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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읍에 자리한 횡성여성농업인센터를 찾아가니, 그와 함께 밥상 나누고 눈빛 마주치며 일하는 든든한 벗들, 그리고 방과후 공부방이자 작은도서관을 장난기 가득 누비고 다니는 어린이들이 이곳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줬다. 여기서 얻는 원심력으로 여성농민(그에게는 '언니'들)과 함께 꿈꾸는 일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소장을 만났다.

결혼하고 고민할 것 없이 횡성 왔지만

횡성읍에 자리한 횡성여성농업인센터. 1층엔 쌀보리공부방과 작은도서관, 보리어린이집이 함께 있다.
▲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횡성읍에 자리한 횡성여성농업인센터. 1층엔 쌀보리공부방과 작은도서관, 보리어린이집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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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농활은, 사회변혁에 눈 뜬 학생들이 농민조직과 결합하고 농촌현장에 뛰어들게 하는 계기였다. 전라도에서 자신감이 붙은 학생들이 농민운동 사각지대인 강원도로 갔다가, 빨갱이 소리 들으면서 쫓겨나 그나마 '야성' 있는 횡성에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한영미 소장도 졸업하고 횡성에서 활동하는 남편과 1992년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당시는 현장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히 운동하러 가는 거였어요. 농촌 가면 농민운동 하는 거고…. 고민할 것 없이 오면서부터 농민이었고, 농민과 함께 활동하려 했지요."

공근면 마을에 들어가 꾸준한 여성농민회 활동의 결실로 2002년 횡성여성농업인센터를 열게 되었다.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 10년 동안 말도 조심스럽고, 잘난 척해서도 안 되고, 쭈뼛쭈뼛거렸죠. 그래도 어떤 활동 해보면 좋을까, 밑에 지방 농민회 활동하는 거 보면 나는 뭐하고 있나,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센터가 생기니까, 하고 싶은 활동 하면서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죠. 센터가 있기에 가능했어요."

한영미 소장 자녀들도 센터에서 함께 컸다고 한다.

"우리 애들도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기여서, 절실했어요. 농촌에 보육시설이 있어야 젊은 사람도 들어올 수 있다고, '면 단위 보육시설 확충'이 당시 전국여성농민회(전여농) 구호였어요."

그 일환으로 여성농업인육성법이 제정되어, 영유아보육사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센터를 기획하고, △ 어린이집 △ 방과후공부방 △ 여성농민 교육문화 △ 상담을 필수사업으로 맡았다. 처음에는 여성농업인센터를 시범사업으로 열고서 면마다 하나씩 늘려갈 계획이었지만, 지자체에서 정책을 받지 않아, 강원도에는 양구와 횡성 두 곳만 있게 되었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운영하는 보리어린이집에 막상 농업인 자녀는 많지 않지만, 대신 제대로 된 농산물로 급·간식을 주고 텃밭을 가꾸면서 농업적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집 정원 20명이 항상 차고, 부모님들도 한 번 들어오면 계속 믿고 보내준다고 한다.

"교사들이 정말 애쓰죠. 센터 교육 있을 때면 저녁에 다들 올라와서 들어요. 센터 사업은 두 배가 되고 도랑 군에서 지원 받는 9천만 원은 2002년부터 동일한데도, 자부담 들여서 10년 넘게 활동가들이 움직이면서 굳건하게 자리 잡아온 힘이 있어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여성농업인센터를 고리로 배우고 만난다.

"부모교육 강좌를 열면 횡성에서 처음이라 40~50명씩 모였어요. 끝나고 아쉬운 사람들이 남아서 계속공부 하고 '동화읽는어른모임'을 만들었죠."

그 외에도 인형극소모임 '꼼지락', 미디어동호회 '둥지', 염색과 바느질소모임 '한땀한땀 물빛고운', 식생활강사모임 '농가먹자', 다섯 개 동아리가 매주 모인다.

"강좌 열면 읍내 사는 사람들만 찾아오는데, 그러면 홍보도 보기 어려운 언니들(여성농민)은 본의 아니게 배제되잖아요. 그래서 어떤 강좌는 언니들을 콕 집어서 불러요. 농민회에서 글 쓰고 싶어 하던 언니 서너 명만 모셔놓고 생활글쓰기 강좌 한 적도 있어요."

공동경작으로 마음 모아가는 과정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한영미 소장.
▲ 한영미 소장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한영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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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성농업인센터 초기부터 지원받아온 사업들에 머무르지 않고, '남들이 하지 않고 여성농업인센터 정체성을 살려 우리 역량을 투여할 일이 뭘까?' 고민했다. 여성농업인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센터의 존재 이유가 되겠다며 2005년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었고', 언니들이 모여서 한과, 두부, 장류 같은 전통음식 전수에 도전했다.

토종곡식을 쪄서 말리고 조청 고아서 강정 한과를 만들어 파는 시도를 했다. 다음은 두부였다. 두부 만들어서 장날 팔고, 다음 장날에 또 콩 한 말로 두부 만들어 팔면서 배워가다가, 20명이 출자금을 모아 두부 가공 공장을 만들었다. 당시 (전여농)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영미님은, 식량주권 관련 교육을 하러 다니면서, 여성농민들이 만든 두부를 우선 구매해주는 네트워크'가 확산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쌀보리공부방에 걸려 있는 교육목표, '배워서 남 주자'
▲ 쌀보리공부방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쌀보리공부방에 걸려 있는 교육목표, '배워서 남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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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공장과 전국여성농민회, 전국여성연대가 뜻을 모아 지역농산물 제철꾸러미 '언니네텃밭'의 전신인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 텃밭'을 시작했다.

"2009년 4월 첫 꾸러미 보내고, GMO 옥수수 전분당, 광우병 파동 등으로 식량주권에 대한 소비자들 요구랑 맞으면서 언니네텃밭 사업이 활성화되었어요. 주류 농민운동 진영에서는 친환경농업도 가진 자를 위한 농사라고, 일부는 아직도 견고해요. 여성농민회가 주류 농민운동에 균열을 내고 식량주권 운동을 이렇게 끌고 가는 거죠."

한영미 소장은 횡성 공근면 오산리에서 70~40대 소농 언니들과 언니네텃밭 오산공동체로 함께 농사짓는다. 이제 '생태농업' 3년차란다.

"우리가 천연농약 만들어서 치면 된다고 전여농 생태농업보급단에서 기술교육도 하지만, 관행농 짓던 언니들이 유기적인 농사로 바꿔가는 건 점차적으로 되는 일이지요. 그런데 소비자들과 한 약속은 안전한 농산물 보내겠다는 건데, 현실이 그러지 못했잖아요. 공동체가 가치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고, 공동 경작은 그런 시간을 벌어준 거예요. 대외적으로 꾸러미 소비자한테 보낼 때도 편지로 설명했죠."

유기농 인증 받은 논밭에서 함께 농사지어서 제철꾸러미를 보내고 이윤도 공동 분배하는 식이다. 모여서 일하는 날이 일주일에 2~3일은 된다. 개별 농사도 있다. 가령 옥수수 900평 농사짓는 사람은, 꾸러미에 넣을 건 직접 김 맬 수 있는 규모로 200평 정도 별도 관리 한다.

"점검이요? 밭에서 작물이 얼마만큼 나올지 다 아는데 그것보다 많이 나오면 약을 쳤네… 하고 속속들이 알아요. 그렇게 안에서 서로서로 점검해줘요. 공동체 언니 한 분이 들깨밭에 제초제를 쳤어요. 꾸러미에 넣을 게 없다고, 거피(껍질 까기)하고 들깨가루 만들어서 제가 그거라도 넣으려 했더니, 다른 언니들은 약 친 거 넣어준다고 불편한 마음들이 올라온 거예요. 그래서 서로 지킬 것은 지키자는 마음들이 모아진 것 같아요. 할미꽃 뿌리 달이면 살충 효과가 좋다고 해서 다음주에 물 내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토종씨앗 찾다 할머니 스승 만나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는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펼쳐왔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는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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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방향을 틀면서 여성농업인센터가 한 중요한 활동이 토종씨앗 지키기다. 토종씨앗이 미래 자원을 지키는 일이다, GMO의 대안은 토종씨앗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당시 GMO반대생명운동연대를 맡고 있던 김은진 교수(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나 농협 채종포에서 토종씨앗을 받기도 했다.

"센터에 스물댓 명 모인 자리에서 토종씨앗을 나눠줬는데, 시작이 거기였죠. 일 년 뒤에 할머니 두 분이 기장이랑 조랑 한 말 가까이 수확해주셔서 또 여러 곳으로 전해줬죠. 통일 기금 마련을 위한 전여농 텃밭이 있었는데, 그걸 토종씨앗으로 하자고 끌어갔고, 이와 별도로 횡성에서도 씨앗 지키기를 계속했어요."

2014년 횡성군 지원을 받아 안완식 박사와 같이 토종씨앗 실태 전수조사를 했다. 마을 이장이나 부녀회장님한테 토종씨앗 갖고 계신 분을 소개받아, 한 집 가면 그 마을서 농사짓는 씨앗이 다 있었다. 씨앗 조사와 수집을 통해 총 84작물 403종을 모았다. 여성농업인센터 냉동고,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횡성군농업기술센터, 농업진흥청 네 곳으로 나눠 씨앗들을 관리하고, 일부는 횡성읍내에 있는 토종씨앗 채종포에 심어 해마다 채종하고 있다.

"토종 물고구마 주신 박부례 할머니(86)라고 계시는데, 방이 아니라 헛간 같은 데서 고구마를 키우세요. 거기 보면, 낙숫물 떨어지는 데에는 미나리꽝도 있고 사시사철 푸른 게 올라와요. 한켠에 고구마 묻어놓고 싹 틔워서 짱짱하게 모종을 키우죠. 전통농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할머니 농사지으시는 거 보면 다 있어요. 두덕도 안 만들고 마늘 심은 군데군데 고구마를 꽂아놔요. 사이사이 콩도 심고, 마늘 캐면서 고구마 북 주고 마늘대도 놓아둬요. 고구마 캐고 나면 또 그걸로 덮어놔요. 겨우내 그게 피복이 되는 거예요.

또 검불 있으면 질질질 끌어서 한군데 모아놓죠. 나중에 덮어줄 거름이래요. 계속 돌리시는 거예요. 평생 비료, 농약 없이, 비닐 한 쪼가리 안 쓰시고, 넓은 땅이 있는 게 아니라 집 둘레 절개지도 다 텃밭으로 쓰셨어요. 그걸로 저자 보시고(시장 나가서 팔기) 자식들 키우셨는데, 이제 할머니가 아프신 거죠. 할머니 따라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알려나가고 그래야 하는데, 할머니들 한 분 한 분 뵈면 안타깝고 마음이 바빠져요."

올해는 횡성 토종씨앗들 특성이나 농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자는 계획과 더해, 토종씨앗 조사하면서 <횡성희망신문>에 연재해온 글을 모아, 할머니들이 토종씨앗으로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지역사회에 중요한 역량으로 남기고자 한다.

나를 넘어 다른 이들과 협의체 구성

횡성에서 토종씨앗 지키기를 도맡으면서 연대의 폭도 넓어졌다. 한국여성농업인횡성지회(한여농), 횡성농가주부모임(농가주부), 횡성군여성농민회(전여농),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네 개 단체들이 '횡성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를 구성한 것이다. 색깔이 다른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각자 활동도 인정해주면서 협의를 통해 공동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입지가 넓어져요. 토종씨앗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에는 제가 전여농만 보고 일해서, 우리가 쓰는 언어가 그분들에게 낯설다는 걸 몰랐어요. 타협해야 하는 거? 공무원들 애경사에 부조를 해야 한대요. 그분들은 그런 관계가 잘 되어야 조직이 활성화된다고 보는 거예요. 저는 우리 활동으로 활성화하면 되지 하고 처음에 멋모르고 '난 그런 거 안 하는데' 얘기했죠. 필요한 것 얻기 위해선 제스처가 있어야 하는데, 경직되어서 그런 융통성을 못 부렸어요. 5년 가까이 협의회 활동하면서 그런 게 많이 깨지고, 거기서 제 고집을 안 피우게 되었죠."

민에서 시작된 활동이 정부 정책과 맞물려 본거지를 얻고 탄력을 받았지만, 보조금에 길들여지고 필수사업에 관료화되지 않으면서, 주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주도적으로 견인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를 넘어서 바깥을 만날 용기와 원래 방향을 틀 수 있는 창조성, 쉽사리 꺾이지 않고 또다시 꿈꾸는 열정이 민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생명평화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담은 월간지 <아름다운 마을> 제65호(2016년 3월)에도 실렸습니다.
<아름다운 마을> 누리집주소 http://admaeul.tistory.com/388



태그:#횡성여성농업인센터, #한영미,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귀농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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