비자)을 믿고 온갖 수모를 감내한다. 중간에 배신당하더라도 하소연 할 곳조차 없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든 비자가 날아가면 그 기간이 한꺼번에 '무'(無)로 돌아간다.

"아는 형이 비자 약속까지 받은 적이 있어요. 거의 확실했죠."

그런데 그가 비자를 맡겨놨던 에이전시(비자를 관리하는 것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장기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에이전시에 업무를 위임한다, 일정수수료만 내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비자 연장이 안 됐다고 한다. 결국 그는 한국에 들어가자마자 호주로의 입국이 금지됐다. 사유는 불법체류.

"비자 약속받았던 가게에서 전부 날아갔죠. 그 세월이."

문득 그의 처지가 안쓰러워졌다. 모든 걸 거머쥘 기회가 날아갔을 때의 허무감.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비자로 인해 울고 웃는 곳.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 '갑'은 절대적이다. 요리학교 출신이 불합리해 보이는 주방에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영주권, #457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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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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