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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도준(가명)씨는 대학 예비 새내기다. 도준씨는 2016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숭실대에 합격했지만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 곧 선배들에게서 황당한 소식을 듣게 됐다. 학교가 '학과 구조조정'을 계획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면접 때 학과생활 포부를 밝힌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 도준씨는 학교가 실망스럽다.

지난 2015년 12월 23일 숭실대 기획조정실은 설명회를 열었다. 숭실대 측은 이 자리에서 "(학과 구조조정은 정부가 추진 중인) 프라임 사업에 지원해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며, 사업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대학 평가 지표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하여 진행해야 하는 계획"이라 밝혔다.

도대체 대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뚝 선 숭실대 건물.
 우뚝 선 숭실대 건물.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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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사업'은 정부가 지난 2015년 12월 29일 계획을 발표한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의 약칭이다. 올해 대학 19곳 정도가 선정돼 50억~300억 원씩 총 2000여억 원이 지원되며, 사업 기간이 3년이어서 최종 예산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14~2024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을 근거 삼아, 프라임 사업을 통해 대학이 '산업수요 중심'으로 전공별 정원, 교육과정 등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기업의 생산성이 늘면, '경제성장→일자리 창출→취업자 증가'로 이어져 '학생 중심' 교육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향후 10년 간 노동시장에서 인문사회·교육·경영경제 관련 전공자는 초과공급, 공학 관련 전공자는 초과수요로 예측한다(미스매치론). 지난 8일에 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사로 전했듯 전문가들은 이를 비판한다. 시장은 급변해 변수가 많고, 장기 예측을 대학에 끼워 맞추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다(관련 기사 : 교육부의 '대학 산업화', 교육도 산업 수요에 맞춘다?).

숭실대 학생대표자들과 교수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산업 수요가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기초 학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기획조정실에 전달했으나, 기획조정실 측은 명확한 답변을 주는 데는 주저했다. 왜일까.

'구조조정 없으면 국가장학금도 없다' 대학들이 '쩔쩔'매는 이유

정부는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시해 1주기(2014~'16), 2주기('17~'19), 3주기('20~'22) 마다 아래 자료처럼 등급을 매긴다. 다만 대학에 정원 감축·퇴출을 '직접'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현재 없다.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아래 '대학구조개혁법')은 이 막강한 권한을 쥐여주려는 것이며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대학구조개혁은 학령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국회는 대학구조개혁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서 사실상 '정부 법안'으로 봐도 무방하다(2015.12.22. 국무회의). 이 법안은 1월 임시국회로 넘어왔고, 야당은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따른 등급과 제한 사항을 피라미드 형식으로 정리한 그림. 마치 학점을 매기듯, 등급이 나뉜 것이 눈길을 끈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따른 등급과 제한 사항을 피라미드 형식으로 정리한 그림. 마치 학점을 매기듯, 등급이 나뉜 것이 눈길을 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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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정책들이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정원 감축의 '방향'이다. 저출산 때문에 정원 감축을 해야한다면, 즉 파이를 줄인다면 '어느 전공의 파이를 줄여야 하는가'의 문제다. 전공 별로 공평하게 부담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만, '대학의 질 재고'라는 외피 너머의 알맹이는 프라임 사업처럼 '산업수요 중심'을 지향한다.

1주기 때 '졸업생 취업률'이 평가지표에 반영됐고, 2015년 일선 대학들은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들을 경쟁적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대학가가 전국적으로 술렁이며 파동이 일어났던 이유이다. 숭실대 기획조정실은 학교가 1주기에 A등급을 받아 직격탄을 피했지만, 2~3주기 평가에서 C~D등급을 받지 않을까 염려한다.

B등급을 받아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돼도) 정원 감축을 최대 10%에 맞춰본다는 목표이므로, 차라리 10%의 정원을 선차출해 프라임 사업 참여하는 게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다. 대학들이 조급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C~D등급 대학부터는 정부의 국가장학금(이게 중요하다)·학자금 대출·재정지원사업 등 각종 제한이 가해진다.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되지 않은 지금도 정부는 대학들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쇠사슬'을 지닌 셈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실적을 쌓기 어렵고, 그 결과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숭실대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으며 대학들이 난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생들 반응은 대체로 '싸늘', "반값등록금은 대통령 공약인데"

축구하는 숭실대생들.
 축구하는 숭실대생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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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기획조정실이 당초에 설명회에서 공개한 계획안은, 단과대를 줄이고 학과제에서 학부제로(기존 학과들은, 학부에 '세부 전공'으로 딸린다) 무게중심을 옮기는 방향이었다. 숭실대 홍보실은 "교육부 추진 사업이기 때문에 안 하기도 어렵지만, 기획조정실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며 학내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추합하고 또 검토중이다. 많은 구성원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찾고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숭실대 총학생회장 김진아씨는 "총학생회가 현재 학우들의 의견을 집계 중인데, (학과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반대 의견이 대부분인 건 사실이다. 설명회 당시 학생대표자들과 교수님들께서도 대학의 본질까지 훼손하면서 사업을 강행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전했다. 만약 학교 본부가 학내 여론을 무시한다면 학생사회도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숭실대가 프라임 사업 참여 입장을 유지한다면, 계획안의 세부적인 내용의 변동은 있더라도 큰 틀에서 학부제로의 전환은 불가피할 전망이다(실제로 프라임 사업 기본계획안은 '자유학부제'를 요구한다). 이웃 학교 중앙대는 2010년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 학과를 학부제의 세부전공들로 편입시킨 바 있다. 이 전공들은 2013년에 모두 폐과됐다.

당시 중앙대 본부 측이 내세운 근거 중 하나는 '전공선택률'이었다(학부로 입학하면 2학년 진학 시 세부전공을 선택한다). 숭실대도 이 방향으로 가게 될지, '캠퍼스 옵저버'가 꾸준히 지켜볼 예정이다. 직접 숭실대 학생들 우려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숭실대 표석.
 숭실대 표석.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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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공학 전공자를 요구하고, 프라임 사업도 거기에 맞추는 취지란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시장의 요구를 대학이 수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죠. 기존의 인문대학과 자연대학을 하나의 단과대로 묶어놓고, 관련 학과들을 각각 학부제에 편입시킨 계획안을 보고 답답했어요. 기초학문이라는 점 말고는 연계성도 세심한 고려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금융학부를 IT학부와 엮은 '금융IT학부'가 등장하고, IT 성격이 강한 글로벌미디어학부를 예술 관련 전공들을 '문화기술융합대학'이라며 같은 단과대에 넣지를 않나. 정말 이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초과학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정책을 보면 오직 공학계열 전공자만 늘리고 있습니다.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책 없이 공학 전공자만 늘린다고 취업 문제가 해결되진 않죠. 누군가는 적성에 맞지 않게 진학하게 되고, 또 이 집단 내에서도 서열과 일자리의 질이 갈리게 되니까요.

또한 대학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져야 한다고 봐요. 정부에서 국가장학금을 '수혜'(benefit)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자기들 입맛에 따라 줄까 말까 하잖아요. 국가장학금 도입한 게 대통령이 '반값등록금'하겠다고 도입한 거 아녜요?(관련 기사 : 반값등록금 정책, 정작 수혜자는 '셋 중 한 명'이라고?)" ­- 철학과 2학년 진호성씨

"(정부의 프라임 사업이) 저는 교육권 침해라고 봐요. 방학 중에 급하게 추진하는 것만 봐도, 소통과 거리가 멀어서 위화감을 느껴요. 그리고 이 사업이 '융복합'을 요구하잖아요? 그런데 애초에 사업 전제가 산업적 관점으로 재단하기 때문에, 각 학문 나름의 본질과 그것을 사랑해서 입학한 사람들의 입장은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 재학생 현수씨(가명)

- 정부는 '탄압'으로 비치는 건 원치 않는 듯합니다. 축소·폐지되는 학과에 사업비 10%를 써주고 인문학 진흥 정책을 명시하라는 등 가이드라인을 줬습니다. 이런 방향이 '질적 역량 강화'라는 말로 등장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수씨 : "구조조정을 기본 전제로 깔아두고 돈을 주는 게 공부하려고 온 사람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요?"

- 정부가 '창조경제', '문화콘텐츠산업'을 강조하긴 하는데요?
현수씨 : "시야를 넓혀야죠. 가령 예술은 꾸준히 사회 저항적이지만, 정부와 기업은 다양한 수요가 늘어날 수 없는 관점을 유지하잖아요? 인디밴드 수요가 늘었다지만 '정형화된 인디'의 모습만 계속 공급하고 소비시키듯이요. 통기타치고, 목소리 예쁘고, 가사는 일상적이고. 자본이 문화마저 삼키는 괴물이 되어가는 현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본 논리에 따라 제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 뿐입니다."


태그:#대학 산업화, #PRIME, #대학 구조조정, #숭실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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