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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크리스마스날 화재로 타버린 서울 구로구 고척동 유아무개양의 집.
 2013년 크리스마스날 화재로 타버린 서울 구로구 고척동 유아무개양의 집.
ⓒ 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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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날 밤에 일어난 화재, 막막했지만...

지난 2013년 12월 25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한 빌라 지하층에서 불이 났다.  

이 집에 혼자 살던 유아무개(당시 고1, 16세)양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찾아온 언니와 함께 잠깐 외출한 사이에 벌어진 일. 유양이 지하방에서 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나온 게 화근이었다.

불은 가까운 소방서에서 나온 소방관들에 의해 금방 꺼졌지만, 옷 몇 벌을 제외하고 침대, 책상, 컴퓨터, 싱크대, 책가방, 책 등이 완전히 타버렸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 25만 원의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다가 어머니마저 한 달 전 돌아가셔서 혼자가 된 유양은 언니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아 어렵게 살던 형편이어서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갈 곳 없는 유양이 이모집에 잠시 옮겨 살고 있는 동안 이 집에 '산타'가 다녀간 것이다.

한 달 후 돌아간 집에는 도배, 장판이 말끔히 돼있는 것은 물론 침대, 책상, 각종 생활용품들이 새롭게 구비돼 있었다. 게다가 집주인과는 3년 계약까지 맺어 향후 집 걱정까지 덜게 됐다.

지난해 8월 25일 낮 성동구 사근동 주택가에서는 전기방석에 연결된 전기 배선 문제로 화재가 났다.

하지기능 장애인으로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피해자 최아무개(여, 76)씨는 성동복지관에서 1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불이 크지는 않았지만 가재도구를 다 태우고 집 내부가 다 그을려 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등에 '전문봉사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방문해, 장판·도배는 물론 냉장고, 전자레인지까지 들여놔줘 한시름을 놓게 됐다.

집수리봉사단 단원이 불에 타버린 집을 수리하고 있다.
 집수리봉사단 단원이 불에 타버린 집을 수리하고 있다.
ⓒ 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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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집에 찾아온 '산타'는 누구?

"화재현장을 나가보면 언제나 피해자들은 어렵게 사는 분들입니다. 돈이 있으면 보험이라도 들어놨겠지만 그분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이런 분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현장에서 화재 원인의 사후분석을 맡고 있는 김태석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 화재조사관의 말이다.

이같은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방재난본부 직원들이 모은 '119사랑기금' 9800여만 원을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에 기부해 피해자들을 돕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반응이 좋자, 2년 후인 2010년부터는 소방재난본부,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에쓰-오일이 함께 3자협약을 맺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저소득층 화재복구 지원 사업'이다. 소방재난본부는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들을 가려내 추천하고, 사회복지협의회는 산하 '집수리봉사단'을 활용해 집을 고쳐주고, 정유회사인 에쓰-오일은 소요되는 기금을 대는 방식이다.

현장과 가장 가까운 소방본부가 피해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홀몸노인, 장애인세대, 한부모가구 등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선별해 3자로 구성된 심의위에 추천하면 심의위는 1인당 최고 700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을 결정한다.

일단 지원이 결정되면, 소방본부는 의용소방대 등을 동원해 화재 폐기물을 처리한다. 사회복지협의회는 인테리어, 도배, 장판, 전기시설 등 전문사업가들로 구성된 '집수리봉사단'을 가동해 불에 탄 집을 말끔히 수리한다.

2년전 화재사고를 당한 유아무개양이 말끔히 복구된 방에 들어서고 있다.
 2년전 화재사고를 당한 유아무개양이 말끔히 복구된 방에 들어서고 있다.
ⓒ 서울사회복지협의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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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나기 전보다 더 살기 좋게...

사회복지협의회 윤연옥 부장은 "집수리봉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해당 분야에서 20~30년 이상 일한 베테랑들"이라며 "화재가 나기 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라고 말했다.

수리가 완료되면 침대, 책상, 소화기 등 생활집기에서부터 TV, 컴퓨터 등 가전제품, 이불, 쌀 등 생필품까지 피해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혜택을 받은 피해가정은 모두 75세대. 4억 3천여만 원이 소요됐다. 비용은 평소 화재사고 예방에 관심이 많은 에쓰-오일이 7년째 부담해오고 있다. 

김태석 조사관은 "피해자가 고쳐준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집주인과는 3년이상 거주를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며 "예상치 못한 지원에 고마워하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간혹 지원대상이 아닌 분들한테서 '우리 집도 지원받을 수 있냐'는 문의를 받지만, 기본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임을 이해해달라며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불의의 화재를 당했다 도움을 받은 유양은 "당시 눈앞이 캄캄했었지만 여러 분들의 도움 덕에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고마워했다. 유양은 올해 대학에 합격했다.


태그:#화재, #집수리봉사단, #화재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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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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