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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넛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퐁니퐁넛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 나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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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가에서 아동에 대한 범죄는 성인대상 범죄에 견주어 높은 형량을 부과함으로써 엄중히 다스리고 있다. 아동은 성인에 비해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통념이며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떠한 명분의 전쟁이라도 적군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도덕적 질타의 대상이 된다.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 만약 고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처벌의 강도는 더해질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고의적 살상의 대상이 아동이라면 그것은 반인륜적 행위로 인식되어야 하고 사법적 체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한다.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막고자 1949년에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조인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8월 16일에 발효된다. 위 협약에서는 전시에서 무기를 버린 전투원, 전투 능력을 상실한 자, 그리고 적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민간인 특히나 병자, 노약자, 임산부, 아동은 특별히 보호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비이성적 행위 앞에선 국제적 협약은 종이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1968년 베트남 중부

1968년 2월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 중이었던 한국군중 상당수는 베트남 중남부지방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그 한국군들은 북베트남의 베트남 인민군, 남베트남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등과 격전을 벌여야 했다. 구정공세(舊正攻勢, 베트남어: Sự kiện Tết Mậu Thân, 영어: Tet Offensive)로 바짝 긴장을 해야 했던 한국군은 반격을 위해 더욱 살벌하게 전투에 임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있어서는 안 될 반인륜적 학살이 발생한다.

특히나 우리가 결코 지나쳐서 안 될 것은 그 민간인 중 상당수가 노인, 여성, 어린이라는 것이다.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수 십여건의 민간인 학살 중 퐁니·퐁넛 마을의 학살사건은   2000년 6월1일,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30년 만에 비밀해제된 문서에 의해 공식 확인된다.

학살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특정 목표지점에 대한 폭격이 아닌 민간인을 대면한 상태에서 총기와 칼로 의도적 살해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믿고 싶지 않은 것은 시체들의 상태로 추정되는 학살의 잔인성과 살해된 민간인의 상당수가 노인과 여성, 아동 등 약자라는 것이다.

디엔반현 퐁니·퐁넛마을의 위령비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명단을 보면 출생연도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문화역사유적으로 지정된 이 위령비에는 총 74명 희생자의 이름과, 출생연도, 거주지가 표시되어 있다. 이름상으로 구분되는 성별(실제와 다를 수 있음)과 연령대로 희생자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퐁니퐁넛 마을 희생자 위령비. 희생자의 출생연도를 통해 연령을 확인할 수 있다. 1968년에 발생한 이 학살에 68년생인 아이부터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희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퐁니퐁넛 마을 희생자 위령비. 희생자의 출생연도를 통해 연령을 확인할 수 있다. 1968년에 발생한 이 학살에 68년생인 아이부터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희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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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넛마을 희생자 구분
 퐁니퐁넛마을 희생자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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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전투력이 있다고 보이는 남성은 40대 남성2명, 50대 남성 2명 총 4명뿐이다. 10대 남성들 역시 14세 이하의 아이들일 뿐이다. 전투력을 가진 20~30대 남성이 전혀 없는 마을에서 왜 이런 학살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절반가량이 14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이름도 없는 1살짜리 아이가 1명, 2살이 3명, 3살이 3명, 4살이 1명, 5살이 2명, 6살이 4명, 7살이 1명, 8살이 3명, 9살이 5명, 10살이 2명, 11살이 1명, 12살이 3명, 13살이 5명, 14살이 1명. 이것을 학살이 아니고서야 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투라 한다면 그 꼬맹이들이 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말 못하는 갓난아기들부터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이들, 동네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였던 것인가.

1968년 2월 22일에 퐁니·퐁넛 마을과 멀지 않은 곳인 하미마을에서도 반인륜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2000년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에서 기금을 보조하여 세워진 위령비에는 135명 희생자의 이름과 출생연도가 적혀있다. 이 위령비 역시 중요문화역사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성별(실제와 다를 수 있음)과 연령대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하미마을 위령비. 희생자의 출생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1968년에 발생한 이 학살에는 68년생인 아기부터 20세까지의 희생자가 전체 희생자의 53% 해당된다. 10세이하 어린이가 무려 57명이다
 하미마을 위령비. 희생자의 출생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1968년에 발생한 이 학살에는 68년생인 아기부터 20세까지의 희생자가 전체 희생자의 53% 해당된다. 10세이하 어린이가 무려 5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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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마을 희생자 구분
 하미마을 희생자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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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능력이 있다고 예상되는 20대에서 60세까지의 남성은 6명뿐이다. 135명 희생자 중 여성이 71%, 20세 이하 연령이 희생자의 절반을 넘는 53%이다. 돌도 지나지 않은 이름없는 아이가 3명, 2살짜리 아이들이 3명, 3세가 2명, 4세가 8명, 5세가 5명, 6세가 7명, 7세가 7명, 8세가 8명, 9세가 10명, 10세가 4명...

사건현장과 시신들로 보아 폭격이라 할 수가 없다. 근거리 전투 과정 중 의도치 않게 희생된 거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근거리 전투였으면 총격 소리에 민간인들 대부분이 피신처로 피했을 것이다. 대면상태에서의 살해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희생자의 숫자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집단으로 살해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힘없는 노인과 여성 그리고 특히나 상당수의 어린이들과 아기들마저 학살한 이러한 반인륜적인 범죄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국방부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에 학살의 이유와 과정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료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전쟁시 반인륜적 범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전장에서 군인들이 받았을 심리적 스트레스는 일반사람들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위중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전쟁 후 사회에 복귀해서도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쟁상황에서의 특수한 환경과 조건이 인간생명에 대한 기본 존중과 도덕성을 굴복시키고 끝내는 어린아이까지 죽여버리게 만들 정도로 절대적이고 위력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경우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 상황을 거부하고 저항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살에 가담한 전투원 역시 당시 정권과 사회적 환경의 피해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들, 특히나 노인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을 죽인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살 이후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겪어왔던 고통은 죽을 때까지 존재하는 실체이며 그 어떠한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그러한 학살을 명령한 사람들, 직접 가담한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방조한 더 높으신 분들의 용기있고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더 단단해질 뿐더러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저질러진 범죄는 비록 반인륜적이었을지라도 반성과 사죄만큼은 인륜에 적합하게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1월 13일부터 21일까지 7박 9일간의 '의정부 청소년 베트남 평화기행'에 인솔자로 참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태그:#베트남, #민간인, #학살, #전쟁,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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