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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을 하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초원 풍경.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좋다.
 호주 여행을 하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초원 풍경.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좋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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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시골에서 온갖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한국 사람이 즐겨 찾는다는 모리(Moree) 온천에 갈 생각이다. 모리 온천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숙소를 제공하고 열린 마음으로 맞아준 지인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잘 포장된 시골 길을 운전한다. 도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려고 속도를 줄이는데 도로에 큰 뱀이 숲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옆에는 까치 한 마리가 뱀 주위를 맴돌며 호기심을 보인다. 오래전 호주 일주를 할 때 독수리 두 마리가 도로 한복판에서 뱀을 물고 하늘로 치솟던 모습이 생각난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면 캥거루를 비롯해 야생 동물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온천 가는 길은 아름답다. 봄을 맞아 들판은 움터 나오는 식물로 삶이 가득하다.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 모리에는 목화 재배를 많이 하므로 하얀 목화 꽃이 흩날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목화 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리에 가까워질수록 노란 유채꽃 봉우리가 들판을 덮고 있다. 보름 정도만 늦게 왔어도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구 만여 명 되는 모리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원주민이 옛날부터 살던 동네라 그런지 원주민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제법 큰 강이 도시 한복판을 흐르고 있다. 여행 안내소에 들러 온천을 찾으니 지도를 주며 수영장으로 가라고 한다. 온천을 소개하는 유인물은 볼 수가 없다.   

수영장을 찾았다. 온천이라는 표시는 없어도 유황 냄새가 난다. 규모가 큰 물놀이 시설과 규격을 갖춘 수영장도 있다. 수영장에서는 학생 몇 명이 코치를 받아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이런 오지에서도 코치와 함께 수영을 배울 수 있는 호주가 부럽다. 남한 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호주가 수영을 잘하는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온천을 즐기고 젊은 사람들은 물놀이를 즐긴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동유럽에서 왔음직한 사람들이 영어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로 떠들썩하다. 동유럽 사람들도 한국 사람 못지 않게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다. 

몇 년 만에 온천욕을 하니 좋다. 자동차에 오른다. 자동차에서 보니 나이 많은, 한눈에 봐도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일행이 수영장으로 걷고 있다. 근처 모텔에서 지내며 온천욕을 즐기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강가에는 원주민들이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에는 여유 있는 시골 사람들이 골프를 치고 있다. 유럽 냄새가 풍기는 돌로 지은 웅장한 건물도 있다. 오래된 동네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두 시간 남짓 운전해서 인버럴(Inverell)이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모리보다 큰 동네다. 모텔을 정하고 동네를 산책한다. 산책로에는 한껏 멋을 낸 아치형 다리가 동네 분위기를 돋운다. 식당을 찾아본다. 타이 식당이 있다. 요즘은 타이 식당이 중국 식당 이상으로 호주 곳곳에 들어서 있음을 실감한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운전과 온천욕으로 피곤해진 몸을 포도주를 마시며 푼다. 포도주 기운일까, 아니면 온천욕 덕분일까. 아침까지 푹 잔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근처에 있는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킹즈 플래인 국립공원(Kings Plains National Park)다. 내가 좋아하는 돌이 많다고 지인이 추천한 공원이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운전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한가하다. 야영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에서 잠깐 내려 인기척 하나 없는 주위를 둘러본다. 잘 만들어진 바비큐 시설만 덩그러니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더 들어가니 또 다른 야영장과 산책로가 나온다. 차를 주차하고 걷는데 캠핑할 수 있게 개조한 소형 짐차가 있다. 허름한 소형 트럭이다. 수염을 많이 기른 남자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태양열 발전기까지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오지를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삶을 사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자동차 번호판도 태즈메이니아(Tasmania)주 번호판을 달고 있다. 이 허름한 자동차로 호주 전역을 여행하는 모양이다.

산책로를 걷는다. 산책로 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가물어서 그런지 물은 많지 않아 바위로 된 바닥이 많이 드러나 있다. 물에 닳고 닳은 매끈한 바위다. 낙차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자그마한 폭포가 있으며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기며 산책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 돌아오니 인사를 나누었던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산책하러 갔을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왜 혼자서 호주를 떠돌아다닐까.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여행에 미쳐서일까. 아니면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사람일까.

물질문명을 등지고 성공과 발전이라는 강박을 벗어난 삶을 만나면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허름한 자동차를 특이하게 개조해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허름한 자동차를 특이하게 개조해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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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시드니 동포 신문(코리아 타임즈)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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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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