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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허난설헌 남매를 품었던 초당솔밭을 자전거로 달려본다
▲ 자전거로 만나는 강릉 허균허난설헌 남매를 품었던 초당솔밭을 자전거로 달려본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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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zen(이젠)으로 달려간다. e-zen은 바다와 강, 솔밭 사이에 위치해 있어 주차 후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장소다. 사실 e-zen의 너른 마당은 자전거여행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자전거 안전교실과 어린이 자전거 면허증, 이색자전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하단의 정보글 참고).

오늘 내가 자전거여행의 출발점으로 e-zen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다. 평소 e-zen에 올 때마다 이 다리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다. 소나무 뿌리를 닮은 요새같은 e-zen과 아름다운 초당솔밭을 이어주는 이 다리의 느낌은 오작교 같았다. 그런데 오늘 자전거로 달리는 나에게는 님에게 닿게 해주는 오작교보다는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주는 듯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풍경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다리가 저 너머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듯하다
▲ 강릉 자전거여행 다리가 저 너머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듯하다
ⓒ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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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생가터 옆에서 출발해 강문해변과 경포호를 지나 다시 경포해변으로 향한다
▲ 바우길5코스이자 자전거 추천코스 허난설헌생가터 옆에서 출발해 강문해변과 경포호를 지나 다시 경포해변으로 향한다
ⓒ (사)강릉바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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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밭을 지나고, 정글도 지나고...

다리를 지나자마자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리니 자그마한 자갈들의 존재가 온몸으로 전해온다. 그렇게 땅의 기운을 느끼며 하늘로 쭉쭉 뻗어 오른 초당 소나무들 사이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 나간다.

이곳 초당 솔밭은 허균·허난설헌생가가 있는 곳이다.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허균,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남매를 키운 천년의 소나무숲을 거니는 것은 강릉사람이 가진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나는 이곳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 나의 상상은 조선시대로 돌아가 허씨 남매께서 자전거가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 새로운 문학을 창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초당솔밭을 지나 경포호수 쪽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 바로 우측, 강문으로 향하는 길로 핸들을 튼다. 그런데 이 초입은 사방이 수풀이 우거져 마치 작은 정글로 들어가는 것 같다.

인적이 드물어 작은 정글같은 곳
 인적이 드물어 작은 정글같은 곳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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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지만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다. 역시나 수풀이 꽉 채우고 있기 때문에. 아마존 정글을 여행할 때가 생각나 흐뭇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무언가 '철퍼덕 첨벙'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내 더 큰 소리가 나더니 날갯짓 소리로 이어진다. 후드득 소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내 자전거 바로 앞으로 '휘'하고 날아간다.

가끔 소심해지는 내 심장이 순간 철렁했다가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경포호수와 그 주변 습지는 수많은 철새들의 휴식처이자 철새탐방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휴식 중이던 동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이 정글을 만나고 그 안의 생명들을 이렇게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구나.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강문해변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사진 찍기 좋다
▲ 강릉 강문해변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사진 찍기 좋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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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의 상징이 된 솟대다리. 솟대다리를 기점으로 북쪽은 경포, 남쪽은 강문해변이다
▲ 강문 솟대다리 강문의 상징이 된 솟대다리. 솟대다리를 기점으로 북쪽은 경포, 남쪽은 강문해변이다
ⓒ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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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정글라이딩을 끝내고 강문에 들어선다. 해변 주차장을 정비하기 전에는 그저 횟집을 이용할 때만 가끔 들리는 곳이었는데 주차장과 백사장 정비사업을 마친 후에는 소소한 매력이 있는 해변으로 변신한 것 같다.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들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추억담기에 여념이 없다. 강릉의 대표 해변인 경포 바로 옆에 있어 그 유명세에 밀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가는 강문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도 다섯 개나 들어서면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사실 강문해변은 위로는 경포해변, 옆으로는 경포호수, 아래로는 강릉바우길5코스(바다호숫길)중에서도 매력적인 구간인 해송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에 참 좋은 듯하다. 

강릉 강문해변~송정해변~안목해변. 사진 위쪽으로 강릉항(안목항)이 보인다
▲ 경포 상공에서 남쪽으로 본 풍경 강릉 강문해변~송정해변~안목해변. 사진 위쪽으로 강릉항(안목항)이 보인다
ⓒ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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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자로 강문을 찾아온 나로서는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만 '탁' 올려놓으면 되는 높이의 낮은 돌담이 있어서 좋다. 백사장 바로 앞에 쉽게 멈춰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라이딩 한 코스 중에 자전거로 갈 수 있는 파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네. 아마 전국에서도 바다와 가장 가깝게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몇 곳 중 하나일 듯하다.

경포해변 쪽으로 달리다보니 강문교, 일명 솟대다리가 눈앞을 꽉 채운다. 이 다리는 경포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 위에 세워진 다리로 이곳을 경계로 북쪽은 경포해변, 남쪽은 강문해변이다. 이 솟대다리 아래, 경포호의 물줄기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강문의 작은 항구가 있다. 그곳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데 낚시꾼들도 몇몇 보인다. 이곳은 다른 항구와 달리 상가와 주차장이 있는 곳보다 아래에 위치해서 비가 오더라도 비를 맞지 않고 낚시를 할 수 있다.

또한 항 위쪽은 바다와 솟대다리를 감상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있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남다른 구조의 강문항 역시 매력적이다.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자전거 위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풍경이 되어주는 순간이다.

낮은 돌담과 자전거
▲ 강릉강문해변 낮은 돌담과 자전거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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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해변에서 경포해변을 잇는 솟대다리 위에서 본 강문항 낚시풍경
▲ 강문항낚시 강문해변에서 경포해변을 잇는 솟대다리 위에서 본 강문항 낚시풍경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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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낭만을 품은 경포

북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드디어 강릉의 대표 관광지, 경포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 경포해변은 경포호와 바다 사이에 생성되어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변이다. 해운대, 대천해변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변 중 하나인데 백사장이 6km나 되어서 걷거나 달리기에는 최고다.
경포해변은 몇 년 전 산책로 데크가 설치된 이후 모래를 밟지 않고 백사장 위를 걸을 수 있는 더욱 매력적인 해변으로 거듭났다. 이 길은 걷는 이들을 위한 것이니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그 나뭇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3대 해변 중 하나로 백사장이 6km나 되어서 걷기 좋은 길이다
▲ 경포해변 남쪽 우리나라 3대 해변 중 하나로 백사장이 6km나 되어서 걷기 좋은 길이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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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여행자
▲ 경포해변 그네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여행자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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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비어있는 나무그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그네에 앉아 조금씩 흔들어보는데 자전거로 달릴 때 듣지 못했던 파도소리에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진다. 나는 언젠가부터 여행길 위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의 소리는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들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갈매기들의 군무가 펼쳐졌다. 파도 앞에서 한 아이가 과자를 던지며 갈매기들과 놀고 있다. 파도가 넘나드는 백사장 그리고 소년과 갈매기, 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시가 된다.

파도가 넘나드는 백사장 그리고 소년과 갈매기, 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시가 된다
▲ 소년과 갈매기 파도가 넘나드는 백사장 그리고 소년과 갈매기, 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시가 된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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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전거를 굴려 경포호수 쪽으로 향해본다.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인 경포호수는 바다와 거의 맞닿아있고 그 둘레에 자전거길이 놓여있어 한달음에 호수도 품을 수 있다. 특히, 경포호수와 습지를 둘러보는 길은 평화로이 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들에게 반드시 추천해주고픈 길이다.

자동차 소리를 비롯한 인공의 소리 없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가 귀를 가득 메운다. 다양한 종류의 새소리를 듣노라면 신기할 정도다. 호수를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웃음소리는 덤이다. 호수 주변에는 곳곳에 벤치도 마련돼 있어 자전거에서 내려 편안히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 물고기와 더불어 물새들이 첨벙이는 소리며, 먹잇감을 낚아채는 장면도 가까이 볼 수 있다. 그렇게 호숫가 의자에 앉았다가 오리가 한참을 잠수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동물들의 자연활동을 그렇게 편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

경포호수를 달리는 자전거여행자
▲ 강릉여행 경포호수를 달리는 자전거여행자
ⓒ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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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만개한 날의 경포호
▲ 강릉 경포호 벚꽃만개한 날의 경포호
ⓒ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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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다시 경포해변 중앙광장 쪽으로 향한다. 중앙광장 한 귀퉁이에 커다란 빨간 우체통이 알록달록 꽃밭과 어우러져 더욱 빛이 난다. '추억의 느린 우체통'이다.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받을 수 있단다. 경포해변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우체통에 가득하다. 그런 우체통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엽서를 쓰고 있는 어른들 틈에 한 꼬마아이가 눈에 띈다. 자신의 목까지 오는 작성대에 양쪽 어깨를 높이 올려 기대고 정말 온 마음을 다해 한자 한자 써 내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참 예쁘다.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받을 수 있다
▲ 추억의 느린 우체통(경포)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받을 수 있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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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을 다해 한자한자 써 내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참 예쁘다
▲ 추억의 느린 우체통(경포) 온 마음을 다해 한자한자 써 내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참 예쁘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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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변의 중심에 있으니 역시 '경포는 경포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강릉 사람은 사실 경포보다는 주차가 편하고 더 조용한 해변을 많이 찾기도 하지만 관광객은 '강릉 하면 경포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는 듯하다.

단체관광 오신 어르신들이 불편한 구두를 신고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고 걸어가 파도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이제야 처음 강릉여행을 오셨나보다. 여행 간다고 갖춰 입느라 구두를 신고 오셨나보다. 자식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강릉 여행 다녀왔다 보여줄 사진을 남기고 싶으신가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단체관광 오신 어르신들이 불편한 신발을 신고도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고 걸어가 파도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 강릉 경포해변 풍경 단체관광 오신 어르신들이 불편한 신발을 신고도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고 걸어가 파도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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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 지켜보는 일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포 중앙광장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한 가족이 있다. 경포광장이라 쓰여 있는 큰 바위 앞에서 아빠가 두 딸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노라니 내 어릴 적 사진들이 떠올랐다. 누구나 그런 사진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간 여행지에서 그곳의 이름이 들어간 조형물 앞에서 찍는 상징과도 같은 사진들. 우리 부모님도 나와 내 동생을 그렇게 담아주셨는데. 여덟, 아홉살 쯤으로 보이는 두 딸은 훗날 경포해변에 어느 곳보다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될 것이다.

아빠가 두 딸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 강릉 경포해변 풍경 아빠가 두 딸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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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zen에서 즐기는 자전거

자전거와 함께 주말나들이를 생각해 본다면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e-zen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화요일~일요일, 자전거 안전교육 숙지 후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또, e-zen 자전거 교육장에서 어린이를 위한 단계별 자전거 교육(어린이 자전거 면허증 발급) 뿐 아니라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무료교육이 이뤄진다. 자전거를 못타는 어른들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무엇보다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zen은 초당솔밭과 경포호수 사이에 위치해 있어 주변으로 나들이를 이어가기에도 좋다. e-zen 바로 옆, 경포석호생태관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

※ 이젠 자전거안전교실 (매시 정각 15명씩)
- 화~금요일 오후 2시~5시
- 토~일요일 오전10시~12시, 오후2시~5시

※ 리컴벤트 타고 이젠 한바퀴
- 토요일 오후1시~4시, 체험시간 10분 (체험비1,000원)
- 4월부터 시작

※ 자전거 무료대여
- 화~일요일 오전10시~12시, 오후1시~4시
- 단지 내에서만 이용가능, 신분증 지참

e-zen 마당 한편에 마련된 자전거교육장에서 어린이가 자전거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zen 마당 한편에 마련된 자전거교육장에서 어린이가 자전거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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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페달을 밟아 여러 대를 연결하여 함께 달릴 수 있는 이색자전거, 리컴벤트 체험
▲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페달을 밟아 여러 대를 연결하여 함께 달릴 수 있는 이색자전거, 리컴벤트 체험
ⓒ 강릉 녹색도시 체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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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강릉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기획하고 파랑달협동조합이 제작한 여행 책자 <다섯가지 테마로 즐기는 강릉여행, 2015>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강릉여행, #바우길, #자전거여행, #동해안자전거길, #파랑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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