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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조금 특이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 대개의 친구들은 당구장으로 가 선배들이 치는 걸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그랬습니다. 그냥 물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며 몸으로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습니다. 당구와 관련한 책을 먼저 보고, 수영과 관련한 책을 앞서 봤습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남달리 당구를 잘 친다거나 수영을 잘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연습은 게을리 하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먼저 보던 친구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에 반해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친구는 그만이 터득한 기발한 방법이 있었겠지만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당구교본이라는 책을 먼저 보고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이 친구는 당구로 묘기를 부릴 정로의 실력자가 돼 있었습니다. 묘기에 숨어 있는 원리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였습니다.

세 친구 중에서 책으로 당구와 관련한 기본지식, 원리 등을 먼저 익히고 연습까지 정말 열심히 한 친구가 당구를 가장 잘 쳤음을 물론 당구에 대한 이야기조차 제일 재미있게 잘했다는 건 어쩜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철학을 배경으로 한 <선종영가집 강해>

<선종영가집 강해>(지은이 한자경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26일 / 값 30,000)
 <선종영가집 강해>(지은이 한자경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26일 / 값 30,000)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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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영가집 강해>(지은이 한자경,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선종,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 받는 데 필요한 지식을 보다 폭 넓게 확보할 수 있도록 꾸려주는 광역대 주파수 같은 내용입니다. 

세상이 좀 간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조차도 대승과 소승으로 나뉘고, 선종과 교종으로 나뉩니다.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하는 선종은 달마대사가 전한 것으로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종지(宗旨)로 하고 있습니다.  

교외별전이란 문자와 언어를 쓰지 않고 따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교종은 교학(敎學)을 중요시 하는 종파를 말합니다.

책을 먼저 보며 당구 원리를 익히고 수영법을 배우던 친구를 교종이라고 한다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몸으로 부딪히며 터득해 나가는 친구는 선종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선종영가집>은 서른한 살 때 제6조 혜능(638~713)을 찾아가 법거량을 하고 하룻밤 쉬어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는 별명을 얻은 당나라 현각(玄覺, 665~713)의 대표 저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각이 온주 지방 영가현 사람이어서 영가(永嘉)라고 불렸다고 하니 영가는 현각을 지칭하는 택호로 보면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선종영가집'이란 현각(영가)이 선종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성욕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필사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번뇌를 벗어 해탈할 수 있다. 중생을 끊임없이 윤회하게 하는 근본이 결국은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 쾌락을 좇아 이성에 집착하는 성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독사에 물릴지언정 성욕을 좇지 말라고 했다.' - <선종영가집 강해> 151쪽

'무릇 병자가 걷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지팡이를 취하고 그런 연후에 비로소 걷는다. 마음을 닦는 자 또한 이와 같이 반드시 먼저 연려를 멈추어 마음을 적적하게 하고, 그다음 마땅히 성성함으로 혼침에 이르지 않아 마음을 역력하게 해야 한다.' -<선종영가집 강해> 275쪽

선종을 교외별전이라고 했습니다. 교외별전이란 문자와 언어를 쓰지 않고 따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선종에 무슨 교학(설명)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온전히 몸으로 부닥뜨리며 터득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터득하는 방법, 갖춰야 할 조건이나 요건, 방법 속에 깃들어 있는 원리 등을 사전지식으로 알게 된다면 훨씬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알아두면 더 유용한 자연의 법칙같은 내용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에너지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전기와 자기, 전기장과 자기장, 전하밀도와 전류밀도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맥스웰방정식을 이해하고 있으면 좀 더 성능 좋은 안테나를 만들어 필요한 주파수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선종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좌선에 드는 것 보다는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있는 정보, 챙겨야 할 것은 미리 챙길 수 있는 준비, 알아야 할 것을 미리 알아 두는 사전지식을 갖게 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수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밝게 하여 어리석음 아닌 지혜를 이루는 것이 비파사나이고, 고요하게 하여 산란함이 아닌 선정을 이룸이 사미타이다. 그렇게 하여 사미타와 비파사나, 선정과 지혜로써 각각 움직임과 어둠, 산란함과 어리석음을 버리는 것이다.' -<선종영가집 강해> 327쪽

'무릇 통하는 길을 묘하게 깨우치면 산이나 강도 막힘이 아니지만, 이름에 미혹하고 상에 걸리면 실이나 털 하나도 막힘이 된다.' -<선종영가집 강해> 479쪽-

<선종영가집 강해>는 불교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사전지식이자 운동 후 꼭 챙겨야 할 스트레칭 같은 내용입니다. "'토끼뿔'이라는 이름은 토끼에게 뿔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지, 그런 이름이 있다고 그 이름이 지칭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를 새길 즈음이면 불교와 선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사(事)와 리(理)가 둘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선종영가집 강해>(지은이 한자경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2월 26일 / 값 30,000)



선종영가집 강해

한자경 지음, 불광출판사(2016)


태그:#선종영가집 강해, #한자경,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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