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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은 답답했다.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약자의 뜻에 반했다. 사회적 논란이 이는 순간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 서성이다가도, 카메라 불이 꺼지면 함께 사라져 버렸다.

새누리당처럼 집요하지도 않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지도 못했다. 108명의 국회의원이 있으면서도 '힘이 없다',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자위했다.

대선 후보가 약속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문제를 협상할 때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때도, 정부의 기만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 때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도, 테러방지법 제정 때도 다르지 않았다. 더민주가 '새누리당 2중대'란 말까지 나왔다.

독선의 냄새가 나는 김종인의 '가만히 있으라'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20일 앞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김 비대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꿀 수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에게 힘을 몰아 달라"고 호소했다.
▲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는 김종인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20일 앞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김 비대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꿀 수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에게 힘을 몰아 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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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여당에서 경제민주화 슬로건으로 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77세의 김종인이 야당의 대표선수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곤 거침없는 행보로 '이슈메이커'를 자처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이력은 무척 비상하다. 그는 11, 12대(민정당 전국구), 14대(민자당 전국구), 17대(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등 비례대표로만 역대 정권을 넘나들며 4선 국회의원과 정부 요직을 겸했다. 그리고 이번 4.13 총선에서 더민주 비례대표 2번을 받아 '셀프 공천' 논란이 일었다. 모두가 놀랐다. 그는 더민주와 달리 집요하고 뚝심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더민주 비례대표 선정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지적이 일자 그는 "소외계층을 비례에 하나 집어넣으면 더민주가 소외계층을 잘 해줬다고 생각하느냐"며 '평소에 소외계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이면서, 이제 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내뱉었다. 그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나만 믿고 따르라'는 아집과 독선의 냄새 말이다.

그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 방문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당 대표가 노동계를 방문해서 지지를 부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는 달랐다. 김 대표는 "노조가 사회적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보호가 소외될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21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선 "노조는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며 "노조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존재하기 어렵다"고 재차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노동자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결국 너희만 손해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가만히 있으라'는 훈수였다.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인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문제에 나서지 말라니, 혹시 그의 경제민주화에 노동자들은 배제된 것은 아닐까.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엔 노동자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1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대학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제 할배 생생 특강'에서 강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1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대학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제 할배 생생 특강'에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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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충북 영동에 있는 유성기업의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로 발견됐다.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만드는 부품업체다. 2011년, 이곳의 노동자는 주간 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용역을 고용해 노동자를 내몰았다.

익히 들어본 바 있는 '창조컨설팅'이라는 노무관리업체가 시나리오를 짰다. 지난 1월, 은수미 더민주 의원에 의해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차의 고위 임원이 노조 파괴에 개입한 정황이 밝혀졌다. 하지만 저항하던 노동자들만 구속됐고, 불법 폭력을 사주한 이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유성기업은 복수노조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갈라놓고, 잔업 특근을 안 시키고,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아 노조 탈퇴를 종용했고, 말 안 듣는 노동자에게 징계를 남발했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떠나지 못했던 한 노동자는 사측의 연이은 징계를 견디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출근하는 공장 문이 지옥 문이었다'는, 살아남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가 장례식장 구석구석을 채웠다. 그에겐 유서가 없었다. 쌍용차 해고자 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제대로 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의 동료들은 지금도 서울 시청 광장에서 그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고 울부짖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서울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분향소를 세우기 위해 노숙농성 중이다. 비록 경찰에게 분향소 물품을 빼앗긴 채로 차가운 길바닥에 웅크리고 있지만, 또 다른 동료를 떠나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서 없이 떠난 동료들, 쓴소리 할 곳은 따로 있다

23일, 민주노총이 서울 시청 앞에서 노조파괴-노동자 괴롭히기 중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23일, 민주노총이 서울 시청 앞에서 노조파괴-노동자 괴롭히기 중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 민주노총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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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이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노숙농성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이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노숙농성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 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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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경제민주화가 이런 차별과 낙인과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이런 기업의 살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지, 노조가 사회적 문제를 외면한 채 권익 보호에만 매달리면, 더민주가 이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가 쓴소리해야 할 곳은 따로 있었다. 청와대 눈치만 보는 정치,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는 기업들, 지지율 떨어지면 북한 문제만 만지작거리는 정권이다. 

김 대표의 말대로 경제가 엉망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인 국민이 부지기수다.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정부가 재벌들을 규제해야 하고 국회가 정부를 감시해야 하고 언론이 제대로 서야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 땅에서 일하는 국민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4.13 총선이 코 앞이다. 선거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차악은 최악을 공고히 했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사기'였던 것처럼 김종인의 경제민주화가 노동을 배제한다면, 이는 사상누각이다.

노동자는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활동 반경을 사회 전반의 영역까지 더 넓히고 넓혀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도 없고, 차별받는 이들도 없고, 배제되는 이들도 없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노동자의 권익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진짜 경제민주화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고동민 기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사무국장입니다.



태그:#김종인, #민주노총, #유성기업, #경제민주화, #기업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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