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는 희망을 노래하는 곳이다.
 학교는 희망을 노래하는 곳이다.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1월 중순의 대형마트는 한산했다. 단 한 곳만 빼고. 아내와 방문한 식품코너는 짬뽕 라면들이 세일 전단지와 시식을 무기로 전쟁 중이었다. 홍보 나온 아주머니의 뜨거운 목소리를 들으며 얼큰한 국물의 인기를 실감했다. 작년에는 꿀과 소금을 적절하게 버무린 버터 맛 과자가 화제였다. 짜장라면에 이어 짬뽕 라면까지... 저렴하고 대중적인 음식들이 주목받는 모습을 보니 경제가 어렵긴 하나 보다. 장바구니 풍경을 보면 시민들 생활이 드러난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3월에 우리 반에 배정받은 학생들과 처음 마주하여 서로를 잘 모를 즈음에 음식 이야기를 꺼낸다. "지난 주말에 뭐 먹었니?", "간식 뭐 샀어?" 먹거리 질문은 부담 없고 즐거운 대화거리다. 대답도 가지가지이다. 파x 바게트 치즈 케이크, 맛나 분식 피카츄 돈가스, 홈x러스 PB 새우 과자... 그렇게 한 달 정도 먹는 대화를 하고 나면 입맛과 성격, 그리고 집안 형편을 대충 파악하게 된다.  20명 남짓 모여있는 작은 교실에서도 사는 모습 차이가 많이 난다. 수업 시간에 상품을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려 해도 조심스러워진다. 가난 때문에 움츠러들고 상처받을까 봐 단어 선정에 신경 쓴다.

 
 
손끝으로 몽당연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아껴 쓰는 아이도 있다.
 손끝으로 몽당연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아껴 쓰는 아이도 있다.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어린이들도 돈이 '세속 세계의 신'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꽤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카피 두 개를 소개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ㅇ저(자동차 이름)로 대답했습니다.'


상업적이고 폭력적이다. 경제력으로 인격과 삶의 수준을 단정 짓다니! 당시 광고를 보고 분개한 시청자들이 회사에 항의도 하고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블로그에 포스팅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제작자나 광고주는 이러한 광고가 비판받을 거라고 예상 못 했을까? 했다고 본다. 억 단위가 투입되는 일인데 댓글 내용 고민하듯이 카피를 짰을 리 없다. 먹히니까 한 거다. 대중들이 마음 조금 불편해도 결국 고개 끄덕거릴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광고가 나오는 일상을 초등학생들이 산다.

 

내가 '착한 척' 소비를 권장하는 이유

 

"너희들 모두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터에 나가게 될 거야. 4대 보험도 받고, 퇴직금도 있고, 직장에서 나오더라도 할 수 있는 다른 자리가 널려 있을 거야."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하는 거야. 어른들은 돈 차곡차곡 모아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몇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도 가."


30년 전만 해도 평범하게 여겨지던 이러한 생각들이 현재는 개인적 소망이 되었다. 소득 격차의 심화와 불평등은 전 세계적 현상이며 앞으로도 비슷하리라 예상한다. 담임 말이라면 사자가 풀을 뜯어 먹었다고 해도 믿는 귀여운 꼬맹이들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교사 혼자만의 가치관과 상황판단일뿐더러 분수의 덧셈과 뺄셈이 어려운 꼬마들에게 감도 잡히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니 어두운 미래니 하는 말은 정말 관심 밖일 것이다.

 

 

대신 나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착한 척 소비를 권장한다. 착한 척 소비는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 가게의 제품을 구입하는 삶의 방식이다. 파견이나 계약직 대신 정규직을 고용하는 회사,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와 판매자 간 골고루 이익을 나눠 갖는 단체, 지역 주민센터에서 봉사하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슈퍼마켓 등이 구매처에 포함된다.

 

이 방법을 쓰면 직접 기부나 봉사를 하지 않고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장기적으로는  다음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더 안정적으로 고용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행위도 된다. 그런데 선행을 티 내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착한 척 소비는 보통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혹시 아는가? 아이들이 저곳에 취직할지"

 
 
밴드는 서로 뭉치는 것. 서로 돕는 소비를 하자.
 밴드는 서로 뭉치는 것. 서로 돕는 소비를 하자.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학급운영비를 학기 말이 될 때까지 깜빡하고 쓰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학급회의 시간에 안건으로 올렸다. 회의 결과 예쁜 액세서리 구입 의견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패션에 관심이 지대하던 여학생 무리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탓이었다. 신난 4학년 패션스타들은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보세 소품집이 있다면서 주말에 만날 계획까지 잡고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투표까지 해서 결정되었으니 무를 수도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굿네이버스라는 단체에서 고무 재질로 된 팔찌를 팔고 있었는데 판매 수익금으로 제3세계 아동들의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여기 연예인이 차고 있는 흰색 팔찌 괜찮지 않아? 이거 사면 못 사는 나라의 너희 또래들에게 밥을 지원해준대. 교장샘한테는 너희가 착해서 기부했다고 말씀드릴게."


교장 선생님까지 언급한 그럴싸한 제안에 학급 구성원들은 쉽게 동의했다. 선생님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결국 팔찌도 얻고, 주변의 칭찬까지 받았으니 손해 보는 조건은 아니었던 셈이다. 세상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느낌은 착한 척 소비의 큰 동기로 작용한다.


이제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대형마트의 짬뽕 라면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다섯 개나 되는 브랜드를 잠깐 비교하던 우리 부부는 고민하지 않고 오x기에서 나온 짬뽕 라면을 집어 들었다. 이유는 마트 시식 직원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회사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제자들 중 한 명이라도 이 사업체에 취직하게 될지.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근무한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태그:#착한소비, #상생, #윤리경영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