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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 노동관계법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새삼 해고의 자유화 문제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부는 재계 편을 들어 '저성과자'의 해고 자유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에 노동계는 극렬 반발하는 양상이다. 기업 경영자 측면에서는 손쉽게 해고를 해서 인력 관리를 하고 싶겠고, 생존권이 걸린 노동자들은 이를 저지하고 싶을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이런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양자의 손익을 다 살펴서 궁극적으로 무엇이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고가 근로자나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추가적 효과를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이런 측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해고된 노동자, 누가 부양할 것인가

첫째,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해고자를 부양해야 한다. 생산 요소 가운데 노동이 자본과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자본은 생산에 투하되지 않으면 없애 버릴 수 있지만, 노동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노동을 버리면 누군가는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해고자가 생기면 국가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해고자가 새로운 취업기회를 찾을 때까지) 해고자를 부양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 재원은 세금으로 해야 하니까, 궁극적 부담은 납세자가 진다. 결국 기업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는 것은 국민 전부에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과 유사하다. 기업은 행복해지지만 해고자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조금씩 더 불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국민이 져야할 부담 크기는 가변적이다. 해고자가 빨리 재취업하고 그곳에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국민들의 조세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해고자가 한번 실업의 그늘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매우 오랫동안 조세 부담을 짊어져야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해고 자유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고려사항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노동시장의 유동성 강화이다. 즉 한 곳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손쉽게 다른 곳에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둘째는 주어진 노동시장 여건 하에서 생기는 조세부담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수익자 부담원칙을 생각하면 그 부담은 해고의 자유를 통해 이윤을 더 챙길 수 있었던 기업에게 조금 더 많이 부담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사회보장 재원의 조달은 소득세 증가가 아니라 법인세 증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해고는 소비를 위축시킨다

둘째, 해고는 국민경제의 총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대체로 총소비를 감소시킨다. 해고가 총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세 가지다. 우선 해고는 생산과정에서 노동 투입의 양을 감소시킴으로써 총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총소득도 감소시킨다. (물론 해고를 통해서 생산의 효율성이 증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고자가 다른 곳에서 추가로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한, 총 생산량은 당연히 줄어든다.) 이에 따라 국민 경제의 총소비는 하락한다.

다음으로 해고는 노동자에게서 자본가로 소득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총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고에 의해 노동자는 소득의 감소를 경험하고, 자본가는 회사 이익의 증가를 통해 소득이 상승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소비는 감소하고 자본가의 소비는 증가한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국민 경제의 총소비가 어떻게 변화하는 가 하는 점인데, 대부분의 경우 한계소비성향(소득의 증가가 소비의 증가로 연결되는 성향)이 큰 노동자의 효과가 압도적이어서 총소비는 전체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해고가 총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마지막 경로는 해고의 자유화가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는 통상 항상소득의 함수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항상소득이란 안정적이고 항구적으로 수령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득의 부분을 말한다. 그런데 해고가 일상화되고, 직업의 안정성이 저하되면 노동자의 항상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소비는 줄고 저축은 증가하게 된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그 때를 위해 저축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 경제의 총소비는 감소하게 된다.

해고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마지막 효과는 생산성에 관한 것이다. 통상 해고는 생산성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비효율적인 노동 투입(혹은 '저성과자')을 생산에서 배제함으로써 생산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해고는 또 다른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인적 자본 향상을 위해 하는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해고는 해고된 당해 근로자가 보유한 인적 자본 그 자체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해고되지 않은 근로자에 대해서도 인적 자본 향상에 투자할 여유를 빼앗게 된다.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이 박탈되는 것이다.

해고는 기업의 생산성을 올린다는 잘 알려진 얼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뜻밖에 여기저기에 보기 흉한 민낯을 가지고 있다. 노동관계법 심의를 졸속으로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성인님은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태그:#노동, #해고,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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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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