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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차량이 50km로 주행하는 학교 앞 도로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시속 30km 정도로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주민들이 경찰서에 속도제한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서는 그 도로 중 일부는 55km, 나머지는 65km로 속도제한을 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와 비슷한 조치가 현재 한국의 고소득자 세금 공제·감면 정책입니다.

조세부담률 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소득세

최현민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이 지난해 12월15일 오전 세종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2015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종합 안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현민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이 지난해 12월15일 오전 세종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2015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종합 안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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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재정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낮은 조세부담률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3년 기준 조세부담률은 17.9%로 OECD 평균인 24.7%(2012년 기준)와 비교하여 6.8%p의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세목별로 OECD 평균과 비교해 보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세목이 있습니다. 바로 소득세입니다.

우리나라 소득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인데 비해 OECD 평균은 8.6%로, 4.9%p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낮은 문제의 핵심은 소득세에 있는 것입니다. 2015년 명목 GDP가 대략 1500조 원 정도 되니 OECD 평균 미달분 4.9%를 금액으로 계산해 보면 73.5조 원입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소득세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따져보면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여 별로 낮지가 않습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인데 비해, OECD 주요국의 최고세율의 단순평균은 36%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율은 그리 다르지 않은데 실제 세금이 적은 이유는 광범위하게 세금을 깎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득공제, 비과세소득, 세액공제, 세액감면 등 결과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을 조세지출이라고 부릅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2016년 예상 조세지출 35.3조 원 중 소득세가 19.4조 원으로 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1위입니다. 

물론 소득세에 있는 각종 공제와 감면 중 상당수는 그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습니다. 근로소득공제는 종합소득 신고자가 사업을 위해 사용한 비용을 경비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 형평을 맞추는 차원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의료비나 교육비 부담이 가중한 서민 가계 입장에서는 해당 비용을 공제해 주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득공제 중에는 그런 것과 상관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투자조합출자공제 등 각종 투자액에 대한 공제 등은 비용 보전보다는 여유 자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조세지출이 연간 8조 원 이상

실제, 조세지출예산서의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자료를 보면 매년 고소득자 감면액이 8조 원을 넘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많은 부모님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누리과정 1년 예산인 4조 원의 두 배의 금액입니다.

[표1]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표1] 조세지출의 수혜자별 귀착
ⓒ 2016년도 조세지출예산서,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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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하게 과도한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감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각종 공제의 적용은 일관되어야 하지 소득이 높다고 그 계산방식을 바꿀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를 축소하는 다양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를 축소적용 또는 적용배제

미국의 경우 조정 후 총소득이 USD 275000 (약 3억 원)을 초과하면 일부 항목의 소득공제 한도가 거꾸로 줄어들고, 교육비 세액공제, 노령자 공제 등은 아예 적용되지 않습니다. 호주의 경우 조정된 과세소득이 AUD 150000(약 1.5억 원)이 넘으면 부양가족 공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영국, 캐나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 공제제도가 많고, 적용되더라도 소득이 올라갈수록 공제 한도가 줄어듭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고소득자에 대한 과도한 세금감면을 막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득공제 종합한도와 종합소득에 대한 최저한세라는 제도가 있긴 합니다. 우선, 소득공제 종합한도는 보험료, 주택자금 등의 특별공제 총액이 2500만 원을 넘을 수 없도록 정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해 보면, 특별공제 총액이 2500만 원을 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실효성이 의심되는 제도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종합소득에 대한 최저한세 제도입니다. 최저한세 역시 여러 공제·감면을 중복하여 적용하게 되어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공제감면을 합하여 총괄 한도를 두는 제도입니다. 즉, 아무리 공제·감면을 많이 받아도 최소한 이만큼의 세금은 내야 한다고 정한 것입니다.

종합소득에 대한 최저한세의 계산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제·감면이 없다고 하면 내야 할 세금(정상세액)이 A라고 하고, 실제 모든 공제·감면을 받아서 낼 세금(실제 세액)이 B라고 할 때, B가 A의 어느 비율 이하이면 더 이상의 공제·감면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그 비율이 어느 정도여야 합리적일까요? 아래 표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는 정상세액 기준 3천만 원까지는 35%가 기준이고, 3천만 원을 넘으면 45%가 기준입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세금 3천만 원까지는 65%까지 깎아주는 것을 인정해주고, 세금이 3천만 원을 넘으면 55%까지 깎아주는 것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표2] 최저한세 적용 기준
 [표2] 최저한세 적용 기준
ⓒ 소득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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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감면액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설정해 놓은 생색내기 최저한세

이 기준의 합리성을 따져 보기 위해 소득세 전체의 조세지출액과 징수액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아래 표는 국회에서 발간한 '한눈에 보는 대한민국 재정'에 나오는 소득세 징수액과 기획재정부가 작성하는 조세지출예산서에 나오는 소득세 조세지출액을 비교한 표입니다.

[표3] 소득세 감면율
 [표3] 소득세 감면율
ⓒ 국회,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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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징수액과 소득세 조세지출액을 더하면 원래 거두어들였어야 하는 총 세금(정상세액)이 됩니다. 소득세 조세지출액을 이 총 세금으로 나누면, 전체 국민의 평균 소득세 감면율이 나오는데 약 25%입니다.

이 말은 현재 소득세를 300만 원 내고 계신 분은 각종 공제·감면을 못 받았으면 400만 원 냈어야 하는데, 100만 원을 감면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소득세를 3억 원 내고 있는 고소득자의 경우 공제·감면을 못 받았으면 4억 원을 냈어야 하는데 1억 원을 감면받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최저한세 적용 기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상세액의 55% 또는 65% 감면까지는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정상세액이 4억 원이면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1억 원만 감면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 감면액이 2.2억 원이나 2.6억 원이 되면 그 이상 감면받는 것은 절대로 막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단속 의지가 없는 '생색내기 단속'이나 다름없습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실제 감면율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평균이 25%이니, 고소득자에 대한 감면율이 50%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따져도 역시 단속기준은 그보다 높습니다. 실적은 없이 폼만 잡고 있습니다.

최저한세의 적용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소득세의 각종 공제는 생계비를 보장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계의 문제가 없는 고소득자에 대해 많은 선진국들은 그 공제 한도를 축소하거나 아예 적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편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적인 필요성이 없는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감면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종합소득에 대한 최저한세의 적용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여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감면 8조 원을 큰 폭으로 줄여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부천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인 <콩나물신문>에 동시 송고할 예정입니다.



태그:#최저한세, #고소득자 공제감면, #종합소득 최저한세, #고소득자 증세, #과도한 공제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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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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