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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세기의 대국> 이세돌 9단과 알고리즘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캐논 1DX 2회 다중촬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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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완승을 예측한 사람으로, 솔직히 두번째 대국을 보고 절망했다. 2대0이 3대0이 될 것이고, 그러면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4대0, 5대0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번째 대국을 보면서 역시나 했다. 알파고의 초반과 중반의 운영이 훌륭했고, 마지막의 패 싸움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약점을 찾을 수 없는 상대였음이 또다시 확인되었다.

그런데 반전의 계기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었다. 세번째 대국 후 이세돌의 인터뷰 발언이었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적인 성숙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패배가 확정되어 부담감을 떨쳐 버렸으니 4,5국은 다를 것이다'는 말도 했다.

그 반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국을 하면서 홀로 진행한 전력 분석

우선, 전력 분석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를 포함하여 대전(match) 형태의 경기에서 전력 분석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야구를 포함하여 많은 스포츠 팀들이 전력 분석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바둑도 중요한 시합 전에는 상대방의 최근 기보를 모두 입수해 기풍,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관례다. 알파고의 다음 상대로 언급되는 스타크래프트는 상대 플레이어의 리플레이 화면을 입수해 초단위로 분석을 한다. 

전력 분석을 생략하는 경우는 분석 없이도 이길 정도의 실력차이가 날 때이다. 예전에 메이저리거가 다수 출전한 미국 야구 대표팀이 언더핸드 투수를 보유한 한국 대표팀을 분석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한화가 한참 야구를 못할 때 삼성이 한화경기에는 전력 분석팀을 파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워낙 실력차이가 난다고 봤기 때문에, 알파고의 기보를 입수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한국기원에서 구글에 구두로 기보를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나오기도 했지만, 굳이 그런 노력까지 기울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봤던 것 같다.

세판을 내리 진 다음에 확인된 것은 알파고의 실력이 전력분석 없이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알파고가 이세돌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언더핸드 투수를 집요하게 등판시킨 우리나라 야구대표팀이 메이저리거가 다수 포함된 미국 대표팀을 여러 차례 이겼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알파고의 기보를 입수하여 철저히 분석을 한 후, 다시 도전해 보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고서도 진다면, 그때는 정말 알파고가 인간을 바둑으로 꺾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기원에서 나중에 불공정 경기라고 말한 것은 호탕하게 도전을 받아준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아쉬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전에 기보를 입수해서 분석했다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마땅히 들었을 법하다.

직접 알파고와 상대하고 있는 이세돌은 대국과정을 통해 직감으로 전력분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3국에서 하변의 거대한 세력에 침투한 것도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절대 수가 나지 않는 곳으로 봤다. 좀 더 심한 이야기는 저런 상황에서 들어가는 것은 프로의 예의가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알파고의 전력분석을 위해 하변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깨달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알파고가 자신의 완전한 세력 속에 들어온 상대 말을 처리하는 데 예상외로 서투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결국 알파고가 3국을 이기긴 했으나 수가 나지 않을 상황에서 수가 나도록 허용했다. 이세돌이 4국에서 상대의 거대한 세력을 허용하고 그 안에서 타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은 그러한 전력분석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4국의 소득 중 하나는 알파고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실력 차이가 상호 전력분석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실력차이라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다.

부담감 떨친 이세돌의 묘수

두번째는 이세돌이 3국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점이다. 부담감을 떨친 이세돌은 달랐다. 상변과 중앙까지 이어진 알파고의 거대한 세력 속에서 묘수를 찾아냈다. 이세돌이 묘수를 찾아내자 알파고가 당황했다. 의문의 수를 여러 번 두더니 그 이후에는 무너진 것 같았다. 불리한 형세를 역전시킬 만한 승부수를 두지 못하고 자멸했다고 봐야 한다. 

생각해 보니 이세돌이 이긴 바둑에는 이세돌만이 둘 수 있는 묘수가 항상 있었다. 해설하는 다른 프로기사들이 '암울합니다'라고 말할 때쯤 터져 나오는 예측하지 못하는 수로 바둑을 역전시켜왔다. 이세돌이 승리한 바둑 수만큼 다른 프로기사가 흉내낼 수 없는 묘수가 있어왔다.

그런데 3국까지는 그런 묘수가 안 나왔다. 다른 프로기사들이 딱히 실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지만, 원래 이세돌은 다른 기사들이 찾지 못하는 묘수를 두어서 이기는 기사였다. 미지의 상대와 낯선 환경에서의 대결, 인간을 대표한다는 부담감 등이 그동안 그 묘수를 두지 못하게 했으리라.

마지막 초읽기의 극한 상황에서 보여준 투혼도 아름다워

매번 프로기사들의 형세판단이 틀려왔기 때문에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형세가 유리하다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초읽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릴이었다. 특히 108수부터 마지막 초읽기에 몰려, 항상 59초에 한수씩 둘 때는 정말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다 이긴 바둑을 시간패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앉아서 바둑을 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초읽기 상태에서 투혼을 발휘한 이세돌. 3국 후의 인격적인 성숙함이 느껴지는 발언과 함께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태그:#이세돌, #알파고, #첫승, #전력분석, #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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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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