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내리는 날, 다산유적지 산책로를 우산을 든 연인이 걷고 있다. 한강은 아직 얼어있으나 이제 곧 봄이 올 터이다. 입춘이 지났으니 꽃샘추위 남았다 해도 봄비일 터이다. 봄비와 안개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 다산유적지 봄비내리는 날, 다산유적지 산책로를 우산을 든 연인이 걷고 있다. 한강은 아직 얼어있으나 이제 곧 봄이 올 터이다. 입춘이 지났으니 꽃샘추위 남았다 해도 봄비일 터이다. 봄비와 안개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비가 오신다. 입춘이 지났으니 꽃샘추위 남았다고 해도 겨울비가 아니라 봄비다.

봄비를 맞이하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다산유적지를 걸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능내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동안의 세월을 보냈지만, 목민심서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서 실학을 집대성했다. 유배지에서의 삶을 통해 그의 모든 삶이 결실을 맺었기에 능내리의 다산유적지보다 강진의 다산초당이 더 유명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뭇가지가 물을 잔뜩 먹고 연록의 빛을 내고 있다. 머지않아 연록의 싹을 틔울 기세다.
▲ 버드나무 축축 늘어진 버드나뭇가지가 물을 잔뜩 먹고 연록의 빛을 내고 있다. 머지않아 연록의 싹을 틔울 기세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미 한강변의 능수버들은 물을 잔뜩 먹고 꽃눈은 곧 터질 듯 여물어 있었다. 물을 잔뜩 먹은 줄기는 피리를 만들어 불어도 좋을 만큼 푸릇푸릇했으며 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여린듯한 강인한 가지들이 몸으로 말한다.

봄비가 여린 가지 끝에 비이슬이 되어 맺혔다. 안개가 자욱한 한강이 그 작은 비이슬에 새겨진다. 강은 하난데, 어느새 한강이 비이슬이 숫자만큼이나 많아졌다.

나뭇가지에 맺힌 비이슬, 봄비가 만들어 낸 예술품이다. 봄을 피워내기 전 한바탕 아름다운 물방울 보석을 매달고 잔치를 벌인다. 봄은 이것보다도 더 찬란할 것이다.
▲ 비이슬 나뭇가지에 맺힌 비이슬, 봄비가 만들어 낸 예술품이다. 봄을 피워내기 전 한바탕 아름다운 물방울 보석을 매달고 잔치를 벌인다. 봄은 이것보다도 더 찬란할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아직 남아있는 수크령에 비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봄비에 흠뻑 젖은 수크령의 빛깔은 그가 돌아가 흙을 아주 많이 닮아있었다. 그들이 다 돌아간 뒤에 연록의 새싹이 올라올 것이다.
▲ 수크령 아직 남아있는 수크령에 비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봄비에 흠뻑 젖은 수크령의 빛깔은 그가 돌아가 흙을 아주 많이 닮아있었다. 그들이 다 돌아간 뒤에 연록의 새싹이 올라올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비를 맞으며 비로소 '봄이 이렇게 오는구나!', '겨울이 이렇게 가는구나!' 안도한다.

사계절 모두 좋긴 하지만, 난 겨울은 솔직하니 싫다.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가혹한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저 먹을 것 풍성하고 난방비 걱정도 없는 늦여름 정도가 딱 좋다. 으슬으슬하지 않은 가을까지도 좋다.

그래도 겨울이 있어야 봄도 있고, 겨울을 보내야만 자연도 건강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으니 통과제의인데 어찌할 것인가? 겨울도 좋아해야지.

겨우내 남았던 찔레의 이파리가 비이슬에 새겨진다. 이제 그들도 봄이 오면 미련없이 연록의 새싹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 찔레 겨우내 남았던 찔레의 이파리가 비이슬에 새겨진다. 이제 그들도 봄이 오면 미련없이 연록의 새싹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비가 내리니 나목들이 신났다. 저마다 앙상한 가지에 비이슬을 달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피워낼 꽃보다 열매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 그 어느 순간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을 안다.
▲ 비이슬 봄비가 내리니 나목들이 신났다. 저마다 앙상한 가지에 비이슬을 달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피워낼 꽃보다 열매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 그 어느 순간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을 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비이슬을 맺었다. 같은 봄비인데 저마다 다른 비이슬이라서 더 아름답다. 나뭇가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이면서도 결국엔 이슬이니 동그랗고 맑고 작다. 그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지. 달라서 더불어 아름다운 것이 자연이고, 자연을 통해서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함을 배우는 것이리라.

한 방울 한 방울 그렇게 떨어진 봄비가 다시 한 방울 한 방울 비이슬이 되어 맺혔다.
▲ 비이슬 한 방울 한 방울 그렇게 떨어진 봄비가 다시 한 방울 한 방울 비이슬이 되어 맺혔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문득,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왜 다르면 틀리다고 하고, 다르면 미워할까? 왜, 우리는 피아를 나누고 내 편이 아니면 증오하는 것일까?

분단된 조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왜 이렇게 우리는 서로 증오하며,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서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 같은데, 함께 죽는 길로 달려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봄은 오고 있는데, 봄비도 내리고, 언 강은 저 밑바닥에서 힘차게 흐르며 강을 녹이고 있는데 어쩌자고 우리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 증오하며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러려니 하고 싶은데,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으면 너무도 많은데 어찌 그것 하나 찾질 못하는가? 도대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자처하는 이들의 머리는 장식품인가?

이제 버들강아지도 기지개를 켜고 피어나고 있다. 피어난 버들강아지의 부드러운 솜털에 봄비가 비이슬이 되어 주렁주렁 맺혔다.
▲ 버들강아지 이제 버들강아지도 기지개를 켜고 피어나고 있다. 피어난 버들강아지의 부드러운 솜털에 봄비가 비이슬이 되어 주렁주렁 맺혔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수준인데 어쩌란 말인가?

선거철만 되면 안보이데올로기, 반공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이들은 국가안보를 위해서 누구를 찍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평화로우면 안 되겠지. 집권을 위해서는 늘 국민을 겁박해야만 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잠시 우리의 역사는 겨울공화국으로 회귀 중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이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이고 신나는 일인가?

얼어붙었던 한강이 서서히 녹고 있다. 얼음 아래로는 이미 유유히 흐르고 있을 강, 안개에 쌓여 보이지 않는 저 먼길 어딘가에 봄이 숨어있는 듯하다.
▲ 한강 얼어붙었던 한강이 서서히 녹고 있다. 얼음 아래로는 이미 유유히 흐르고 있을 강, 안개에 쌓여 보이지 않는 저 먼길 어딘가에 봄이 숨어있는 듯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봄비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추웠다. 다산유적지를 돌고 두물머리로 향했다. 아직은 겨울임은 언 강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저 보이지 않는 언 강 아래는 이미 두 강이 하나가 되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우리는 저 강처럼 만나면 안 되겠는가? 두 강이 만나 소용돌이도 치겠지만, 결국 한강으로 흐르듯 그렇게 우리 민족도 소용돌이치며 역사의 봄을 향해 흘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봄비와 안개에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희미함이 오히려 신비스러운 날이다.
▲ 두물머리 봄비와 안개에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희미함이 오히려 신비스러운 날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모든 것이 희미하다. 그러나 저 안개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고 안개 너머에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 안개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있으며, 그곳에 발딛고 선 그 어떤 이는 이곳이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봄은 저 안개 너머처럼 희미하지만,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역사의 봄도 지금은 안갯속처럼 희미하지만,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봄이 오려면 본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역사의 봄이 오려고 우리는 지금 기승을 부리는 겨울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봄비가 봄을 몰고 오시는데 우리 역사는 어느 계절을 향해 가고 계시는가?


태그:#봄비, #다산초당, #두물머리, #비이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