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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악당이 나타났다.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이때 도덕심으로 중무장한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치열한 싸움을 한 끝에 슈퍼히어로는 세상을 구한다.

어떤가.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전형적인 히어로물 이야기 아닌가. 사람들은 이제 이런 결말이 재미없다.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심지어 악당을 감화시키기까지 하는 영웅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적이지 않아서일까. '착하면 호구'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무조건 착한 것, 무조건 정의로운 것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조커가 시종일관 진지했던 배트맨에게 물었던 것처럼 말이다.

"Why so serious?"(왜 그렇게 진지해?)

이때 등장한 유쾌하고 코믹한 영웅들이 있다. <데드풀>의 데드풀과 <원펀맨>의 사이타마다. 이 둘은 이전까지 등장하던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저급하거나, 평범하다.

<데드풀>은 19세 이상 관람불가인데도 개봉 첫 주에 북미 매출로만 제작비의 두 배를 회수했다. <원펀맨>은 일본에서만 하루 2만 회 정도 열람돼 누계 1000만 명 이상이 봤다. 두 영웅 모두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어떤 점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저급한 히어로 <데드풀>

영화 <데드풀> 포스터
 영화 <데드풀>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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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폴은 일명 '안티 히어로'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론 아무리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데드풀 역시 마블의 슈퍼히어로 중 하나다. 검을 휘두르고 쏘는 총알마다 명중하는 실력도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그는 보통의 영웅 같지 않다. 일단 말이 너무 많다. 그리고 거칠다. 무게를 잡고 세상을 걱정하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다르다. 욕은 기본이고, 성적 농담을 즐겨한다. 감독을 '초짜'라고 하고, 여자 주인공을 '화끈한 여자', 투자자들은 '호구'라고 소개했다.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무게만 잡는 영웅들의 '안티'라고 일컫는 것은 아니다.

데드풀은 "난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데드풀의 액션 신에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총을 들어 상대방을 때리고 협박한다. 상대가 그저 '더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데드풀은 싸움을 붙이는 것도 좋아한다. 적을 죽일지 말지 결정하는 장면에서 동료가 "'진정한 영웅이라면 살려 줘야 한다"라고 설득할 때, 그냥 죽여 버린다. 그렇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오히려 악당 같은 느낌도 든다. 심지어 만화에서는 '또라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히어로인가. 그리고 그런 '또라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데드풀>은 왜 이렇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트맨> 속 조커의 물음에 시원하게 대답한 셈이다. 그래, 나 진지하지 않다고. 실패한 용병으로 어두운 뒷골목만 거닐던 그에게 거대한 사회 문제는 먼 얘기였을 것이다.

그를 고민하고 집중하고 설레게 만든 것은 그런 거시담론이 아닌, 한 여자였다. 그것도 같은 뒷골목을 배회하던, 자신이 '더 불행하게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여자다. 데드폴은 그녀를 마냥 행복하게 만날 수 없도록 한 불합리한 구조에 대들었다. 암을 치료해준다는 말만 믿고 히어로를 만들기 위한 비인격적인 실험에 참가했다가 부작용으로 '썩은 아보카도' 같은 얼굴이 돼버린 상황에 분노했다.

피 튀기는 거침없는 액션,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내뱉는 조롱에 관객들이 불편함보다는 시원함을 느끼는 이유다. 저급하지만, 진지하지 않지만, 영웅이 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평범한 히어로 <원펀맨>

만화 <원펀맨> 포스터
 만화 <원펀맨> 포스터
ⓒ ANIMAX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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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맹한 영웅도 있다. <원펀맨>의 사이타마다. 사이타마는 이름처럼 '원펀치'로 어떤 적이든 해치우는 무적의 사나이다. 시내가 한 순간에 초토화됐을 때, 다른 주인공들이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울 때, 조용히 사이타마가 나타나 한 방에 해결한다. '먼치킨(사기 캐릭터라는 뜻)'이다.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찾기 위해서 우주를 돌아다니며 일생을 바친 강한 악당까지도 한 방이면 된다. 우연찮게 특별한 약물을 먹었을까? 최첨단 기술로 몸을 개조했을까? 아니다. 그가 한 것은 '매일 윗몸 일으키기 100번, 팔굽혀펴기 100번, 스쿼트 100번, 10km 달리기'다. 그걸 3년을 해서 강력한 '원 펀치'를 얻었고, 그리고 대머리가 됐다. 이것이 그가 갖고 있는 영웅 스토리의 전부다.

사이타마는 그저 '취미로 히어로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안겨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영웅은 아니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무료함을 달랜다. 세일 기간에 맞춰 장보러 다니는 것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러다가 악당이 등장하면 잠깐 나가 해치우고 오는 정도. 힘은 비범할지라도, 이렇게도 평범한 영웅은 어디 없다.

항상 한 방에 해치우기 때문에 그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다.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영웅이라고 칭송해주는 것도 없다. 적을 해치우면 '또 한 방이야!'라고 절규할 뿐이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싶어 '히어로협회'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런 평범함으로 기존의 영웅주의를 비꼬는 것이 사이타마라는 히어로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적을 해치우는 의지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유명세에 따라 영웅이 되는 세태를 꼬집는다. 신체를 개조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정의감이 넘쳐도 C급 히어로에 머문다.

그리고 그런 히어로들을 판별하는 거대한 조직인 '히어로협회'의 내부 사정도 마치 불합리한 우리 사회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사이비' 영웅주의가 팽배해있는 사회에서 한껏 비켜나있는 사이타마는 '별 것도 아닌 게'라는 맹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맹하고 평범한 사이타마가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독자들이 그러한 시선에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요즘 히어로들이 이렇다. 이렇게 저급하고 평범하다. 그러면 또 어떤가. 대단하고 흠 잡을 데 없는 사람들만 영웅이 돼야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영웅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도 한다. 그 시대의 여러 고민들이 축적돼 영웅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우리에겐 고급보다 '저급'한, 대단보다는 '평범'한 모습이 더 절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는 '취미는 히어로'라고 말하는 <원펀맨>의 사이타마, 아래는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데드풀의 모습이다.
 위는 '취미는 히어로'라고 말하는 <원펀맨>의 사이타마, 아래는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데드풀의 모습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ANIMAX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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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원펀맨, #데드풀, #마블, #영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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