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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매일 저녁 수기치료(지압)를 받아서 그런지 왼팔의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침에 머리를 빗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저녁에 치료 받으러 가서 진심으로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 선생님의 마음에 깊이 감동한다. 마치 내가 갖고 있는 통증을 함께 경험이라도 하고 있는 듯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나를 고통으로부터 구하려 한다. 치료가 끝나고 일어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선생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다. 한 쪽 구석에서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로는 땀을 식힐 수 없을 듯하다.

전날 저녁, 선생님께 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분상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셨다. 어쨌든 기분상이라도 좋으니 이만하면 됐다.

2015년 6월 30일, 드디어 둘째 수양딸 리설향의 집에 가는 날이다. 설레고 흥분된다. 신혼집은 어떻게 꾸려 놨을까, 신랑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것 투성이다. 온통 내 관심은 한시라도 빨리 설향이 집에 가서 설향이를 만나는 일이다. 설향이 신랑이 퇴근할 즈음에 맞춰 오후에 가기로 돼 있단다.

남과 북의 과학 기술 합작을 상상해본다... 한숨만 나온다

오전에는 일행인 박세희(가명) 교수와 함께 박 교수의 안내원인 30대 초반의 송영혜 선생의 인솔로 '3대혁명 기념관'이라는 곳을 가기로 돼 있단다. 대충 설명을 들어보니 일종의 산업전시관 같은 곳이다.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일정이다.

 평양에 있는 3대혁명기념관 내 '3대혁명기념탑'.
 평양에 있는 3대혁명기념관 내 '3대혁명기념탑'.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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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혁명 기념관에 있는 은하3호 로켓 모형.
 3대혁명 기념관에 있는 은하3호 로켓 모형.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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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혁명 기념관에서 본 광명성 3호 인공위성 모형.
 3대혁명 기념관에서 본 광명성 3호 인공위성 모형.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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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도착하니 해설을 담당할 젊은 청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기념관을 관람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넓은 부지에 북한의 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꾸며놨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역시 우주로켓 모형을 전시해놓은 곳이었다. 이곳 전시관을 담당하는 해설원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자부심이 실려있다. 이 로켓들과 인공위성들을 100% 자력으로 만들었단다. 그야말로 '메이드 인 노스 코리아'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달러화로 표시된 1인당 국민소득으로 한 나라를 평가하곤 한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1000여 달러로 알려져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아프리카보다 못한 미개한 나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은 과학국가다. 우주과학기술은 모든 테크놀로지의 집합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무궁화 인공위성을 북한의 은하 로켓에 실어 올려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이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떠올리며 아쉬움에 한숨을 내쉰다.

다리 건너니 아는 사람이... 북한도 참 좁구나

 3대혁명 기념관 김원호 안내원과 함께.
 3대혁명 기념관 김원호 안내원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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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수고해준 김원호 안내원은 과학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전공이 궁금했다.

"대학에서는 뭘 공부하셨어요?"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과학이 아니라 영어를요?"
"네. 이곳에서 일을 하니까 많은 분들께서 제가 과학계통을 전공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이곳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미국서 오셨다니까 영어를 전공한 제가 담당하게 되었어요."

"평양외대에서 영어를요?"
"네"
"그럼 혹시 문호영이라고 아시는지요? 나이가 언뜻 비슷해 보이는데."
"아니, 선생님께서 호영이를 어떻게…. 저하고 대학을 같이 다녔습니다."

"어머, 그러시군요. 2012년 나진 선봉에 관광을 갔었는데 그때 문호영이 저희를 안내해줬어요. 그래서 닷새 정도 함께 다녔습니다."
"야~ 그러셨군요. 그 동무 고향이 그곳입니다. 관광 안내를 하고 있구만요. 결혼은 했답니까?"
"아마 지금쯤 했을 거예요. 당시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어떤 여성인지 궁금하네요."
"직업이 의사인데 바쁜 가운데서도 매일 호영 동무 어머님을 찾아뵙는 등 아주 흡족해하고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일 마치면 전화번호를 알아내 꼭 연락해봐야겠습니다. 신 선생님 안부도 전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보고 싶다고 전해 주시고 나진 선봉에도 한 번 가겠다고 꼭 전해 주세요."
"네, 꼭 전하겠습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박 교수가 말한다.

"북한도 세상이 좁네!"

"선생님, 군인 찍지 마시라니까요"

기념관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멋진 여군들이 대오를 지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간다. 이를 놓칠새라 남편이 카메라를 꺼내 들자 송영혜 안내원이 남편을 말린다.

"정 선생님, 여기 한두 번 오신 것도 아니시고…. 군인은 사진 못 찍게 돼 있는 것 잘 아시면서."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카메라를 내리면서 불평을 해댄다.

"아니, 대체 군인이 무슨 국가기밀도 아니고 나 원 참. 지난번 '로농적위군' 열병식 때도 카메라를 못 가지고 가게 해서 사진 한 장 못 찍고 말이야. 정규군 열병식이 하도 대단하다 그러길래 보러 오고 싶어도 사진 못 찍게 해서 안 와. 열병식 구경하고 사람들한테 알려주기도 해야 하는데, 사진이 없으니까 증거가 없어 자랑하지도 못하고 말야."
"원래 열병식 때는 기자 외엔 아무도 사진기를 지참할 수가 없습니다."

"뭐? 기자? 참, 우리 집사람도 기자야. 그러니까 카메라를 들고 열병식에 갈 수 있겠네?"
"에이, 선생님도. 신 선생님이 무슨 기자예요?"
"하아~, 이 사람. 기자 맞다니까."

"신 선생님 비자 신청서 직업란에 '가정주부'라고 써 있는데 웬 거짓말을 하십니까? 기행문을 쓰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거짓말? 이봐, 영혜 선생, 서울에 <오마이뉴스>라는 언론사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거기에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모두 '시민기자'라고 불러."

"월급도 받습니까?"
"월급? 에이~, 우린 미국서 사는데 무슨 월급을 받아. 음…, 대신 원고료를 받아. 그러니까 기자 맞지?"
"그래도 정식기자가 아닌 것 같은데…. 음…, 어쨌든 그러면 한 번 해보십시요. 외신기자 취재목적으로 비자를 신청해보세요. 저희가 외무성에 제기해 보겠습니다."
"정말? 알았어, 허락하면 무조건 열병식 할 때 사진 찍으러 올게."
"올 10월에 큰 행사를 합니다. 조선로동당 창당 70주년이라서 말입니다. 열병식도 볼 만할 겁니다."

남편은 내 의견도 묻지 않고 흥분해서는 10월에 또 올 거란다.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다.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

드디어... 설향이와의 재회

 평양 '은반식당' 메뉴판.
 평양 '은반식당' 메뉴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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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은반식당'에서 먹은 냉면.
 평양 '은반식당'에서 먹은 냉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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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서 한참을 걸었더니 배가 고파온다. 우리 일행은 점심식사를 위해 '호케이'(아이스하키) 경기장 바로 뒤에 있는 '은반식당'이라는 곳에 왔다. 메뉴를 펼치니 온갖 메뉴가 다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막상 이것 저것 주문을 하려니 성큼 내키지 않는다. 설향이를 곧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다.

그저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면 충분할 것 같아 냉면 200그램(g)을 주문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평양의 냉면그릇은 모두 놋쇠인데 이 식당의 그릇은 스테인리스다. 식당 이름이 '은반'이라 용기도 은빛을 띠는 스테인리스를 쓰는 걸까? 그릇의 은빛이 반사돼 국물이 맑고 투명해 보인다.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함께 나온 배추김치와 오이김치는 모양만큼이나 맛도 깔끔하고 산뜻하다.

설향이네 집으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방으로 올라가 미국서 가져온 선물을 챙겨 로비로 내려오니 우리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방문 시각에 맞추기 위해 커피숍에서 한 동안 시간을 보낸 뒤 설향이네 집을 향해 호텔을 나섰다.

 백두산 등정 당시 내 허리를 감싸고 밀어주던 설향이(왼쪽).
 백두산 등정 당시 내 허리를 감싸고 밀어주던 설향이(왼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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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이의 아파트로 향하는 차안에서 지난날 함께 여행했을 때의 일을 회상해본다. 백두산을 오를 때 힘들어 하는 나의 허리를 감싸안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오마니, 뒤에서 일본군 토벌대놈들이 우리를 잡으로 추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시라요. 발걸음이 빨라질 거야요. 저 위에 또 다른 모습의 천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추격하는 놈들이 바로 저 구름과도 같은 건데 백두산의 구름은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거게서 보는 천지가 '해방된 조국'의 모습이야요. 그 모습을 보시지 않고 여기서 주저앉아 잡히시갔어요?"

마음도 여리고 눈물도 많은 설향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집에서 살림만 한다는데 아이는 생겼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 외관. 많이 낙후돼 보였다.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 외관. 많이 낙후돼 보였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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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이네 아파트는 개선문 근처에 있다. 건물이 많이 낡았다. 족히 30~40년은 돼 보인다. 그래도 평양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 본 경험으로 볼 때 이 동네가 생활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철역도 가까이 있고 상권도 잘 발달돼 있고….

설경이네 아파트처럼 설향이네 아파트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재개발만 된다면 엄청 좋아질 것 같다. 하기야 설경이네 집도 겉은 낡아서 당장이라도 재개발할 듯 보여도 집안은 매우 깨끗하고 튼튼했다. 앞으로 몇십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니 설향이네 집도 겉모양과는 달리 속은 튼튼하고 깨끗할 법하다.

남이고 북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영리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도 밝으니 설향이네 부부도 어련히 잘 따져보고 이곳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리지 않았겠나. 일단 안에 들어가 보고 괜찮으면 이사 가지 말고 언제가 됐든 재개발할 때까지 살라고 해야겠다. 설경이 말에 의하면 재개발 아파트는 최신식 구조로 넓게 짓는 데다가 현재 입주자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하니 말이다.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에 있는 상점.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에 있는 상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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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에 있는 상점. 별거 없어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아니었다. 여러 거지 물건이 가득했다.
 설향이네 아파트 건물에 있는 상점. 별거 없어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아니었다. 여러 가지 물건이 가득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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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설향이 집에 들어가기 전, 이 아파트 건물에 붙어있는 자그만 가게에 들렀다. 밖에서 보기에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여 대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왠만한 물건은 다 갖추고 있다. 설향이가 좋아하는 바나나와 수박 그리고 소고기, 돼지고기와 오리구이 한 마리를 샀다.

 드디어 만난 설향이. 설향이네 아파트 입구에서 설향이 부부와 함께.
 드디어 만난 설향이. 설향이네 아파트 입구에서 설향이 부부와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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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설향이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허겁지겁 달려간다. 아파트 건물 입구에 설향이 부부가 미리 마중 나와있다. 설향이와 나는 얼싸안고 둥실둥실 춤을 추듯 맴돌았다. 우리가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설향이 신랑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신랑은 체구도 듬직하고 얼굴의 윤곽도 굵고 뚜렷하다. 눈빛은 서글서글하고, 콧날은 반듯하다. 마치 북한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자배우 같다. 믿음직스럽다. 한순간에 안심이 된다. 인사를 나누며 말을 주고받아 보니 사람이 화통하고 붙임성도 좋다. 존칭어를 쓰자 누가 사위에게 말을 높이느냐며 "말씀을 편히 하시라"고 한다.

설향이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어떻게 이 동네에 살게 됐느냐고 묻자 신랑 직장이 이 근처라서 이곳에 아파트를 배정받았다고 한다. 현관문을 여니 역시 신혼살림집이라 아기자기하다. 피아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어머, 설향아, 피아노도 있네. 너는 무용을 하잖아. 근데 피아노도 치니?"
"남편이 칩니다. 남편이 학교 다닐 때 소조(과외) 활동으로 피아노를 했습니다."
"좋겠다, 설향아. 남편의 연주에 맞춰 춤도 추고. 행복하지?"
"네, 어머니. 아직까지는…."

이 말을 들은 신랑이 헛기침을 하며 "아직까지라니"라면서 설향이를 노려보는 척한다. 남편이 제법 유머도 있다.

 설향이 부부는 우리를 위해 다과상을 차려놨다. 설향이 남편은 내게 대동강맥주를 권하며 농을 치기도 했다.
 설향이 부부는 우리를 위해 다과상을 차려놨다. 설향이 남편은 내게 대동강맥주를 권하며 농을 치기도 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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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에 다과가 한 상 차려져 있다. 설향이 남편이 대동강맥주를 권하며 농담을 한다.

"어머니, 대동강맥주 한 잔 드리고 싶은데 권하기가 좀 겁이 나서…."
"아니, 왜 겁이 나?"
"어머니께서 서울에 가셔서 '대동강맥주가 맛있다'는 말씀하시는 바람에 혼나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아~, 괜찮아. 벌써 다 잊었어. 남쪽에는 방송국이 아주 많은데 일부 방송에서 그 말을 갖고 내가 소위 '종북'이라고 비난했지."
"네, 다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맥주가 맛있다는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저희들은 정말 리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 자, 괜찮으니 어서 한 잔 따라줘요. 설향아, 너도 한 잔 같이 하자."
"어머니, 저는…."
"왜? 속이 안 좋아?"
"저…, 지금 3개월 됐습니다."
"뭐라고? 3개월? 어머, 아기 생겼구나. 어머, 얘, 축하해!"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래, 마시지 마. 조심해야 돼. 정말 잘 됐다, 설향아. 너 닮은 참한 아기도 좋고 아빠 닮은 듬직한 아기도 좋고…. 딸이든 아들이든 정말 예쁘겠다. 얘."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에 가장 반가워했을 남편에게 물었다.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딸?"
"저는 딸이면 좋갔습니다. 지 엄마 어린 시절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하하."
"그래, 누굴 닮아도 좋겠다. 그저 건강하고 튼튼하면 더 바랄게 없지. 설향아, 내가 손주 복이 터졌다. 설경이 아들 의성이도 얼마나 잘 컸던지…. 설경이 한테도 너 잘 돌봐주라 일러 놓을 테니 너도 언니한테 도움 청해. 알겠지?"
"네, 어머니. 설경언니가 저한테 신경 많이 써줍니다."
"정말 기쁘구나. 딸 복에 사위들 복에 거기다 손주복까지…."

2013년 8월 함께 여행할 당시 어디선가 온 전화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받더니…, 부리나케 전화를 해댄 그가 바로 설향이 남편이다. 신혼집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이제 그만 떠나려고 하자 "저녁식사를 함께 드시고 가시라"고 한다. 붙잡는 걸 겨우 뿌리쳤다.

"설향아, 저 아바이가 이번 10월에 열병식 구경하러 오시겠다는데 나는 너 때문에 꼭 와야겠다."
"10월에 또 오실랍니까?"
"그래, 출산 준비해서 다시 올게."
"오마야…."

 설향이와의 작별인사.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 오르지 못하며...
 설향이와의 작별인사.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 오르지 못하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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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이는 상위에 올려져 있던 과일을 주섬주섬 용기에 담아 건네준다.

"오마니, 이거 호텔에 가서 드시라요."
"아냐, 설향아, 호텔에 다 있는 거 너도 알잖아."
"밤늦으면 상점들 모두 닫잖습니까. 가져가시라요, 오마니."

설향이가 싸준 걸 받아들고 아파트를 나선다. 감격이 벅차올라 눈물이 핑 돈다. 내 인생에 기적처럼 찾아온 '도깨비 나라' 북한으로의 여행! '달나라보다 낯설었던' 북녘땅에 딸들이 있고, 사위가 있고, 손주가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원초적인 이유다.

지금 남과 북에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아직도 살아있다. 심지어 휴전 후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북한에 있는 형제를 찾아가는 재미동포를 나는 북한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적도 있다. 게다가 남한에는 2만5000여 탈북동포들이 있다. 이들은 오늘도 핏줄을 그리워하며 재회의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인간의 정과 사랑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근원은 가족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와 헤어져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세월을 살아가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그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 불가능한 몸부림은 마침내 시퍼렇게 멍울진 '한 맺힘'이 돼 살아도 살아있음이 아닌, 지옥과도 같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혹시나 저 세상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이생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같이 잔인한 비극은 없다. 그런데 피붙이, 형제자매, 부모를 생이별 시켜놓은 채, 남북 두 나라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끊긴 인연의 끈을 방치하고 있는 두 나라에 어떤 천벌이 내려질까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비극은, 이 죄악은 그 어떤 번드르르한 말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국가의 허락 없이는 만날 수 없다거나,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인권 유린이다.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남한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산가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 또한 엄청난 인권 유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에 제한이 없고(북한 여행 제외)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정부에 제안한다. "북에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원하면 누구나 북한에 가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도 좋다"라고 선언할 것을. 주민들의 해외여행이 제한돼 있는 북한에게도 제안한다. "북에 헤어진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누구나 북한을 방문해 가족과 상봉할 것을 허락한다"라고 선언할 것을.

겨우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산가족들의 한 맺힌 영혼이 빗물돼 주루룩 차창을 두드린다.

 비 내리는 평양 시내. 이산가족의 한이 빗줄기가 돼 내리는 듯했다.
 비 내리는 평양 시내. 이산가족의 한이 빗줄기가 돼 내리는 듯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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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나야 한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안내원 김혜영 선생에게 어디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제안하니 옆에서 남편이 반색하며 김혜영 선생에게 묻는다.

"혜영 선생, 혹시 '경흥맥줏집'이라고 알지요?"
"경흥관 모르는 평양사람이 오데 있습니까. 긴데 기곳은 인민봉사 맥줏집이라서 외부인은 갈 수가 없습니다."
"왜요? 시설이 안좋아서 그럽니까?"
"안 좋긴요, 기렇지 않습니다. 기곳에서는 조선돈만 사용할 수 있으니 조선돈을 소지할 수 없는 외국 관광객들은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정 선생님 잘 아시면서…."

"에이, 김혜영 선생, 그러지 말고 우리 갑시다. 김 선생이 우리에게 한잔 대접한다는 생각하고 가면 안 될까요?"
"아, 이를 어쩐다. 가면 규정을 위반하는 건데…."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책임질 테니."
"오마, 정 선생님이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입니까? 책임을 지면 내가 지는 게지."

눈치를 보니 김혜영 선생 재량에 달려있는 듯하다. 나도 덩달아 부추겼다.

"그저 크게 문제될 거 없으면 가보지요, 김 선생님."
"그럼 갑시다. 신 선생님이 가자니까…. 정 선생님만 가자고 하면 안 갈라 기랬는데."

 경흥 대동강맥줏집 입구에서. 이 맥줏집 규모는 상당히 컸다.
 경흥 대동강맥줏집 입구에서. 이 맥줏집 규모는 상당히 컸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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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녘동포들과 어울려 대동강생맥주를 마시며.
 북녘동포들과 어울려 대동강생맥주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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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흥 대동강맥줏집에서 만난 북한 동포들은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경흥 대동강맥줏집에서 만난 북한 동포들은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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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줏집에 도착하니 비가 싹 그쳤다. 맥줏집 규모가 상당히 크다. 족히 1000명은 수용할 것 같다. 이곳에서는 '까스맥주'라고 불리는 대동강생맥주를 제공하는 곳인데 종류는 모두 일곱 가지다. 안내판을 보니 쌀과 보리의 혼합비율에 따라, 그리고 알콜 도수에 따라 구분해놨다.

손님들은 주로 직장인들처럼 보인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 작업복을 입고 붉은별이 달려있는 '모택동 모자'를 쓴 사람들, 여성 근로자들…. 퇴근길에 들려 한잔 하는 모양이다.

나도 한잔 받아들고 북녘동포들과 어울려 시원한 대동강생맥주를 마구 들이켰다. 내가 해외동포인 줄 알고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한다.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 고향이 어디냐, 무얼 하느냐, 나이는 몇이냐, 애들은 몇이냐, 애들은 무얼 하냐, 부모님은 계시냐, 부모님은 어디 사시냐, 미국서도 조선 음식을 해먹느냐 등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일일이 모두 대답해주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듣는다. 예전 우리들의 모습이다.

남녘 출신의 해외동포라고 하면 눈을 맞추고 손을 덥석 잡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것, 하루빨리 평화로운 통일을 이뤄 함께 살아가자는 것, 예전 6·15선언과 10·4선언 시대로 다시 돌아가서 남녘동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 시절이 정말로 꿈만 같다며 그때는 곧 통일이 될 것 같아서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른다는 것 등이다.

이렇듯 동포들과 얘기를 나누면 우리는 서로를 금방 이해하고 하나가 된다. 통일은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게 바로 통일이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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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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