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브엔슬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 후 썼다는 '말하라'의 한 구절을 이순덕 할머니와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98세의 이순덕 할머니는 현재 현존하는 최고령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입니다.
 이브엔슬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 후 썼다는 '말하라'의 한 구절을 이순덕 할머니와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98세의 이순덕 할머니는 현재 현존하는 최고령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입니다.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서 있는 곳이 다르면 의미도 달라진다

요즘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로 한일 양국이 떠들썩합니다. 발등이 깨질 듯한 추위에서도 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은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나섰고, 일본은 소녀상을 이전하지 않으면 10억 엔을 내지 않을 거라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조형물 하나 이전하는 문제를 두고 두 나라가 이렇게 갈등을 벌인 사건이 세계 역사에 있었을까요?

길을 가다 흔히 만나는 조형물들을 우리는 공공예술이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기념비는 공공예술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평화의 소녀상의 경우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공공의 역사인식과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니 구분을 하자면 '공공공간의 미술품'이자 '기념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녀상을 그냥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 되는가?'라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공공예술작품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념비는 독일어로 'Denkmal'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Denk'는 동사의 의미로 '생각하다', '뜻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Mal'은 명사적으로는 '점' 또는 '표지'라는 뜻과 함께 부사적으로는 권유, 요구의 의미로 '한번 해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생각해봐!' 또는 '생각-표지'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공공예술로서의 기념비라 함은 조형미를 갖추어야함은 물론 역사에 대한 '정보전달'이 중요합니다. 기념비는 곧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역사를 생각해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중요한 공공예술입니다.

더불어 기념비가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나타내는 '장소성'은 상당히 중요한 조건입니다. 기념비의 위치는 곧 기념비의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컨텍스트(맥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듯, 기념비가 서 있는 곳이 다르면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랜 시간 동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를 1000회 동안 했던 것을 기념하여 세운 평화의 소녀상이 할머니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싸웠던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망각의 도시, 서울

 서울과 베를린의 중심부 반경 600m이내의 근현대 역사의 아픔을 다룬 기념비의 위치를 비교한 그림
 서울과 베를린의 중심부 반경 600m이내의 근현대 역사의 아픔을 다룬 기념비의 위치를 비교한 그림
ⓒ 구글맵

관련사진보기


안타깝게도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주변에서 근현대의 역사성을 담은 기념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흔히들 광화문 하면 떠오르는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은 조선시대의 위인을 다룬 조형물이지 근현대사의 아픔을 기리고 있는 조형물이 아니기에 평화의 소녀상은 광화문 일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근현대사를 다루는 기념비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각종 정부청사가 모여 있는 베를린의 심장부이자 관광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거 토어 주변을 보면 반경 600m내에 위치한 근현대사 관련 기념비가 무려 7개, 600m 밖에는 더 많은 역사적 기념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기념비의 대부분은 전범국가로서의 반성과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처참한 600만 대학살 피해현황을 기록하고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미국대사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며 큰 예산 규모는 물론, 축구장 3배 크기의 웅장한 스케일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공간은 24시간 공간을 순찰하는 요원들이 배치되어 훼손을 철저히 예방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풍경 뒤편에 미국 대사관이 보인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풍경 뒤편에 미국 대사관이 보인다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또한 브란덴부르거 토어와 독일국회의사당 사이에는 나치즘에 의해 죽음을 당한 유럽인들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위치해 있으며, 독일 국회의사당 왼편에는 나치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국회의원들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렇듯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공공미술작품들은 베를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대표 관광 코스가 될 만큼 베를린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한 나치즘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공공미술작품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한 나치즘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공공미술작품
ⓒ 권은비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독일과 한국의 역사적 기념비를 비교해봤을 때, 주목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베를린 시내의 1, 2차 세계대전 희생자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몇 백 개의 기념비 중 여성 성노예를 주제로 한 기념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서울 시내의 경우 근현대사의 아픔을 조명하는 기념비가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시내 한복판 길 위에 평화의 소녀상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베를린의 대부분의 기념비들은 국가 정부기관 관련 단체 및 문화부가 건립을 주도하였지만 서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의 경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은 아직까지 국가 역사의 아픔과 반성을 도시에 기록하여 후대에게 물려주어야할 책임을 정부가 아닌 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나긴 싸움을 상징화한 소녀상은 단순히 한국만의 민족적 아픔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쟁으로 희생당하거나 성적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는 매우 중요한 여성운동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은 사죄?

얼마 전 소녀상 철거에 대한 일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들의 64%가 소녀상 철거 이후 10억 엔을 내야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흔히들 일본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를 촉구할 때 비교하는 것이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에 방문했을 때 바르샤바의 전쟁희생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사건입니다.

1970년 빌리브란트 수상이 폴란드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을 본 독일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당시 독일국민들은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만큼은 설문조사 응답자 48%가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것은 지나친 행보였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브란트의 사죄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독일정부의 사죄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빌리 브란트의 사죄 이후 40년이 지난 2010년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안 불프와 사민당(빌리 브란트 소속 정당) 대표 시그마 가브리엘은 다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사죄와 화해를 위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2010년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안 불프와 사민당 대표 시그마 가브리엘. 폴란드 바르샤마에는 빌리브란트의 사죄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고 빌리브란트의 이름 딴 공원이 생겼다.
 2010년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안 불프와 사민당 대표 시그마 가브리엘. 폴란드 바르샤마에는 빌리브란트의 사죄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고 빌리브란트의 이름 딴 공원이 생겼다.
ⓒ Hamburger abendblatt

관련사진보기


대개의 강대국들은 수도의 중심부에 민족적으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위인이나 장식적으로 멋진 공공예술작품을 세워놓지만, 베를린에는 도시의 중심, 국가기관 가장 가까운 곳에 전범국가로서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공예술작품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누구나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그 아픔을 기록하고, 잊지 않는 것임을 독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역시 '평화의 소녀상'뿐만 아니라 근현대 역사 속에서 과오와 그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후대에게 물려줄 차례가 아닐까요?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