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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영국이 섬이라는 사실을 도버의 하얀 절벽을 보고 알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영국은 그들이 말하는 아대륙(subcontinent, 대륙보다는 작지만 섬보다는 큰 땅덩이)에 비하면 작은 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땅은 비옥하고 풍족한 땅이었다. 비록 2차 대전에서 독일이 영국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러시아로 눈길을 돌렸어도 영국은 나름의 입지적 우위를 갖는 곳이었다.

도버는 유럽의 관문이기도 하다. 밝은 날에는 멀리 프랑스 칼레가 20마일의 지리적 근접성을 갖는 곳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희미하게 나타나는 프랑스는 이곳이 유럽의 일부라는 귀속감을 안겨준다. 떨어져 있는 유럽일지라도 영국은 유럽임이 분명했다. 영국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치 손에 잡힐 듯이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땅의 입구에 도버가 있다.

멀리 프랑스의 칼레가 선명하다. 연 푸르른 도버 앞바다 바닷물 색깔이 오히려 칼레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유럽을 오가는 선박은 하얀 점들이 되어 그저 부정기선의 행적같이 무좌표로 전진하고 있다. 낮게 깔린 하늘의 투명한 푸르름이 마치 파란 컵 속의 물같이 잠잠하다.

잡초들이 화이트클리프의 한켠으로 비켜서서 자라나고 있다. 이미 푸르른 생동의 갈채처럼 환영받는 것이 아닌 듯, 바닷물의 청록과 대비되어 햇빛에 노출되고 있다. 연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그 좁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다. 목장 길을 걷듯이 그렇게 말이다.  

도버는 화이트 클리프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얇은 빗방울이 자주 흩날리는  이곳은, 비온 뒤의 무지개가 일품이다. 어느 오후 시간의 허전한 햇살이 내리는 날은 마치 동굴속의 작은 빛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새어나온다.
▲ White Cliff 도버는 화이트 클리프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얇은 빗방울이 자주 흩날리는 이곳은, 비온 뒤의 무지개가 일품이다. 어느 오후 시간의 허전한 햇살이 내리는 날은 마치 동굴속의 작은 빛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새어나온다.
ⓒ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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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것은 영국해협이다. 푸르고 맑은 그리고 손에 잡힐 듯 프랑스가 다가온다. 칼레의 희미한 잔영이 마치 완전히 모습이 갖추어지지 않은 미숙한 형체처럼 멀리 자리하고 있다. 도로변에는 유채꽃이 신나도록 드러누운, 흐트러지게 풀어헤친 자유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때로는 마치 한폭의 정물화처럼 군집으로 다가오던 날의 어느 비 개인 오후의 영국 남부의 들녘.., 양들의 유유한 평화 그 속으로 켄터베리를 안고 빠지는 도버가는 길.

켄터베리에서 도버로 가는 고속도로는 항상 햇빛이 드는 밝은 길이다. 속력을 내고 깊은 숨을 들이키며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어딘지 잠재된 열정이 터져 나오는 해방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자유를 만끽한다. 주위는 한가로이 놀고 있는 양떼와 푸르른 초원의 질주. 어딘가 밀려드는 허전한 여백이 하나둘 푸르른 도버의 초원으로 채워진다. 빛이 들어 눈부신, 그리하여 무장해제된 초병같이 무기력한 채로 그 순수하고 무한한 도버의 푸른 대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도버가는 길은 시골 고속도로이다. 특히 봄날의 맑은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날의 상쾌함과 기대감은 흥분 그 자체이다. 바다를 본다는 것은 항상 우리들에게 자연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 Road to Dover 도버가는 길은 시골 고속도로이다. 특히 봄날의 맑은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날의 상쾌함과 기대감은 흥분 그 자체이다. 바다를 본다는 것은 항상 우리들에게 자연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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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를 진입하는 길가는 유채의 천국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원색의 노오란 유채꽃이 온 들판을 점령하고 이 노란 색깔은 푸르른 하늘색과 함께 이중적 칼라의 협연을 하듯 정겹게 공존하고 있다. 때로는 휘몰아치는 구름이 나름의 추상적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듯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을 만들어 놓는다. 우리들이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순간 그것은 하늘에서 형상화하고 다시 인간의 시야에 하나의 의미를 던지듯 잡힌다. 그리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은 노란 유채길에 길목을 내어주는 가이드를 자청하는 듯하다.

도버를 접어들면 멀리서 도버성이 보인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차지하고 최근에는 2차 대전의 참호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영국의 성들은 독일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어느 산속의 성같이 외롭지 않다. 생활 속의 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저 영국인의 소박한 삶처럼 간결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단조롭다.

도버성의 길목에는 아이비(ivy) 덩굴이 덮쳐 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그리고 맑은 햇살이 오후의 도버 성벽을 밝히고 있다. 청결한 의미지의 어느 낯선 해변의 성곽이 문득 질감어린 오후의 한적함과 더불어 투명하고 화사하게 빛난다. 영국건축의 무미건조한 외곽을 그대로 안고 있는 2층의 관리사무실, 2차선의 좁은 안내도로 그리고 야산에 둘러친 색 바랜 고목들 그리고 엷은 초록의 잔디가 입구를 마주하고 있다.

이곳 도버성에서 내려다보는 항만이 연푸른 색깔의 맑은 청색이다. 분명하게 생각이 잡힐 듯이 그렇게 벤치에 늘어지게 앉아있으면, 시간과 공간과 생각이 일치한다. 우리들은 인간적인 삶 자체에 애정을 갖고 살아가면서 일상의 평범을 찾아나서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곳이 어디이든 우리들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항상 우리의 고향이다.

도버의 성은 거의 천년의 세월을 지내며 그 실용적 가치를 자랑하는 성이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들어선 도버성은 한폭의 풍경화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화병과도 같이 정연하다.
▲ Dover Castle 도버의 성은 거의 천년의 세월을 지내며 그 실용적 가치를 자랑하는 성이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들어선 도버성은 한폭의 풍경화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화병과도 같이 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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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 아스팔트가 2차선의 초췌한 도로는 온갖 잡음을 낼 것도 같지만 조용하고 침묵적이다. 숲 사이로 빛이 산란되어 투영되는 그리하여 늦은 오후 어스름한 석양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숲길을 달린다. 해변으로는 바닷물의 은빛 광채, 현란한 몸부림 같은 어지러움이 솟는다. 마치 숨쉬는 터널 같은 빛이 있고 소리가 있고 작은 움직임이 있다.

마치 어릴 때 본 이태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한적한 영국의 남단이다. 평화와 느림의 미학을 구태여 언급한다면,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도시인의 일상이 바쁘고 긴장된 연속의 시간이라도 이렇게 시골길의 변화와 흐느적거림같이 유유하게 배회하는 시간적 일탈을 한 번쯤 생활 속에서 만끽할 수 있다면 우린 행복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이정표가 겨울햇살 속 역광의 눈부심 같이 오후에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대, 터널, 정원 그리고 식당 등... 성이라 하긴 외견상 단조로운 벽돌집 같은 언덕위의 집, 하지만 영국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도버의 숨결이 배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망루에서 바라보는 시내는 마치 도심 속의 탑과도 같이 전망이 다채롭게 내려다보인다. 이전에는 아마도 작고 소박한 어촌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제법 높은 플랏(Flat)의 일렬횡대가 해변을 감싸고 있다. 멀리는 바다 그리고 그 위로 유럽을 넘나드는 육중한 유람선이 풍만한 항만의 품속에 가지런히 정박해 있다. 

도버는 해변과 함께 등대가 아름답다. 짙은 푸름의 바다와 하이얀 등대의 모습 그리고 상쾌한 주위환경이 잘 어우려져 있다. 하지만 겨울의 등대주변에는 강한 바람이 또한 자주 불기도 한다.
▲ Dover Lighthouse 도버는 해변과 함께 등대가 아름답다. 짙은 푸름의 바다와 하이얀 등대의 모습 그리고 상쾌한 주위환경이 잘 어우려져 있다. 하지만 겨울의 등대주변에는 강한 바람이 또한 자주 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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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국의 항만 도버. 마치 언덕의 하얀 절벽에 기대에 생성된 듯한 소박한 의지로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는 항만에는, 오늘도 유럽을 오가는 유람선과 선박들이 이곳이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해상운송의 한 기지임을 깨닫게 한다. 언덕바지에는 푸르른 잔디와 이름 모를 잡목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지만 영국해협을 안고 들어선 유럽을 향한, 아니 유럽으로부터의 짙은 이국적 그리움이 젖어드는 노스탈지어가 묻어난다.

희뿌연 연기 같은 안개에 아직도 하루의 일상이 접어들지 않고 잔류하는 듯한 미완의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다. 머얼리 보이는 수평선은 어느 곳에서나 지구의 간결한 띠 같이도 어렴풋이 눈가에 잠겨든다. 평화롭다. 영국의 최대선사인 P&O의 선체가 선명하게 그 모습도 완연하다.

텅빈 도시, 공원의 눈부신 잔디, 그리고 수백만 송이같이 만발한 벚꽂나무와 그 아래 파아란 벤치 그리고 공원을 활보하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도버의 바닷가 파도소리 그리고 벤치의 평화와 자유 그리고 약간의 여유... 여긴 영국의 땅 도버이다.

덧붙이는 글 |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이다.



태그:#D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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