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만 5살 입학연령 부작용 많을 것

지난해 10월 21일 새누리당이 가계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앞당기기 위해 취학연령을 만 5살로 낮추고 학제를 개편하는 방안을 정부에 주문했다. 정부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21일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고,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에 대해 논의한 결과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고 김 의장이 밝혔다.

이는 2009년에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깜짝 발표를 했다가 여론에 밀려 후퇴한 바 있다. 툭툭 던져 보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아님 말고 식의 정책을 내놓는 일은 실로 무책임한 일이 분명하다. 그것도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정책은 더욱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나이를 만 5살로 낮추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여러 해 하고 있는 현직 교사로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도 생일이 늦은 학생은 뒤따라가며 힘들어 하는 게 현실이다. 같은 나이라 해도 몇 개월의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생일이 빠른 학생들이 공부도 잘 따라 오고 기본생활 습관도 우수하며 감정 조절 능력도 탁월하다.

또래에 비해 몇 달 늦은 학생은 마치 동생들 같다.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거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여러 번 반복해야 알거나 적응하기 힘들어해서 자주 울곤 한다. 오히려 생일이 늦은 학생은 한 해 늦춰서 보내면 매우 우수한 학업 성적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년제에 묶여서 그대로 진급하다보니, 그 학생들은 학습부진아의 낙인이 찍힌 채 누적되는 학습량을 견디지 못해서 포기 상태에 이르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생일이 몇 달 늦어도 학습력은 우수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 조절 능력이나 사고력 상상력이나 공감 능력은 생일이 빠른 학생들이 단연 우수한 게 현실이다.

또래보다 생일 많이 늦은 학생, 학습부진 심각해

발달 속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같은 나이라고 함께 입학하지만 1학년 때 벌어진 학력이나 습관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공부를 힘들게 따라가는 학생은 자신감의 결여로 자존감까지 낮아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몇 달 차이로 인해 손가락 발달이 덜 되어 젓가락질을 잘못하는 학생도 있다. 특히 소근육 발달이 덜 되어서 연필을 잡고 글씨 쓰는 것이나 가위질 하는 것과 같은 것에서부터 운동 능력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오히려 유연한 입학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래 친구들보다 몇 달이나 늦어서 학력이나 발달 정도가 더딘 학생은 유급하게 하면 훨씬 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뇌의 발달 정도나 소근육의 발달은 재촉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교육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 아래서도 학년제 묶인 학생들이 해당 학년의 기본 학력을 갖추지 못한 채 무조건 진급하고 있으니 학습부진아를 양산하고 학습무기력증 학생을 양산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복지 차원에서도 부진 학생을 돌보고 그들에게 맞는 정책을 입안하고 배려하는 예산 지원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결과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복지다.

현재 우리 1학년에는 생일이 12월인 두 학생은 생일이 4월 이거나 6월생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처져서 힘들어 한다. 글씨는 겨우 깨우쳐서 읽기는 하나 글의 내용을 모르고, 가위질도 힘들어 한다. 공감 능력이나 감정 조절력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니 친구들을 따라가느라고 몸부림치는 실정이다.

생일이 빠른 친구들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이나 조작 능력이 뛰어나며 운동까지 잘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나 좌절감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자주 울거나 삐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지는 경우도 있으며 또래 관계에서도 원만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자기 물건을 못 챙기기도 하고 집중도가 낮고 주의산만한 경우도 생일이 늦은 학생이 훨씬 더 많다.

나이 어릴수록 ADHS 비율도 높아

독일의 연구 결과를 보아도 또래 친구들보다 어린 학생들에게서 ADHS 증후군이 많다고 한다. 독일의 새 학년은 주에 따라 8월 또는 9월에 시작하여 다음 해 6월 또는 7월에 종료된다. 이에 9월 31일을 기준으로 6세가 되는 아동이 그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으며 같은 해에 입학하는 학생 가운데 9월생 아동은 실제로 10월생 아동보다 약 1살이 어리다.

뮌헨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학년이라도 9월생 아동이 생일이 늦은 학급의 동료보다 ADHS(주의력 결핍 및 행동장애)로 진단 받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 1학년 만 보아도 그렇다. 해당 연구는 독일 전역 4~14세 아동과 청소년 7백만 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실시되었으며,연구 결과에 따르면 같은 해 입학한 학생 가운데 9월생이 ADHS로 진단받는 비율은 5.3%로 한 살 정도가 많은 10월생 동급생 4.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ADHS로 진단받는 비율이 높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ADHS로 진단받는 비율이 높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당 연구의 연구자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과잉 행동을 하고 부주의한 경향이 있어 ADHS로 진단받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지금 현재도 이러한데 그 나이를 한 살 더 아래로 1학년이 시작된다면 그 시행착오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 5살 입학 연령 추진은 아동 발달 수준을 무시한 정책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을 향해 가지만 아동의 발달 속도까지 진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질 개선이 먼저

오히려 입학 연령을 낮추는 정책은 사교육에 불을 지를 게 뻔하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와 관련이 깊다. 서로 비교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문화, 같은 노동이면 같은 임금을 받는 인간적인 일자리 풍토와 같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저출산 대책으로 더 맞다고 본다.

지금보다 엄청난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많이 낳아 기르던 윗세대가 느끼던 행복의 체감도가 지금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정이 흐르던 그 시절, 서로 아끼고 공감해 주던 그 따스함을 되찾게 하는 일,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주고 국가와 사회가 안전망 구실을 잘 해주는 풍토, 갑질로 누군가를 짓밟는 세상이 아니라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교육신문, 전남교육소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만5살 입학, #저출산대책, #초등1학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