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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국회 정보위원장인 주호영 의원,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 의원 등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관련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국회 정보위원장인 주호영 의원,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 의원 등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관련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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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주장처럼 테러방지법이 필요없는 법안이라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왜 테러방지법을 제출했는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이 같이 말하며 "테러방지법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공히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입법을 위해 노력해 온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심지어 새누리당이 (최근) 발의한 테러방지법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법안보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통제장치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라고도 주장했다.

지난 23일부터 시작돼 현재(26일 오후 4시 15분) 69시간째 진행되고 있는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앞뒤 다른 행동"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지금과 유사한 테러방지법이 발의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테러방지법은 모두 당시 야당(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전신)만 아니라 주로 여당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법무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다른 관계기관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즉, 정상적인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그에 따라 폐기된 법안들인 셈이다. 오히려 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하명'에 직권상정까지 불사하며 이를 밀어붙이고 있는 현 정부·여당의 태도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국무회의서 결정했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반대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1월 테러방지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발생했던 미국의 9.11 테러의 영향이었다. 당시 정부는 9.11 테러 직후인 9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기존의 국가대테러활동지침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 범정부적 대응체제 구축 차원에서 테러방지법을 입법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발의된 법안의 골자는 현재 발의된 테러방지법과 거의 유사하다. 구체적으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대테러대책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하에 설치하도록 했다. 또 국가정보원에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대테러센터를 설치하여 국가의 대테러활동을 기획·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바로 처리되지 않았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가 같은 해 12월 7일 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테러방지라는 대목적에 우리 국민 모두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런 목적에 대한 동의가 곧바로 특정 정보부처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고 우리 법체계를 초월한 초법적 권한의 행사까지 모두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폈다. 그는 또 "법률의 입안은 국민적 여론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민주적 절차성 보장이 기본"이라고도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절차'를 밟은 뒤 2002년 2월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즉,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또 다른 국가기관이 앞장서 반대한 셈이다. 결국, 김대중 정부의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테러방지법은 발의되지 못했다.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다시 시작됐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원회는 2003년 10월 4인 협의회를 구성한 후 그 해 11월 3일 공청회를 거쳐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일부 내용을 수정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했다.

그러나 법사위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현행 제도만으로도 테러대응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지금과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당시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대테러센터가 과연 현 단계에서의 테러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가, 현행 제도를 가지고 대처할 수 없는 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 과연 어떤 것이 있는지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제기된다"라고 지적했다. 조순형 당시 민주당 의원도 "통합방위법을 검토하셨는지 의문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야당만이 아니었다. 당시 갓 창당한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의원도 "정보기관이 그 어떤 행정권의 집행에 해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고도의 기밀을 다루는 정보기관으로서 인권침해나 권력남용의 위험이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2001년 발의됐던 테러방지법은 16대 국회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관계기관의 토론회 및 제언, 여야 협상, 소관 상임위의 공청회, 국회에서의 법안심사 등 충분한 공론 절차를 거친 결과였다.

대통령 의지에도 소신 지킨 여당, 누가 공당인가?

지난 2005년 8월 8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정원 불법도청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는 도중 물컵 뚜껑을 열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8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정원 불법도청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는 도중 물컵 뚜껑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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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조성태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 발의로 발의됐던 테러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당시 한나라당 공성진·정형근 의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을 통합한 정보위원회 대안으로 다뤄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8월 "테러 대응체제에 관한 제도를 지금 확보할 필요가 있고, 국정원이나 중심기관을 두고 그 기관의 제도적 권한을 뒷받침해야 한다"라면서 테러방지법 입법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 표명에도 여당은 'YES'만 외치지 않았다. 대통령의 말을 무작정 쫓는 것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 당당히 의견을 표출한 것이다. 

당장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원장이었던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NO'를 외쳤다. 2007년 2월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노무현 대통령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열린우리당의 신기남 정보위원장이 막무가내 반대로 법안심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불만을 토할 정도였다.

2005년 12월 열렸던 정보위의 '테러방지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 속기록을 살펴봐도 당시 여권의 분위기를 짐작 가능하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이 자리에서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라면서 "법이 없어서 우리가 테러방지업무를 못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던 같은 당 임종인 의원은 '법무부 수장도 이 법을 반대하지 않았느냐'라고 꼬집기도 했다. 임 의원은 공청회에 법무부 대표로 나온 김창희 검찰연구관에게 "천정배 법무장관이 국회 계실 때는 선봉에 서서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는데 법무부 장관과 얘기하고 나온 건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김 연구관은 "아직 말씀 못 드리고 나왔다"라고 답했다.

결국, 이 법안도 17대 국회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태그:#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김대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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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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