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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2살 늦깎이 중국 유학생입니다.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올해 7월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내가 다녔던 대학은 대지가 100만 평에 달한다. 덕분에 학교 내 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웬만한 한국 대학보다는 넓지만, 땅 부자인 그들답게 중국 내에서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작은 도시의 대학교였지만 여기저기 돈을 쓴 느낌이 많이 났다. 중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작지만 운치 있는 폭포도 흐른다. 북쪽엔 작은 공원까지 조성해 놓아 어린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교정이 넓고 볼 것이 많아 근처 주민들이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다. 아직도 눈 감고도 학교를 그릴 수 있을 만큼 눈에 선하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던 학교 생활

중국의 하루는 한국보다 한 시간 이른 오전 8시에 시작한다. 강의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합쳐 약 2시간씩 배정되어 있다. 시간표는 홀수 주(단죠우, 单周)와 짝수 주(슈앙죠우, 双周)로 나누어 짜여 있다. 2주가 한 사이클이다. 가끔 달에 5주가 있으면 헷갈릴 때도 많아 핸드폰 달력에 표시해놓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 일정이 빡빡해졌다. 일학년 때 하루 두세 개던 강의가 삼학년이 되니 부쩍 늘어난다.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오후 6시 반부터 시작하는 저녁 수업까지 출석해야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과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나는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는 데 비해 다른 과였던 친구는 수업이 없어 한가했다. 저녁 수업 후 일학년은 열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아 들뜨면서도, 수험생 시절 생각에 괴롭기도 하다.

그 와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보다 긴 점심시간이었다. 넉넉하게 12시부터 2시까지다.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자면 딱 좋다. 실제로 대부분 중국학생은 낮잠을 즐긴다. 덕분에 오후에 졸리지 않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수업은 중국인과 같이 듣는다. 한국에서 1년간 열심히 준비했지만, 현지에서 중국어로 수업을 들으며 따라가려니 버거움을 많이 느꼈다. 끊임없이 통역을 요구했던 나 때문에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우들이 많이 귀찮았을 것이다.

고맙게 단 한 명도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부족한 중국어는 학교 측의 배려로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학당에서 보충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각 개인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리포트도 자주 내야 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중국은 출력한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 글자 수 제한도 있어서 2000자가 넘어가면 손부터 걱정됐다. 어떤 수업은 매 시간 끝나기 전에 500자씩 써서 내야 했다.

중국 필기체에 익숙해지기까지

학교건물 복도
 학교건물 복도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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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하며 들어간 수업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올바른 표준어로만 배웠다. 판서도 깔끔하게 적어주는 교수들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에 가니 교수님들이 쓰는 사투리나 각자 말버릇이 알아듣기 힘들었다. 칠판에 날려 쓰는 쓰는 글에도 까막눈이 됐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 공책을 훔쳐보아도 역시나 읽을 수 없었다.

처음엔 "중국인은 왜 이리 악필이 많담" 하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중국은 원래 사용하던 번체자에서 획을 줄인 간체자를 쓴다. 그러나 이 또한 여전히 손으로 쓰기에는 번거롭다. 그래서 빨리 쓰기 위한 중국식 필기체가 있는데,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모양이라 당최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서서히 글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 공책을 하도 많이 본 까닭인지 딱히 배우지 않았어도 어느새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쓰지는 못한다.

중국친구가 발표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친구가 발표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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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은 중어중문학이다. 한국으로 치면 국문학과다. 때문에 고대 문학도 배우는데, 어느 날은 중국 고대시를 외워서 교실 앞에서 읊어야 했다. 암기에는 약했지만 입에 붙을 때까지 외우고 외웠다.

툭 치면 줄줄 흘러나올 정도로 준비했지만, 사람들 앞에 서면 쪼그라드는 성격 덕에 나가자마자 기억이 송두리 째 날라 갔다. 새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리자, 교수님이 답답했는지 끝나지도 않았는데 들어가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내 잘못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악몽은 고대중국어 수업이었다. 고대 문학과 더불어 유학생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전공과목이니 피할 수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무리였다. 문법도 다르고 교재 또한 번체자로 쓰여 있었다. 중국인 친구에게 우는 소리를 했더니 나를 다독이며 대답했다.

"나도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넌 외국인이니까 교수님이 이해해주겠지만, 나야말로 진짜 큰일 난 것 같아."

그렇게 친구와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친구는 종종 나를 대신해 울분을 터트려 주곤 했다. "중국인도 못 알아먹는 고대 중국어를 외국인이 어떻게 해"라며 말이다. 본인의 스트레스 해소용 투덜거림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웃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요가조차 스케일이 달랐던 중국

학교에서 들었던 요가수업은 몸을 많이 유연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들었던 요가수업은 몸을 많이 유연하게 만들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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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학년 때는 교양과목으로 체육을 듣는다. 요가, 테니스, 당구 등 다양한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요가를 선택했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라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도저히 초심자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동작들뿐이었다. 체조에 가까울 정도로 몸을 꺾는 기인의 단계였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서서 허리를 숙였을 때 손가락 끝만 간신히 바닥에 스칠 정도로 뻣뻣했던 몸이 삼 개월 정도 지나니 손바닥 전부가 닿았다. 신기하게 수업이 끝날 때 쯤 안 되는 동작이 없었다. 다만 수업 이후로 지속적으로 하지 않자 몸은 빠르게 원상복구(?) 되었다.

만년필로 직접 쓴 한문, 깔끔하게 써지면 기분도 상쾌해진다.
 만년필로 직접 쓴 한문, 깔끔하게 써지면 기분도 상쾌해진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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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서예도 좋아했던 과목 중 하나다. 먹을 갈아 붓으로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자를 써내려 가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그 수업이 즐거웠던 가장 큰 이유는 중국친구들이 잘 쓴다고 칭찬해서였다. 그래서 더 신나게 썼던 것 같다. 그들이 한 말에 '외국인치고'가 생략되어 있던 것도 모르고 말이다.

모든 필수과목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중국어 수업은 비교적 쉬웠다. 내용도 어렵지 않았고, 수업이 술술 들려 재밌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배우던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과정 대부분은 쉽지 않았다. 졸업장을 거머쥔 지금에야 성취감에 취해 있지만, 당시에는 모든 것이 난관이고 고역이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일상을 위해 유학을 선택한다면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좌절감을 맛 볼 것이다. 실제로 유학을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만만히 봤던 나처럼 말이다. 유학은 결코 도피처가 아니다. 떠날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은 차분한 준비를 통해 그곳을 흠뻑 느끼길 바란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학교 내 먹을거리 편으로 다시 찾겠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중국수업, #중국교양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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