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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때 혁신적인 기술의 등장을 천재의 활약으로 요약하는 입장이 있다. 가령 서양사를 뒤흔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대해 논한다고 치자. 대부분의 경우 구텐베르크라는 인물과 그의 행적에 집중할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인쇄술 발명을 시도했는지, 구텐베르크의 인생사는 어떠하였는지, 구텐베르크는 얼마나 혁신적인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인쇄술 발명 이후에 일어난 사상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다. 인쇄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이 인쇄되었고, 그 출판물로 인해 다양한 사회 개혁과 사상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특정 과학기술을 활용한 인류의 문화에 주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역사는 혁신의 역사이다. 그 혁신을 어떻게 이루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능하다. 인쇄술과 관련한 과학 기술을 더듬어 올라가거나, 인쇄술 발명의 배경이 된 사회적 자원을 언급할 수도 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위해 선행적으로 필요했던 기술은 무엇인가? 제지술이다. 제지술이 있어야 인쇄술의 활용이 가능하다. 물론 제지술은 종이를 만들 원료가 필요하다.

제임스 버크, 커넥션. 살림. 2009.02.28
 제임스 버크, 커넥션. 살림. 2009.02.28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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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원료는 어디서 왔는가? 흑사병이다. 흑사병 덕분에 많은 사람이 죽자 그 옷을 종이로 재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그럼 그 옷은 어디서 왔는가? 12세기 말 수도원들이 자급자족을 목표로 방직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제임스 버크의 <커넥션>은 이런 식으로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에 기반하여 과학기술사를 조망한다.

'세상 일이 선형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변화는 거의 항상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연결은 우연으로 만들어진다. 사건의 결과를 예견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모일 때 산수의 규칙이 바뀌어서 1 더하기 1은 갑자기 3이 된다. 이것은 혁신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다. 그것이 일어날 때 결과는 항상 부분의 합 이상이다.  - 본문에서

이 책은 과거 영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커넥션>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주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사이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버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기술발달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천재의 기록이 아닌, 과거로부터의 연속성과 문화적 측면이다. 저자는 이러한 요소에 기반하여 과학기술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사회와 접점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연과 놀라움에 기반한다고 한다. 과학기술 간의 연결로 인한 발전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연결의 결과는 전혀 선형적이지 않으며, 결과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또한 저자는 과학기술을 변두리에 두고 믿음과 사상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거부한다. 오히려 그 반대가 옳다고 본다. 과학기술을 통한 새로운 발명과 혁신이 새로운 사상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역사에는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했던 사상의 전환이 있었음에도, 이를 간단히 믿음에 의한 역사적 진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본성상 기술 시대 이전의 믿음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귀중하게 간직했다. 이 신념들은 인간 존재의 중심에 예술과 철학을 놓고 과학과 기술은 변두리에 둔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전자가 인도하고 후자가 추종한다. 그러나 이 책이 보였듯이, 그 반대가 참이다. 기구가 없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우리는 단지 예술을 통해서만 통찰력과 미의 경험을 얻는다고 배우는가? 이것은 단지 우리 주위의 세계를 직접 관찰함으로써 얻는 무한히 깊은 경험의 제한되고 간접적인 표상일 뿐인데 말이다.' - 본문에서

과학기술사에 대해 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있다 해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꿈을 키워주기 위한 용도가 많은데, 이 책은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알차다. 과학기술사에 잘 알지 못하는 문과 대학생이나 일반인이라면 읽어봄직하다. 일부 장에서는 기술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그림 자료가 있어 참조하기에 좋다.


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살림(2009)


태그:#과학기술, #과학, #기술, #커넥션, #인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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