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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떠도는 합성 사진. 옳은 방식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떠도는 합성 사진. 옳은 방식이 아니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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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정준하의 해가 될 것 같아요. 2016년이 무슨 해죠?"
"병신년(丙申年)."
"네? 내년이 진짜 병신년이에요?"
"병신년이에요."
"와, 그러면 진짜 준호 형(정준하 별명) 해가 맞네!"
"하하하하."
"정준호! 정준호! 정준호! 병신년! 병신년! 병신년!"

지난 12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불만제로 특집의 한 장면. 대부분이 웃었다. 우연하게도 어떤 욕설과 같았던 2016년의 또 다른 이름은, 그렇게 유머러스하게, 또 장난스럽게 방송의 소재가 되었다.

 MBC <무한도전>에서 '병신년'이 유머소재로 쓰이는 장면
 MBC <무한도전>에서 '병신년'이 유머소재로 쓰이는 장면
ⓒ 무한도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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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방송뿐만이 아니다. 각종 커뮤니티의 게시글과 댓글에도 병신년을 소재로 한 농담이 가득 들어찼다. 이 농담은 아주 쉽고 편하게 많은 이들을 즐겁게 했다. 병신년은 건강하게 보내라든가, 병신년은 힘내라든가 하는 식으로. 이 유머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서도 동원됐다. '박근혜 병신년 지지율', '박근혜 병신년 연하장' 따위의 글들이 그렇다.

시기적 특성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병신'이라는 비속어가, 그 보수적인 공중파 방송에서도 개그로서 소화될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방송 때문만은 아니다.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 병신이라는 욕설은 어디서든 비교적 쉽고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가벼울 수 없는 그 말의 무게

'병신(病身)'이라는 말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만, 과연 그 말이 그렇게 가볍게 소비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제는 욕설로 전락한 이 단어는, 근대 이전에 그저 장애인을 가리키는 언중들의 구어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병든 몸을 뜻하던 말이 조선 시대를 거치며 뜻이 바뀌어, 신체장애인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시간이 흘러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 더 나아가 인격적 결핍까지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이 단어에 특정한 시선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눈초리에 담긴 것은 경멸과 조롱이었다.

'모자라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장애인들에게는 그런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병신이라는 말은 이윽고 욕설이 되었다(또는 되어 왔다). 장애인이라는 뜻과 장애인이 가진 온갖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쓴 단어가 바로 병신이다.

국립국어원은 <장애인 차별 언어의 양태에 관한 연구(2009)> 보고서를 통해 '병신'이라는 단어가 여타 단어 중, 장애인 차별성이 가장 높은 말임을 보여준 바 있다. '병신년'이라는 단어가, 공중파 방송에서 연호되고, 커뮤니티를 채울 만큼 가볍고 편한 단어가 아닌 이유다.

당신의 농담에, 누군가는 운다

지난 24일 밤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버전뉴스' 코너에서 개그맨 김대희씨가 턱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버릇을 연기하고 있다. 지난 24일 밤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버전뉴스' 코너에서 개그맨 김대희씨가 턱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버릇을 연기하고 있다.
 2006년 <개그콘서트>의 '버전뉴스' 코너에서 개그맨 김대희씨가 턱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버릇을 연기하면서, 틱장애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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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오래전부터 '병신'이라는 말을 방송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병신. 그 자체로 차별적이었던 단어는 장애 당사자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어왔다.

그 상처를 본 뒤에도, 악의는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저 농담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안다. 장애인을 겨냥해 한 말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순수한 농담이라는 당신의 의도가 그 말의 폭력성을 희석해주지는 못한다. 늘 의도와 결과가 비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신이 장난으로 던진 돌은, 늘 파문을 남긴다. 학습과 각인을 통해. 병신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시각은 농담을 통해 더 깊게 새겨진다. '병신 육갑 떤다'거나 '곱사등이 짐 지나 마나', '소경 잠자나 마나' 같은 속담들이 어떻게 차별을 내화하고 장애인을 희화화했는지를 보라.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뿐만 아니다. 누군가가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고, 희화화하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 없이 '병신년'이라는 조롱을 하고, 또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다. 장애인이 아니므로 얻을 수 있는 특권.

그렇다. 누군가는 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이다. 다수에게서 소수로 향하는, 강자에게서 약자에게 향하는. 비장애인에게서 장애인에게로 향하는 비대칭적인 권력. 당신이 누군가를 차별해야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병신년(丙申年)을 농담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

단, 아래의 통계를 당신과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믿어 버릴 수 있다면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구 273만 명 중 후천적 장애인 경우가 88.9%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장애인이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이라는 것이다.

100명 중 6명. 교통사고, 화재사고, 추락사고, 암 등의 질환을 당신은 피해갈 수 있다고 얼마나 자신할 수 있는가. 당신이 아직 웃을 수 있는 건, 운이 좋았을 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당신, 또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저주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병신년이라는 농담에 킬킬댈 수 있는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지영 사무국장은 지난 16일 인권연대 칼럼을 통해 "문장의 맥락에서 병신년(丙申年)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놀리거나 무시하기 위하여 병신년(丙申年)을 섞어 쓰지만 충분히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표현들이 많아질 것"이라 지적했다. 이제 그만 그 농담을 멈추는 게 어떨까.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병신”에의 시선(視線) - 전근대 텍스트에서의 -, 박희병, 한국고전문학회, 고전문학연구 24권0호 (2003), pp. 30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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