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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씨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그린 전두환 전 대통령 초상화
 이하씨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그린 전두환 전 대통령 초상화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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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정오 12시, 약속장소인 신촌역에 나타난 이하씨의 모습은 별났다. 한겨울인데 양말도 신지 않고 슬리퍼만 신고 나왔다. "숙소가 이곳인가?"라고 묻자, "아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찻집에 들러 12일 밤 방송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전직 대통령(전두환) 초상화를 그려 퍼포먼스를 한 작가에게 대법원이 1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는 KBS보도가 있었는데 괜찮아요?"
"아하! 그거요! 벌금 10만 원이 나온 게 아니라 선고유예입니다."


한겨울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 그의 모습만큼이나 작품 활동도 별나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권력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몇 차례 벌여 기소를 당해 중범죄자(?)가 됐어도 그의 작품의지는 도통 굽힐 줄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으로 6번의 기소를 당한 경위와 대법 유죄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하씨는 2012년 5월 17일 새벽,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각에 핑크색 수갑을 차고 29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전두환이 그려진, 60 x 70cm 정도 사이즈의 포스터 200여장을 들고 연희동 전두환 집 앞을 찾아갔다.

경찰들이 골목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하씨는 포스터를 근처 골목길에 붙이기 시작했다. 붙이기 시작한지 두어 시간 후,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광주문화재단의 초대를 받아 5.18 특별전을 5월 초부터 한 달간 전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 퍼포먼스는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 3번의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날도 아무 문제없이 끝마칠 줄 알았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총 6번의 기소를 당하는 중범죄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죠."

연희 파출소에 연행되었을 때 경찰끼리 논쟁이 붙었다. 어떤 분은 훈방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경찰과 대화가 오갔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면 되겠습니까?"
"광주에서 수백명을 죽인 사람에 무슨 명예가 있습니까?"


이하씨는 그 자리에서 즉결심판 통지서를 받았다. 즉결법정에 출석한 그를 향해 " 이 사건은 즉결법정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며 경찰서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다시 경찰서와 검찰조사 후 벌금 10만 원짜리 약식기소장이 왔다. 민변소속의 변호사들과 상의한 그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1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이 흘러 대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선고유예지만 죄는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삐라(대통령이 그려진)를 뿌리거나 포스터를 붙이다 경범죄 위반혐의로 기소되었거나 재판중인 사람이 10명이 넘기 때문이다. 이 혐의로 재판받는 모든 이들이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포스터 붙였다고 벽이 무너졌습니까?"

대법의 판결이유를 보면, 창작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공공의 기본 질서를 위해 표현방식은 제한해야 한다는 것. 문구만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멋진 말이다. 이하씨가 설명을 덧붙였다.

"포스터 붙였다고 벽이 무너졌습니까? 삐라에 얻어맞아 누가 뇌진탕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종이쪼가리가 벽에 붙었다고 집주인에게 어떤 재산상의 피해를 주었습니까? 하루에 뿌려지는 광고 전단지들이 전국에 수십 수백만장 일텐데 그럼 하루에 최소 2천 명씩은 기소해야 할텐데 왜 광고전단지도 아닌 대통령이 그려진 전단지만 기소합니까?"

이하씨가 그림을 그리고 포스터를 붙이거나 삐라를 뿌린 것은 20번도 넘는다. 삐라 살포 후 30분쯤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예쁘게 그려서일까? 이런 현상에 대해 이하씨는 "그렇다면 이것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준법정신에 대해 얘기했다.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선 이하씨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선 이하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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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법을 존중하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하다못해 도로의 속도제한까지 철저히 지킵니다. 그러나 법보다 중요한 것은 양심입니다. 제 양심과 신념은 일반적인 상식과 상식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난 누구를 테러한 적도 피해를 준적도 없어요. 내 양심과 신념에 따라 예술을 하고 인생을 삽니다."

"예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정치도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은 그냥 세상입니다"라고 말한 그는 누군가가 세상을 가지려고 한다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어느 누구도 세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의 역할이 있고 정치의 역할이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정치가 세상을 가지려고 하고 언론, 교육, 예술까지 가지려고 하면 그 정치는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고 말한 그는 "정치가 권력을 이용해 세상을 가지려고 한다면, 예술은 정치를 예술의 세계에 가지고 와서 마음껏 조롱하고 갖고 놀아야 한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것이 독재시대 예술의 역할이며 앞으로도 난 나의 철학과 신념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그의 별난 짓(?)은 계속될 것 같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고 훌륭한 문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점, 현재 그나마 우리 시민들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민주주의의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민주주의를 빼앗는 것이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과거의 독재자들이 현재에는 바보 같은 이미지만 남은 바보들이 되었듯이 현재의 독재자들도 언젠가는 바보들이 된다. 역사는 결국 우리가 이기는 게임이다. 두려워 말고 마음껏 바보들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그의 퍼포먼스가 빨리 끝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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