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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은 강원도 평강에서 시작하여 철원, 포천, 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흘러간다.
▲ 한탄강 정경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에서 시작하여 철원, 포천, 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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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세운 철원군도로원표 마냥 철원 초입에 금강산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한 돌비석이 우뚝 서 있다.
▲ 철원군 도로원표(道路元標) 돌비석 일제강점기 때 세운 철원군도로원표 마냥 철원 초입에 금강산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한 돌비석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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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76km'

철원에 들어서자 돌비석이 우뚝하다. 금강산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놀랍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 갈 때 들렀고 생전 6번 금강산을 다녀와 '금강산 광'이라 소문난 겸재의 스승 김창흡은 아예 눌러 산 적도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 후삼국시대, 대평원, 철원평야에 궁예가 도성을 쌓고 궁을 지어 태봉을 세웠던 곳이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운행돼 관광객과 물자가 모이는 대읍부향(大邑富鄕)의 고을이었다.

태봉국, 대읍부향의 고을, 철원이 어쩌다 한탄강(漢灘江)대신 한탄강(恨歎江)이 흐르게 되었는가? 경원선 마지막 역이 신탄리에서 백마고지역으로 역 하나 늘어난 것 외에는 10년 전보다 나아진 것 하나 없고 노동당사, 백마고지, 철의 삼각지, 제2땅굴, 비운, 한탄 같은 말들이 왜 우리들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지 한탄할 일이다.

노동당사 허물어진 벽으로 보는 철원이 철원의 전부는 아니다.
▲ 노동당사 무너져가는 벽 노동당사 허물어진 벽으로 보는 철원이 철원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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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의 허물어진 벽을 통해서 본 철원이 우리가 보는 철원의 전부가 아니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 벽은 더 무너지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는 이 틈으로만 철원을 보려한다. 가슴 한쪽에 남아 있는 응어리를 풀고 '노동당사에서 과감히 나와' 겸재나 김창흡의 발로 한탄강 강섶을 거닐어 보자. 궁예의 가슴으로 흰 연기 뿜으며 철원평야를 내달리는 원주와 금강산행 통일열차를 상상하며 철원을 더듬어 보자. 그러면 완전히 다른 철원 고을을 만나게 된다.   

철원은 춥다. 1월 연평균기온이 영하 5.5도. 대관령 빼고는 남한에서 제일 추운 고을이다. 2015년 마지막 날에,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추운 고을로 남아있는 철원에 나라도 따뜻한 기운을 보태려 찾아들었다.   

겸재가 사랑한 '삼부연 폭포'와 한탄강의 명작 '고석정'

한탄강은 인공수로처럼 생긴 양안협곡을 따라 흐른다.
▲ 한탄강 정경 한탄강은 인공수로처럼 생긴 양안협곡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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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을 관통하는 한탄강, 이 강에 달려있는 얘깃거리가 수북하다. 한탄강은 본래 한여울, 이를 한자로 바꾸면 대탄(大灘)이고 기록에도 대탄으로 나온다. 모두 큰 여울이라는 뜻이다. 한탄은 크다는 의미의 '한'을 다시 한자를 빌려 한탄(漢灘)이라 한 것이다. 

한탄강에는 한탄할 일도 많다. 궁예는 한탄강가에 나뒹구는 벌레 먹은 거문 돌, 현무암을 보고 자신의 운명 같다며 한탄했고 철원사람들은 한국전쟁 때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가 한탄했으며 북한피난민은 이 강에 가로막혀 한탄했다. 이름이라도 한여울이나 대탄이었다면 이렇게 한탄하지 않았을 걸 이름조차 한탄이라 한탄할 노릇이다. 이래저래 한탄할 일 많은 한탄강은 이런 비운의 역사가 덧씌워져 우리는 한탄강(恨歎江)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협곡을 세차게 흐르는 강물소리가 진혼곡으로 들리고 춤추듯 굽어진 한탄강 협곡이 살풀이춤으로 보인다면 아직 우리에게 한탄강은 한탄강(恨歎江)이다. 한탄강 이곳저곳 기웃대다 강섶에 서서 철원평야의 한숨과 한탄강의 탄식 같은 비운, 한탄을 시린 강물에 토해내고 가야 몸이 개운해지고 한탄강(恨歎江)이 한탄강(漢灘江)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포천 대회산리에 있다. 현무암 주상절리와 협곡, 폭포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낸다. 포천이 자랑하는 숨은 명소.
▲ 비둘기낭폭포 정경 포천 대회산리에 있다. 현무암 주상절리와 협곡, 폭포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낸다. 포천이 자랑하는 숨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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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기웃댄 곳은 비둘기낭폭포. 포천 대회산리에 있다. 대회산마을은 한탄강을 코앞에 두고 불무산으로 코 내민 마을. 불무천협곡이 마을을 휘젓다 한탄강 코앞에 우멍한 비둘기낭폭포를 떨궜다. 비둘기낭폭포는 현무암덩어리, 구멍 숭숭하고 푸석대는 곰보돌이다. 간절함이 하늘을 움직인 걸까, 육기(肉氣)를 탐하던 곰보돌은 밤새 내린 눈으로 곰보구멍을 차지게 메워가고 있었다.

폭포는 높기보다는 깊다. 협곡 때문이다. 협곡은 천길만길이다. 폭포주변 바위절벽에는 4각, 6각 주상절리가 주렁주렁하다. 폭포 뒤에 숨은 동굴은 깊고 깊어 그 속을 알 길 없다. 폭포수는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눈꽃나무'에 걸려있던 눈꽃송이만 폭포수 되어 솔솔 내리고 있었다.  

비둘기낭폭포는 포천의 명물, 삼부연폭포는 철원의 걸물이다. 모두 한탄강이 품안에 둔 자식들이다.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화강암덩어리, 삼부연폭포는 골기(骨氣)가 싱싱하여 그 기운이 하늘에 뻗쳤다.

철원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다. 세 군데 가마솥같이 생긴 곳에 떨어진다 하여 삼부연 폭포라 이름 지었다.
▲ 삼부연(三釜淵) 폭포 정경 철원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다. 세 군데 가마솥같이 생긴 곳에 떨어진다 하여 삼부연 폭포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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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제일의 경승지. 신라 진평왕, 고려 충숙왕이 노닐었고 임꺽정의 은거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고석정 바위 철원 제일의 경승지. 신라 진평왕, 고려 충숙왕이 노닐었고 임꺽정의 은거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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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37세 되던 해(1712년), 겸재는 두 번째 금강산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진경산수, <삼부연도>를 남겼다. 세 번 꺾여 내려오는 폭포수와 두툼한 화강암 덩어리, 바위 위 봉긋한 소나무는 그림 속 그대로다. 음양의 조화인가, 화강암 골기에 놀란 폭포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얼음 안에 묻고 자맥질하며 조용히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한탄강 최고의 명작은 단연 고석정이다. 외로운 바위, 고석(孤石)이 한탄강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다. 무른 용암은 녹아내리고 화강암 덩어리만 남았다. 한탄강은 성질 급한 물이다. 세찬 물살은 찌꺼기, 군더더기, 부스러기, 껍데기는 몽땅 씻어내고 화강암 알맹이만 남겼다.

섶다리는 때가 되면 사라지는 가련한 다리다. 고석정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 운명과 같다. 하기야 인간의 운명도 같은 운명 아닌가? 인정하지 않으려할 뿐...
▲ 한탄강 섶다리 섶다리는 때가 되면 사라지는 가련한 다리다. 고석정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 운명과 같다. 하기야 인간의 운명도 같은 운명 아닌가? 인정하지 않으려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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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정 협곡 벼랑사이를 잇는 섶다리가 아련하다. 때가 되면 물에 쓸려 자연으로 돌아가는 섶다리, 겨우내 물과 땅과 하늘을 잇고 때가 되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다리다. 고석정 상가 곁에 볕살 피해 서 있는 애처로운 눈사람을 닮았다. 웃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고석정에 머물렀다는 전설 같은 임꺽정 이야기를 빌려 '임꺽정', '고석정' 상호를 달아보았지만 몇 안 되는 음식점들은 장사가 신통치 않다.

김일성이 반, 이승만이 반 만든 다리 '승일교'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승일교. 1948년에 북한이 만들기 시작하여 1958년에 남한이 완공한 다리다. 김일성이 반, 이승만이 반을 만들었다고 해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 하고 김일성을 이기자라는 의미로 승일교(勝日橋)라 했다는 말도 전한다. 또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 전사한 박승일(朴昇日)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라 했다고도 한다. 이도저도 싫은 사람이 이름 붙였나보다. '한국의 콰이 강'이라고...

승일교 아래에 내려가 보았다. 한탄강 한가운데 교각이 뿌리박고 교각 좌우로 '무지개날개'를 펼치고 있다. 협곡절벽에는 미처 강으로 떨어지지 않고 얼어버린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120m 아치형 다리. 북쪽에서 반, 남쪽에서 반을 지은 다리여서 다리 건설 기법과 모양이 반반씩 서로 다르다.
▲ 승일교 정경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120m 아치형 다리. 북쪽에서 반, 남쪽에서 반을 지은 다리여서 다리 건설 기법과 모양이 반반씩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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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높이 3~5m, 길이 80m로 높지 않지만 협곡으로 떨어지는 폭포소리는 우렁차다.
▲ 직탕폭포 정경 철원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높이 3~5m, 길이 80m로 높지 않지만 협곡으로 떨어지는 폭포소리는 우렁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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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이라 노래했던 신경림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한해 두해 승일교 바위절벽 고드름 녹아떨어지면 얼어붙은 남북사람들 가슴도 삭겠지.

한탄강 상류에 '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直湯瀑布)가 있다. 개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洑)보다 못하다며 우습게볼지 몰라도 엄연한 자연폭포다. 강 전체가 폭포다. 양안협곡이다보니 한탄강은 천연의 울림통이다. 3~4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는 나이아가라 폭포 못지않다. 누가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이름 지었을까? 분명 이 소리를 듣고 이름 지었을 게야. 

한국의 콰이강 다리, 한국의 나이아가라, 철원사람들이 고의로 붙인 익살스런 이름들이다. 비운의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철원사람들은 천천히 묵묵히 응어리진 가슴을 녹이고 있었다.

한탄강변에서 만난 두 분의 미소

비둘기낭 폭포에서 만난 눈 치우는 할아버지, 얼굴에 주름살만큼 웃음살이 가득하다.
▲ 볼웃음 짓는 할아버지 비둘기낭 폭포에서 만난 눈 치우는 할아버지, 얼굴에 주름살만큼 웃음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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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미소. 철원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 입가에 띤 미소는 철원사람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다. 몇 년 전에 불상 금칠을 벗겨내고 세련되게 다시 칠을 했으나 나는 '철원아저씨' 닮은 예전 불상이 더 좋게 보인다. (2005년에 촬영)
▲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미소 12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미소. 철원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 입가에 띤 미소는 철원사람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다. 몇 년 전에 불상 금칠을 벗겨내고 세련되게 다시 칠을 했으나 나는 '철원아저씨' 닮은 예전 불상이 더 좋게 보인다. (2005년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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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비둘기낭폭포에서 평범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구김살 없이, 주름살 따라 햇살 번지듯 얼굴에 웃음살이 퍼져나갔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며 여린 미소를 짓는 산 너머에서 온 할아버지,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도 그냥 수줍은 볼웃음으로 대신하였다. 

해질녘, 피안에 이르는 절집, 도피안사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완벽한 질서 아래 조화로운 이상세계를 추구한 신라인과는 동떨어진 변방의 미소를 짓고 있다. 비운의 역사를 겪지 않았으면 지었을 법한 철원사람들의 천연의 미소다. 두 분은 담담하게 '비운'을 삭이고 있는 철원사람들을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태그:#한탄강, #철원, #비둘기낭폭포, #삼부연폭포, #직탕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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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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