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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혜화동 담당 한 마을변호사가 주민과 상담하고 있다.
 서울시 혜화동 담당 한 마을변호사가 주민과 상담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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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누구한테 물어볼 데도 없고 맘고생만 했었는데 너무 고맙네요. 왜 진작 이런 제도를 몰랐을까요."

아는 이웃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몇 년 지나도 갚을 생각은 않고 배째라 식으로 나온다면? 그 돈이 거액은 아니지만 한참을 안 쓰고 안 입어 모은 소중한 돈이라면?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데 상속세가 너무 많이 나올까 고민된다면? 재산을 물려주고 난 다음 자식에게 버림받을까 걱정된다면?

보통 사람들의 흔한 고민들이지만 정작 이런 일에 당했을 때 마땅히 물어볼 데는 없다. 변호사, 세무사 사무실이 떠오르긴 하지만 평생 그런데 가본 일도 없고 돈도 많이 들 것 같아 선뜻 문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변호사와 세무사는 우리 가까이 있다. 상담카드 한 장, 전화 한 통화면 변호사와 세무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 "서울 산다고 모두 법률서비스를 충분히 받는 것은 아니다"

서울 구로구 구로1동에서 월세 70만원을 내면서 상가를 임차해 장사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계약기간이 끝나가는데 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지금의 2배인 14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다 우연히 동주민센터에 들러 직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가 '마을변호사'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리에서 상담카드를 작성하고 2주 정도 기다리자 마을변호사와의 상담 날짜가 잡혔다. 상담 결과,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즉, 임차인이 특별하게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 5년 내에는 임대차기간 유지를 주장할 수 있고, 그 기간 중에는 연 9% 이내에서만 월세의 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끙끙 앓던 고민을 해결한 셈이다.

물론 이 같은 마을변호사 제도가 구로1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작년 12월 서울시내 83개 동에서 시작된 마을변호사 제도는 이용자들의 호응이 좋아 작년 7월부터는 100곳이 늘어난 183개동에서 시행되고 있다. 올 7월은 283곳, 내년 7월엔 424개 전체 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마을변호사 제도를 도입한 곳은 사실 서울이 처음은 아니다. 법무부가 이미 지난 2013년부터 변호사의 70%가 모여 있는 서울을 포함한 7대 도시를 제외하고 변호사가 없는 읍·면·동을 변호사와 1:1로 연결해서 이른바 '무변촌'을 해소하겠다고 도입한 것이다.

"법을 조금만 알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것을..."

그러나 아무리 변호사가 많은 서울이라 해도 모두가 충분한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착안한 박원순 시장의 아이디어로 서울시도 '마을변호사'를 시작하게 됐다.

서울변호사회를 통해 모집해 1개동에 2명씩 배정했으며, 올 1월까지 총 4200여건을 상담했다. 분야별로 보면 민사가 3300건이 넘어 대부분을 차지했고, 가사가 640건으로 뒤를 이었다.

마을변호사는 주로 매월 1-2회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건당 30분 정도 상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당사자가 꼭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한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로 4동 마을변호사인 양희철 변호사는 "법을 조금만 알면 아주 단순한 건데 해결 못하고 끙끙 앓던 것을 해결해줬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돈을 빌려줬지만 차용증 등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소송을 포기해야 할 경우는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시공부 할 때부터 주민센터 법률상담을 꿈 꿔왔다는 양 변호사는 "최근 들어 이혼이나 상속과 같은 '가사' 문제 상담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며 "예전 같으면 가족 간에 충분히 말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도 요샌 '법대로 하자'는 분위기로 가는 듯해 씁쓸하다"고 전했다. 

마을변호사 이용방법
1. 동주민센터, 다산120 또는 서울시 법무행정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우리 동에 마을변호사가 배정되었는지 확인한다.

2. 동주민센터를 방문하여 법률상담카드를 작성해 제출하거나, 동주민센터에 전화하여 마을변호사의 법률상담을 신청한다.

3. 동주민센터로부터 연락받은 날짜에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법률상담을 실시한다. 단, 긴급을 요하거나 필요한 경우 전화로도 상담이 가능하다.

* 마을변호사가 지정되지 않은 동 거주자는 사전 예약하고 시청 서소문별관에 설치돼있는 무료법률상담실(다산콜120, 02-2133-7880)을 찾으면 된다.

한 서울시 마을세무사가 주민과 상담하고 있다.
 한 서울시 마을세무사가 주민과 상담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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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마을세무사'... 전국적으로 확산

박 시장의 아이디어로 추진된 마을변호사와 달리 '마을세무사'는 세무사 단체인 서울세무사고시회의 재능기부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즉 세무사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할 방안을 찾아달라고 요청한데 대해 시가 적절한 제도를 고안한 것이다.

작년 1월부터 서울시내 20개 구 95개 동에서 143명의 세무사로 시작한 마을세무사는 올해 213명으로 확대, 방문복지시스템인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를 시행하고 있는 모든 동에 배치했다.

취득세·주민세·자동차세 등 대부분 구청에서 세액이 정해져 나오는 지방세 보다는 양도소득세 같이 복잡하고 금액도 큰 국세와 관련된 상담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마을변호사는 직접 방문상담을 기본으로 하는데 비해 마을세무사는 전화상담을 우선으로 한다. 전화로 상담을 해보고 대면상담이 필요하면 세무사 사무실로 직접 방문하거나, 주민센터에서 만날 수도 있다.

서울시의 마을세무사 제도가 호응을 보이자 대구광역시가 작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행정자치부와 한국세무사회는 지난 2월 MOU를 맺고 올 5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고마워하는 어르신들... 우리가 오히려 힐링받는 느낌"

마을세무사 일을 하다 연결이 돼 한 달에 한번 노인복지관을 찾아 상담한다는 윤수정 세무사(성북구 보문동 마을세무사)는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한다"며 "갈 때는 무거운 마음이었어도 올 때는 내가 오히려 더 힐링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윤 세무사는 그러나 "모든 기초자료를 알고 있어야 정확한 세액이 나오는데 대강대강 물어볼 때나, 상담 차원을 넘어 비용이 발생하는 일에 '공짜라더니 왜 돈을 받으려 하냐'고 따져물을 땐 난감하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마을세무사 이용방법
1. 동주민센터에 비치된 연락처와 시·구·동 홈페이지에 게시된 우리 동 마을세무사를 확인한다.

2. 1차로 전화·팩스·이메일 등으로 마을세무사와 상담한다.

3. 전화 등 비대면 상담으로 충분하지 않아 대면상담을 원할 땐 담당 마을세무사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동주민센터를 이용해 2차 상담한다.

서울시 법률지원담당관실 권석진 주무관은 "마을변호사를 지원하는 변호사들의 지원동기를 보면 기본적으로 약자를 돕겠다는 소명의식이 대단하다"며 "경제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분들이 이 제도를 더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마을변호사, #마을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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