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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강기욱 청렴감사팀장이 지난 15일 전국공무원노조 기장군지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갈무리
 부산 기장군 강기욱 청렴감사팀장이 지난 15일 전국공무원노조 기장군지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갈무리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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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기장군지부(아래 기장지부)가 지난 16일 성희롱과 폭행, 직권남용, 선거법 위반 등 네 가지 혐의로 오규석 기장군수를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수사의뢰한 가운데 중간 관리자인 한 공무원의 양심선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강기욱 군 청렴감사팀장은 실명으로 지난 15일 기장지부 인터넷 홈페이지(http://gijang.kgeu.org) 자유게시판에 '사랑하는 후배 공무원들에게'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명약관화한 인사 불이익을 감수하는 내용이었다.

자치단체에서 요직으로 꼽히는 감사팀장이 인사권자와 맞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 '지방공무원의 꽃'이라 불리는 사무관 승진을 코앞에 둔 공무원이 이런 글을 쓰기까지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듯하다.

강 팀장의 글이 게시되자 2일 만에 2909건의 조회로 기장지부 인터넷 홈페이지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동료와 선·후배 공무원으로 보이는 누리꾼들은 52개의 댓글로 강 팀장을 응원했다.

강 팀장은 글의 통해 그동안 방관자였던 자신을 자책했고, 공무원노조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군수의 행태를 지적하며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기장군수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동안 갈팡질팡하던 행보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면서 "그의 결정과 동시에 저의 고민도 이제 종지부를 찍을까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군수를 향한 기장지부의 저항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을 글로 풀어냈고, 감사팀장 직을 내려놓고 기장지부 조합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지도 벌써 4개월이 다 되어 가는군요. 군청 앞에서 첫 번째 집회가 있은 직후 군수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전 후배들과 동료들이 군수와 싸움을 할 때 한발 물러서서 바라만 봤습니다. 감사팀장은 노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그런데 이제는 그런 핑계를 대지 않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은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이 자리에 온 이후 혹시나 있을 군수의 명을 가슴졸이며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대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은 군수가 사퇴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이 그러할 진 데 계속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조직에 누가 되고 제 양심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 듭니다. 앞으로 저는 감사계장의 역할은 내려놓고 기장군 공무원 노동조합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부산 기장군 강기욱 청렴감사팀장의 글에 달린 댓글 갈무리
 부산 기장군 강기욱 청렴감사팀장의 글에 달린 댓글 갈무리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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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팀장은 인사부서에 인사 조치를 부탁했고 지난 5년 간 있었던 군수의 행위를 지적하며 침묵했던 지난 날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한데 미약하지만 보태겠다'고 했다.

"저의 뜻이 이러하므로 인사부서에서는 본인의 뜻을 존중하여 적절한 인사 조치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현 군수의 직원에 대한 인격모독, 불법적인 인사전횡, 부조리한 예산집행 등등.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단지 내 일이 아니니깐 내가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애써 내 귀를 막으며 모든 것을 외면한 채 침묵했습니다.

후배들이 선배로써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해도 모른 척 했습니다. 후배들의 수많은 외침들을 외면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늦었지만 후배 여러분들에게 참회 드리며 더 이상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공무원도 노동자가 맞습니다. 단지 좀 특별하다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부당하다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당한 지시에는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단결된 힘만이 우리의 권익을 찾고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약하다면 언제든 우리는 과거와 똑같은 경우를 당합니다. 미약하나마 제 조그만 힘을 조직에 보태고자 합니다."

강 팀장은 "지난 19년의 공무원 생활이 나 하나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결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고자 한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강 팀장의 글에 누리꾼들은 "힘든 결정 감사하다", "선배로서 존경한다. 제2, 제3의 계장님이 나오길 바란다", "간신배 간부공무원 정신 차려라", "글 읽고 왜 이렇게 울컥 한지요",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등의 반응을 내보였다. 또 "감사계장 양심선언에 노조대응 감찰 뒷조사는 우짜노?"라며 군 측을 걱정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기장군지부, 오규석 기장군수 검찰 수사의뢰

전국공무원노조 기장군지부가 지난 16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규석 기장군수를 검찰에 수사의뢰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기장군지부가 지난 16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규석 기장군수를 검찰에 수사의뢰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공무원노조 기장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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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장군지부는 지난 16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 부산여성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오 군수를 검찰에 수사의뢰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기장지부는 이날 "지난 5년간 군청 여직원들을 사적인 술자리에 동석시켰으며, 관리자에게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해 노래방까지 참석토록 했다"면서 "특정 여직원들을 업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출장지에 동행시키고, 일부 여직원들에게는 밤늦게 사랑 고백 문자를 보내며 일방적인 구애를 하는 스토커 수준의 성희롱을 자행했다"고 군수를 고발했다.

기장지부는 이어 "오 군수는 지난 5월 선거법 논란으로 선관위로부터 경고조치가 내려지자 담당팀장과 과장을 집무실에 물러 책상을 내리치고 액자를 던져 깨뜨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여성 팀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자신이 갖고 있던 수지침을 놓는 등 이해 못할 행동과 늑장 대응을 했다.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직원을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폭로했다.

기장지부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직원에게 사건을 함구하도록 지시하고 측근을 시켜 담당 의사에게 '쇼크'가 아니라 '과로에 의한 의식불명'으로 병명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등 조직적인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기장지부는 "오 군수가 업무추진비를 편법 지출한 것과 노조와의 갈등 촉발의 계기가 된 인사전횡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공중 보건의를 동원해 이동보건진료소를 운영한 것이 공직선거법 제 113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기부행위에 해당한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도 제기했다.

기장지부는 지난 8월부터 매일 부서별 아침 선전전을 통해 오 군수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며, 기장·정관 등에서 세 차례의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한편, 이날 오 군수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군수는 "기장을 살리고 지방자치를 완성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때"라며 총선 불출마 이유를 밝혔지만, 지역 정가에선 불출마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새누리당의 '공천 원칙'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새누리당이 '기초단체장의 경선 참여 배제'를 당론으로 정한 만큼 군수 직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오 군수는 노조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부득이 본인과 기장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서 기장군 공무원 노조에서 더 이상 불법행위가 자행되지 않도록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법적·행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기장군, #강기욱, #오규석, #성희롱, #전국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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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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