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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삼청동 땅과 맞교환으로 종로구 통의동에 새로 건립된 '아름지기' 사옥.
 종로구 삼청동 땅과 맞교환으로 종로구 통의동에 새로 건립된 '아름지기' 사옥.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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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에는 전통문화의 보존 및 현대적 계승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 '아름지기'가 위치해 있으며, 그 건물이 올해 완공되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 신연균이며, 운영위원회임원으로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녀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삼성가 여인들'이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이런 이력과 더불어 이 단체의 폐쇄성 등의 이유로 '아름지기'가 삼성가 안주인들의 고급 사교모임이라고 폄훼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궁궐보존 등 공공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아름지기와 같은 단체가 하고 있다며 이는 상류층 인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일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런데 이 단체의 목적이나 성격과 별개로 아름지기 건물이 이곳 통의동에 들어서게 되는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소유의 '삼청장'을 청와대비서실에서 수용하면서 그에게 넘겨준 국유지의 위치.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소유의 '삼청장'을 청와대비서실에서 수용하면서 그에게 넘겨준 국유지의 위치.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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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정부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소유의 삼청장(삼청동 145-20)을 청와대가 매입하는 과정에서 그 대체부지로 이곳 통의동 땅(35-32번지와 35-33번지)과 청운동 땅(89-149번지)을 주며 맞교환하였다.

그런데 삼청장은 2009년 공매에서 당시 감정가가 약 78억 6천만 원이었던 것을 홍 회장이40억 1천만 원에 낙찰 받았고, 그 대체부지로 넘겨준 통의동과 청운동 땅의 감정가는 97억원이었다. 시세는 더 차이가 난다. 특히 통의동 땅은 경복궁역 바로 옆이라 이보다 훨씬 높게 거래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홍석현 회장은 2년 만에 최대 50여억 원의 시세차익을 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어떤 이면거래가 있었냐는 등 많은 의혹을 일으켰던 거래였다.

더우기 통상 이 일대는 쉽게 지하층 개발이 허가나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허가를 내주어 특혜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공사 중 여러 유구들이 발견되었고, 지금은 그저 그런 것들이 나왔다는 정도의 안내문구만 신축건물 기둥 안내판에 붙어 있을 뿐 역사자료로써의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삼청장'의 주인들을 통해 본 친일의 뿌리

조선 말기 및 일제시대 최대의 부자는 단연 친일파 민영휘였다. 아마 현재 대한민국 제1위의 부자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조차 그에 이르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만큼 일국의 부를 독차지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의 막내아들 민규식이 삼청장의 소유자였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며 정국이 변하자 민규식은 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한 우사 김규식에게 이 집을 쓰게 한 것이다. 하지만 김규식은 전쟁이 발발했던 그해 12월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사망함으로써 그후 다시 민규식의 소유로 넘어왔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 민규식의 후손들이 삼청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민영휘 후손 명의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였다. 그 뒤 2009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하였고, 그것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었다.

여기서 나는 삼청장의 소유권자의 변화를 보며 참으로 질긴 친일의 뿌리를 보게 된다. 민영휘의 아버지 민두호는 명성황후의 친척 오빠로 '민 쇠갈고리'로 불릴 정도로 이름난 탐관오리였다. 그의 아들 민영휘는 그런 아버지밑에서 한말-일제강점기 조선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수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삼청장은 그 가운데 작은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 삼청장을 낙찰받은 홍석현 집안은 또 어떤가? 그의 부친 홍진기는 일제강점기 판사를 지낸 친일파로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또 홍진기의 장인인 김신석 역시 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으며, 1944년 <경성일보>에 "조선의 부형들은 어린 딸을 여자 정신대로 안심하고 보내라"고 기고해 그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그리고 해방 후 홍진기는1959년 법무부장관에 재직 중 죽산 조봉암의 사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바로 다음날 그를 형장의 이슬로 보냈다. 뿐만 아니라 1960년 내무무장관 시절에는 바로 4.19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결국 4.19 뒤 민주당정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 뒤 석방되었고, 또 이병철과의 친분으로 사돈을 맺게 되고 <중앙일보> 사장을 하였다.

위에 언급한 친일파들은 이제 모두 사망하였다. 하지만 그 뿌리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의 삼청장이 이후 홍진기의 아들 홍석현 소유가 되었다. 참으로 질긴 친일의 역사이다.


태그:#서촌기행, #홍석현, #아름지기, #통의동,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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