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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자발적으로 혼자 약 1주일 동안 집에 머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저런 불가피한 사정으로 혼자 지내는 일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아내가 딸과의 해외여행 코스를 동유럽 쪽으로 잡았단다. 내가 얼른 감을 잡고 딸에게 진즉에 못을 박았다. 이번에는 모처럼 네 어머니랑 여행하면서 모녀간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라. 나는 다른 일도 있고 해서 이번 여행에는 빠질 테니 어머니께 네가 잘 말해라.

딸이 얼른 감을 잡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서운해 할 텐데'라면서 말꼬리를 내린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더러 하긴 하지만, 집사람은 그래도 여행만큼은 당연히 나랑 같이 가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나이에 그만 해도 다행이다.

예정대로 여행 출발하는 날 이른 아침에 아내와 딸, 손녀 이렇게 세 사람을 태워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전송해주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아직 새벽 기운이 싸늘한 터에 혼자 떨어져 남은 게 실감났다.

공항에서 비행기 출발 전에 집사람이 전화를 해서, 조심해 잘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손녀 지현이가 느닷없이 "할아버지 발이 아파요, 할머니가 신으라는 운동화 땜에 그렇다"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러냐면서 조금만 참으면 운동화가 발에 편안하게 잘 맞을 거라고 둘러댔다. 딸은 뭐가 그리 바쁜지 건성으로 전화를 받고는 곧장 다시 내게 전화를 했는가본데 받지를 못했다. 이제부터는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통화할 일도 없고 온전히 혼자가 된 게다.

혼자 있으려면 홀로 즐기는 양식이 풍족해야 한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몇 권 뽑아왔다. 정년 후부터 새로 책을 사 놓으면 쌀독에 쌀이 가득 찬 것처럼 여유롭고 기분이 좋다. 집사람이 반찬과 간식까지 체계적으로 챙겨놓고 갔으니, 그냥 내키는 대로 꺼내 먹으면 된다.

근데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갑자기 텔레비전이 꺼지더니만 감감 무소식이다. 평소 내가 보고 싶은 뉴스만 잠시 보고 다른 세부적 작동에 관심이 없던 터라, 뭘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참에 TV도 없이 철저히 혼자가 되는 호기(好機)로 삼자 싶었다. <도마복음>에 나오는 "나그네가 되라"(Be a Passer!)는 짧은 구절이 떠오른다. 어차피 혼자 가는 인생이 아닌가. 도올 김용옥은 이 구절을 "방랑자가 되라!"고 옮겼다. 구도의 방랑자가 되라는 것일 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떠난 부산 나들이

혼자 집에서 3일을 보내던 날, 서둘러 경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나들이를 갔다. 부산은 내가 고등학교 3년(1961~1964)을 다니면서 가난한 시절에 청운의 꿈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부산역에서 관광 안내를 받아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에서 내려 용두산공원으로 갔다.

옛날 같으면 40계단을 밟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으나, 지금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옛날 그대로 부산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대학 3학년 때(1967년 늦봄)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 길에 이 동상 앞에서 학우들과 함께 사진 찍은 추억이 아련하다.

공원에 새로 건립한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 흉상 옆 비문에 "집안일이든 나라일이든 오직 자력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구절이 지금도 우리를 향한 경구로 엄중하게 와 닿는다. 입장료를 내고 부산타워를 올라가니 사방으로 부산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구덕운동장 쪽을 보니, 옛날에 "동고, 동고야!"하고 축구 응원하던 때가 벌써 반세기나 훌쩍 지났다.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쉼이 없다. 일전에 동래고 40회 졸업 50주년·고희기념 문집으로 <칠순 넘어도 철 덜든 남자들 이야기>라는 책을 받아 보고, 옛날을 회상하면서 이런저런 추억을 모처럼 떠올리기도 했다.

부산역에서 만난 신영복 교수

서울대 관악초청강연 책 표지 사진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98) 책 표지
▲ 최근에 고인이 된 신영복 교수와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새'(1998) 서울대 관악초청강연 책 표지 사진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98) 책 표지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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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쪽을 보니 70년대 중반 쯤 부산맹아학교 기숙사에서 밤을 세워가며 최병문, 임호익, 김영순, 이규식 선생과 함께 농교육 문제를 토론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벌써 두 분은 고인이 됐다. 눈앞에 국제시장이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 방향을 트니 영도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외로이 떠 있는 초생 달은 보이지 않고,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동북쪽에는 제1부두와 연안여객터미널이 보인다. 1967년 겨울방학 때 제1부두에서 해군 군함을 타고 월남파병장병위문단으로 남지나해를 오가면서 약 2주간 넘도록 배를 진절머리 나게 탄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공원을 내려오면서 '부산근대역사관'을 들려, 일본이 부산을 거점으로 1876년 통상조약 이후 경제적 수탈을 얼마나 악랄하게 해왔던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모처럼 시원한 생복엇국으로 점심을 챙겼다.

비를 맞으며 보수동책방골목을 찾아갔다. 원래 보수동 헌책방이 유명한 곳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 어느 한 책방은 1, 2층에 책이 가득했고 밑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커피를 한 잔 시켜 마시면서 여유 있게 책을 살펴보았으나, 꼭 사고 싶은 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부산헌책방에 들린 기념으로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가을(葉)>시집을 하나 골라 나왔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시간이 좀 남아 역 서점에서 불과 10여 일 전에 세상을 떠난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뽑았다. 1998년에 책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71쇄를 발행했으니 인문학 책으로는 아주 드물게 꾸준히 읽혀지는 책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책을 손에 쥐었다.

저자는 죽어도 책은 살아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복을 누리는 책이다. 구포쯤에서 삼랑진까지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경부선 경관은 언제 봐도 빼어난 풍경이다. 경산역에 내리니 벌써 어둠이 깔리고 눈이 제법 내려 길이 미끄럽다. 부산서 비 맞은 모자와 옷 위에 이번에는 눈이 덮인다. 오늘은 별난 겨울날이다.

새삼 가족이 그리워지는 오늘

일전에 경기교육청에 제출할 정책보고서는 내부적으로 가다듬어 일단 담당 장학사에게 원고를 보내 놓은 상태다. 다음 달에 포럼을 거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터인데, 끝날 때까지는 책임연구자로서 맘이 놓이질 않는다. 나이 들어 책임지는 일을 맡으니 현직에 있을 때보다는 신경이 더 쓰인다.

이 일로 나잇값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나름 보고서를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아직 찜한 구석이 있다. 보고서에 담아 반영하는 것과 관계없이 '재음미'라는 별도 제목으로 내 나름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놓았다. 포럼 과정에 혹은 그 후에 이 '재음미'가 얼마나 유효하게 작용할지는 두고 봐야겠다.

어제(1월 31일)는 산책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경산시장에 들러 팥죽을 사왔다. 나도 팥죽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손녀는 나보다 더 좋아한다. 이제 내일이면 집사람과 손녀가 집으로 돌아온다. 딸은 공항에서 광주 집으로 바로 갔다가 학교 일보고 구정 때 올 예정이란다.

그러고 보니 구정이 꼭 1주일 정도 남았다. 옛날에 시골서 자랄 적에는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 치레로 새 옷도 입고 떡국이랑 강정이랑 맛 나는 음식을 푸짐히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자라서 총각 때는 마을 처녀들과 어울려 정월 대보름 때까지 윷놀이하면서 밤낮을 그러고 놀았으니 참 태평한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여유와 낭만이 없어졌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당시에 경제적으로는 별로 여유가 없었지만, 그 때 젊은이는 그래도 놀고 싶을 때 만사 제처 놓고 놀 줄을 알았다. 그래서 '낭만에 대하여' 말 할 수 있는 이야기 꺼리가 누구나 한두 가지씩 있다.

정년하고도 설을 앞두고 후배 교수가 맛 나는 사과선물을 보내 왔다. 경남에 있는 옛 제자는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명절 선물을 챙겨 보내주니 나는 행복하다. 이즈음 내게 오는 명절 선물은 무슨 조건이 은근히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조건 없는 '순정(純情)품'이다. 그래서 고맙고 흐뭇한 게다.

TV가 며칠간이나 먹통이 된 걸 그냥 두고 있으니, 나야 별로 불편한 게 없지만 집사람이 돌아오면 틀림없이 어찌 그리 무심하냐면서 핀잔을 줄 게 뻔하다. 우선 관리사무소에 물어 볼 참으로 전화번호를 찾아 수화기를 드니 전화도 먹통이다. 이게 텔레비전 탓이 아니라 집에 전기나 통신선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 현관 쪽에 전기배선 박스를 열어보고 거실에 스위치도 점검해고 혼자 수선을 떨고 있는 차에 TV 화면이 뜨고 소리가 들린다. 이것저것 만지다보니 어떻게 먹통이 해제됐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가 해결된 게다. 어쨌거나 핀잔을 면하게 되어 다행이다.

내일 집사람과 손녀가 오면 여행 중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게다. 나도 그동안 혼자 있으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얘기꺼리가 없는 게 아니다. 서로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니, 손녀랑 집사람이 보고 싶어진다. 내일은 내가 미리 역에 나가서 기다렸다가 두 사람을 맞이할 작정이다. 이런 게 가족에 대한 예의랄까 일상적 정서다. 혼자서 일주일 가량 잘 보냈다. 근데 혼자 있는 게 굳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자유로운 건 사실이다.


태그:#혼자 있는 즐거움, #자기존재 이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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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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