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저자 이충렬과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 -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 통치' 표지.
 저자 이충렬과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 -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 통치' 표지.
ⓒ 유성호 / 책표지

관련사진보기


22일 오전 0시 22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88년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였다. 대다수의 언론들도 '민주화의 큰 산이 사라졌다'고 그의 죽음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왜 군사독재세력과 야합한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큰 산이냐?"라며 그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최근 펴낸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한반도 삼국지>(이하 <한반도 삼국지>, 레디앙)를 통해 40여년 간의 '한반도 정치'를 '당대사의 시각'으로 조명했던 이충렬씨는 2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그러한 시각은 균형감각을 잃은 판단이다"라며 "YS가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없었다"라고 일갈했다.

"YS가 없었다면 한국 민주주의도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1986년 7월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과 김대중 씨가 서울 서린호텔에서 조찬회동을 하는 모습.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1986년 7월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과 김대중 씨가 서울 서린호텔에서 조찬회동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씨는 "YS를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군사문화를 만든 김종필과 손잡고 그에게 50%의 지분을 준 김대중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라며 "YS를 민주화운동에서 잘라내면 민주화운동세력은 김대중파만 남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이씨는 "김대중이 15년 이상 국내에 부재하거나 가택연금중이어서 YS가 실질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진두지휘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YS가 없었으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없었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YS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라고 평가했다.

이씨는 "리더십 측면에서도 YS는 시국이 어려울 때마다 선공(先攻)을 맡아 국면을 돌파했다"라며 "그렇게 국면을 돌파한 사람은 김대중이 아니라 YS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마항쟁을 촉발한 마지막 투쟁, 전두환 치하 반전두환 투쟁을 활성화시킨 단식투쟁, 역사상 야당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2.12 총선 등은 모두 YS가 주도했다고 봐야 한다"라며 "그런 점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한반도 삼국지>에서 "김대중은 논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지식인 스타일이고, 김영삼은 직관과 통찰력이 뛰어난 검투사 스타일이었다"라며 "정치적 성향은 김대중이 진보적이고 김영삼이 보수적으로 보였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는 다른 면이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김대중은 진보라기보다는 실용주의를 중심에 둔 정치인이었다. 일찍이 60년대 월남 파병에 조건부 찬성했고, 군벌 독재 세력과의 화해를 추구했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됐을 때 군벌 정권 출신의 핵심 인물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기용했고,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면에 김영삼은 국가경영에서 보수적 시각이 강했고, 독자적인 지성은 부족했지만, 독재정권과의 투쟁에 있어서는 예측불허의 승부수로 독재 권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한반도 삼국지>, 238쪽)

또한 이씨는 <한반도 삼국지>에서 "군사독재 정권 자체 평가에서도 논리적으로 움직이는 김대중은 오히려 다루기 쉽고,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김영삼은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없어 대응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라며 "양김의 정치동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는 환상적인 동맹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민주화운동 시기 '양김의 동맹'은 "보수적인 세력까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게 만드는 최대 연합의 창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 이후 '양김의 분열'은 한국정치에 씻을 수 없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양김의 분열이 의미하는 민주주의 동맹의 해체는 한 번의 패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지형이 바뀌고 역사의 흐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는 변곡점이 됐다."(<한반도 삼국지>, 300쪽)

이씨는 "김대중이 양보하고 YS가 대통령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YS가 김대중에게 양보하고 물러났어도 양보한 사람이 한국 역사에서 최종 승자가 됐을 것이다"라며 "우리 현대사를 위해서 굉장히 아쉽다"라고 말했다.

"양김의 쟁투가 남긴 과를 어떻게 극복할 거냐 고민해야"

이씨는 "YS가 야권의 패권싸움에서 밀려 결국은 군부독재세력과 손을 잡음으로써 YS의 역사적 위상을 스스로 망쳤다"라며 "또 한국 민주화운동세력에도 되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YS가 김대중세력, 민주화운동세력을 호남으로 고립시키겠다는 지역주의 연합에 가담함으로써 민주화운동세력이 온전하게 재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라며 "(그런 점에서) 노무현은 YS와 김대중의 지역분할정책의 희생자였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양김이 한번씩 대통령을 했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도 이룩했지만 그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력은 매우 취약하다"라며 "그때 뿌려진 분열의 씨앗이 지금 야권 전체를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지금은 양김의 공에 주목하기보다는 양김의 쟁투가 남긴 과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현재의 야권 지도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한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이씨는 "1987년의 경험에서 볼 때 양김 진영에서 후보를 양보하게 되면 대통령제 때문에 자기 계파의 존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라며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자기 계파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불신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하지만 당시는 누가 양보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사람이 상대를 죽일 수 없는 구조였다"라며 "연합한 상태에서 (양김이) 차례대로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영남 친노를 대변하는 문재인, 호남 민심이 선택한 박원순, 안철수, 손학규, 그리고 현실적으로 호남을 매개하고 있는 천정배가 서로 양보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큰 판을 만들면 모든 세력이 다 같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라며 "굉장히 중요한 것은 다수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정치에서 다수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다수파가 밀어붙이면 그 세력이 실리를 얻을 수 있지만 전체 판은 깨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 야당에도 필요한 것은 다수파(댱권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다"라고 말했다.

"부산 친노가 통크게 그림을 잡아줘야"

하지만 이씨는 현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문안박 연대에는 가장 중요 야권 지지기반인 호남이 빠져 있다"라며 "천정배가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체 수준으로 갈 때 연대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수용되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씨는 "1987년 김대중이 통크게 전략적 그림을 잡아줬어야 했듯이 지금은 부산 친노가 통크게 그림을 잡아줘야 한다"라며 "문안박 연대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그냥 치장만 바꾸겠다는 것인데, 천정배의 요구까지 수용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할 당시 반유신 시위 등으로 제적됐고, 이후 대우전자와 쌍용을 거쳐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조직부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994년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노사정위 책임 전문위원을 거쳐 지난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해 노 후보의 외교특보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자문위원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감사를 지낸 뒤 국내 최초의 보훈정책 연구서인 <보훈 복지정책의 혁신비전>을 펴내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하자 "당대에 내 역할은 없다"고 생각해 귀촌한 뒤 <한반도 삼국지>를 집필했다.

[관련기사]

왜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 패권세력이 되었나?
"다음엔 노무현-박근혜-김정일 삼국지 쓸 계획"

○ 편집ㅣ장지혜 기자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