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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행복하고 놀라운 광경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행복하고 놀라운 광경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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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의 유별난 취미를 아시는가? 음…. 취미라기보다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고향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변태적 취향일 수 있으니 너무 티 내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신성한 배움터에서 뭔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지 걱정되시는가? 결론적으로 절대로 범법행위는 아니며 아이들 신상에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 우려는 잠시 접어두자. 뜸 들이지 말고 얼른 얘기부터 하라고? 좋다. 독특한 취미를 공유하자면 출근길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선생(본인)은  학교 체육관 앞 공터에 주차하고 본관으로 들어간다. 교사용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그는 계단을 오른다. 뚜벅, 뚜벅. 복도를 따라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경쾌하게 걷는 그 남자의 눈빛은 희망차 보인다. 교실 앞문까지 20미터. 같은 층에서 공부하는 다른 반 학생들이 선생에게 인사를 건넨다.



담당 학급의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복도에 자신의 제자들이 없다는 사실에 이선생의 표정은 더 밝아진다. 성큼, 성큼. 드디어 교실 문 앞까지 도착한 그는 천천히 손잡이를 돌린다. 창가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 자연이 선사하는 완벽한 아침의 선물과 함께 아이들이 있다. 조용히 들어오는 선생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책 속에 푹 빠진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이선생은 눈가가 환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렇다. 문제의 취미는 아침에 조용히 교실 문을 열고 독서에 푹 빠진 아이들에게 감동하기이다. 우리 반에는 15명의 학생들이 있다. 1년 중 학생들 전원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날은 손에 꼽는다. 어쩌다 한 번 성공한 날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오히려 독서 분위기를 깨트리는 나의 등장이 미안해진다. 학기 초에 아이들 담임을 맡게 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이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은 언젠가는 너희를 떠나야 하고 때가 되면 죽는다. 그러나 여러분이 멀리하지 않는 한 절대로 제자를 외면하지 않는 위대한 스승이 있으니 그것이 책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교사와의 만남도 제한적이다. 미안하게도 나의 수업 시간만으로는 아이들을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수 없다. 이럴 때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유능하고, 영웅적이며 때로는 위로를 아끼지 않는 멋진 동료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모두 책 속에 산다.  책은 다른 교육기관에 비해서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경험들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식 표현을 빌리자면 수업료도 참 싸다. 그냥 가성비 '끝판왕'이다. 나는 학생들이 최고의 강사들에게서 배우길 바란다.


내 취미가 남들과 공유하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안다. 맞다. 친구 놈 말처럼 직업병적 집착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을 꼭 한번 쯤은 전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책을 읽으면 온 세상이 빛난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린이를 다음 지식 세계로 안내한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린이를 다음 지식 세계로 안내한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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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독서, #책, #어린이, #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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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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