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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
ⓒ 스튜디오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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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이름을 잊어버려서는 안돼!'

스튜디오 지브리의 2001년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얼굴이 없는(가오나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름'으로 대표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에서 가오나시는 이름은 커녕 얼굴도 없다. 그는 타인의 관심을 끌기위해 그들의 욕망을 두드리지만, 그것은 그의 진심이 아니며 정작 그 자신도 어떻게 타인 앞에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한다.

캐릭터의 격전장인 애니메이션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 없는' 캐릭터는 어쩌면 가장 현실에 있음직한 '우리'를 대신하는 듯해 계속 마음이 쓰였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의 경쟁터가 된 현실에서 나를 잡아 먹힌 '가오나시'가 아닐까.

존재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욕망, 명함에 쓰여진 타이틀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던 차에 또 다시 한 책의 제목에 '낚였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메는 이유>라니! 아, 이건 무슨 말이야? 나를 찾아야 한다며 '난, 나야'를 외쳐댄 것이 스무해를 넘어가는데, 결국 끝이 없는 방황의 이유가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니!

책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표지.
 책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표지.
ⓒ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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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기분으로 들여다보니, 이 책은 그 '본질'에 대한 집착은 사회의 강요일 뿐이며, '진정성'에 대한 욕망을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네가 진정성이라 믿는 것이 결국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말이다. 엄청난 배신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적인 맥락을 들여다 볼 것을 조언한다. 저자의 설명을 돕기 위한 등장인물로 세 명의 '향단이'를 떠올려 보자.

우선, 조선시대의 향단이에게는 계급이 존재했고 '춘향이의 몸종'으로도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00년대의 향단이는 어땠을까? 안타까운 식민지의 역사였지만, 봉건제를 지탱하던 계급은 허물어졌고 향단이는 더 이상 '춘향이의 몸종'이 아니기에 그녀를 표현할 또 다른 가치를 필요로 하게 된다. 과연 무엇으로? 좋은 옷? 좋은 차?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겉모습'으로 경쟁해오지 않았는가?

자, 이젠 2016년의 향단이를 생각해 보자. 기술의 급격한 진보는 다양한 문화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었고, 2016년의 향단이는 불행하게도 전 세계의 동시대인들과의 가치 경쟁 안에서 지쳐가고 있다. 4천만 명의 레이스에서도 승리하기 어려운 세상인데, 70억 인류와의 끝이 없는 경쟁 안에서 더욱 더 '돋보여야 한다'는 집착은 '진정성'이라는 괴물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괴물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하다. '너를 최고로 포장해 줄게,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 줄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 얼굴 없는 가오나시가 사람들의 욕망에 응답하고자 가짜 금을 만들어낸 것처럼, 진정성이라는 괴물은 세상의 신뢰를 망가뜨리는 댓가로 엄청난 부를 만들어 냈다. 결국, 저자는 '진정성'은 인간의 무한 경쟁이 만들어낸 '거짓'이며, 이 또한 자본의 장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성조차 거짓인 현실은 더 이상 누군가를 '대가없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너무도 슬프지만, 우리는 '거짓'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서로를 한 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너를 믿을 수 없으니, 티끌하나 없는 너를 보여봐.' 거짓을 걸러낼 수 없다는 체념으로 '투명성'을 강요하다가, 결국 나의 얼굴도 없어져 버린 것이었던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우리가 '거짓'으로 가득찬 진정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벗고,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 시스템의 회복만이 개인의 '차별화된 가치'를 통한 창의적인 경쟁력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이 강화된 행정 시스템에 의한 부정부패의 감시 체계를 튼튼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기능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의 확대로 인한 경쟁의 과열이나 투명성의 강요로 인한 사생활의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감시장치를 만드는 것도 민주주의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를 옹호하려면 우리는 왜 프라이버시가 그 자체로 소중한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생활의 공고한 존중이 우리가 당연시하는 각종 자유를 지탱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가가 정보를 얻기를 원한다면) 공무를 수행하는 자가 요구하면 국민은 신분증을 보일 의무가 있다는 법률 하나만 통과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런 통제의 대가는 엄청날 것이다.

… 궁극적으로 사생활 보호는 자율, 판단력, 개인 책임을 믿는 사람들, 감시당해서가 아니라 의무의식과 도덕판단에 따라 법규를 준수하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루는 문화 속에서 가치를 발휘한다. … 감시는 범죄자에게나 필요하고, 쓸데없는 가십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생활보호를 '그만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나는 이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내 자신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지도 못하는 '거짓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진정성이 화두가 되지 않는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망가진 신뢰를 회복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수많은 가오나시들이 더 이상 남의 욕망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게 될까? 우리의 민주주의를 믿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메는 이유>(앤드류 포터 지음/노시내 옮김, 마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진정성의 의미, #민주주의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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