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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최후에 임박한 사담 후세인의 모습.
 최후에 임박한 사담 후세인의 모습.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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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미국의 부시 2세 정권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때 미국의 침공 명분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2004년 이라크에 파견된 미국 조사단은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전쟁 중에 동원된 무기는 이라크제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미제 첨단무기였다. 이 전쟁에서 개량형 스마트 폭탄을 비롯해 적의 컴퓨터·미사일·전력체계 등을 마비시키는 최첨단 전자무기들이 등장했다. 위험한 무기를 소지한 쪽은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이었던 것이다.

최근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각종 무기와 장치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더러 보란 듯이,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도 날리고 우주발사체도 쏘아 올리고 있다. 특히 핵무기의 경우에는 미국이 북핵의 존재를 공식으로는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있다고 한다면, 북한 군사무기의 위력은 2003년에 미국이 말했던 대량살상무기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대량살상무기가 있을 거라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핵무기가 과시되고 있고, 이로 인한 지진으로 한반도 지각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말로는 당장이라도 북한을 칠 것처럼 하고 있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에는 정말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대량살상무기보다 더 무서운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없었다면, 미국은 진작 북한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꼭 그런 이유 때문에서만 침공을 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실패가 확실해진 뒤인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 독트린에서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쟁에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때 미국은 베트남 바로 위쪽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다. 베트남과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감정이 결코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중국은 만주와 한반도를 상대로 그랬듯이, 베트남 지역을 상대로도 항상 견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이쪽에서 중국의 지역 패권을 방해하는 흐름이 형성되지 않도록 애썼다.

베트남 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은 그런 중국을 확 끌어당겼다. 미국은 동맹국인 대만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밀어내고 중국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런 식의 호의를 보임으로써,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베트남전 실패의 파장을 중국 덕분에 최소화한 미국은 중국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시아·태평양에서 함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특히, 중국 수도 베이징과 그리 멀지 않은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없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이래저래 개전을 결심할 수 없는 처지이면서도, 미국은 말로는 언제라도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주고자 쇼까지 벌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자, 미국은 북한을 압박한다면서 B-52 폭격기를 출격시켜 우리나라 오산 상공까지 왔다 가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그동안 미국이 수없이 선보였던 것이고, 한 번도 북한의 굴복을 받아낸 적 없다. 지난 1월 10일 오산 하늘까지 왔다 돌아간 B-52는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직후에도 매일 같이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녔다. 그때는 폭격기뿐 아니라 대규모 함대까지 북한 해역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갔다.

미국의 '가짜' 위협은 동맹 강화하기 위한 '대남 시위'

판문점 도끼 사건.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전시물.
 판문점 도끼 사건.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전시물.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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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인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는 더했다. 북한이 자국 영해를 침범한 미국 선박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자, 백악관은 금세라도 핵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공군 예비역 1만 5천 명에게 전쟁 동원령을 내리고, 항공 모함 3척을 동해상에 급파하고, 전투기 372대의 출격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고 미국은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실제로는 전쟁할 의사도 없으면서 매번 위협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사실은 한국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대응태세에 실망하여 동맹에서 이탈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미국의 대북 시위는 실상은 대북 시위가 아니라 대남 시위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은 1976년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정희 대통령은 B-52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떠다니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그는 그 답례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얼마 안 있어 미국의 진의를 알고 핵개발을 다시 시작했지만, 그는 미국의 대북 시위 아니, 대남 시위 때문에 한동안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전쟁 위협뿐 아니라 경제봉쇄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는 이미 한국전쟁 때 시작됐다. 한국전쟁 발발 3일 뒤인 1950년 6월 28일, 수출통제법 적용을 시작으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시작됐다.

하지만 70년이 다 되도록 북한 경제는 붕괴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계속해서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뭔가를 끊임없이 쏘아올리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전쟁하는 데 역량을 죄다 투입하니까 그러는 게 아니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의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군사력 증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1990년대 제1차 북·미 핵대결 이후의 경제제재 때문에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할 정도로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 2002년부터 제2차 북·미 핵대결을 벌였다. 이것은 북한 경제가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북 압박에 관심 없는 미국... 우리만의 독자적 입장 취해야

서기 648년, 신라 김춘추는 당나라로 건너가 당 태종(당나라 태종)에게 군사동맹을 제의했다. 이렇게 결성된 나당동맹이 고구려·백제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맹의 주도권을 쥔 당나라가 전쟁 능력은 물론이고 열의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 태종은 중국 주변을 안정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고구려 침공을 준비했고, 아들인 당나라 고종은 안시성 전투 때의 부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한을 갚을 일념으로 고구려 침공에 공을 들였다. 그들 부자의 열의가 우리 민족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열의가 자국의 패권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한테는 당나라만큼의 열의나 능력도 없다. 미국이 대북 압박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는 점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거 유세를 통해 트럼프는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펼치고 있다. 보수 여론에 영합하는 그가 그런 발언을 내뱉는 것은 북한과의 대결에 부담을 느끼는 보수세력의 의중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시각으로 2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 핵실험 직전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비밀협상이 북·미 간에 개시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할 때만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던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해당 보도가 나간 후 미 국무부는 '북한과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대북 기조를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그런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붕괴시킬 거라는 전제 하에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이 정말로 북한과 싸울 의사가 있는지, 북한을 붕괴시킬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기보다는, 미국의 대북 강공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이 이런 기조로 계속 나간다면, 어느 날 갑자기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날에 일대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을 믿고 중국과 대결정책을 펼쳤다가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국한테 발등을 찍힌 타이완(대만)의 전철을, 한국이라고 안 밟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한테서 눈을 떼는 것이다. 적어도 대북정책에 관한 한, 미국을 믿지도 말고 보지도 말아야 한다. 미국을 바라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기반을 두지 않는,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든, 대결하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북미관계, #북미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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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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