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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금요일 1교시. 수능시험을 치른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수능 과목별 정답지 와 가채점 통계표를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 문을 열자, 예상했던 대로 교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가채점 통계표를 한 장씩 나눠주며 어제 본 시험 점수를 적어내라고 주문했다. 스마트 폰을 꺼내 인터넷에 나온 정답을 보면서 최대한 정확하게 채점해 보라고 요구했다. 채점 내내 교실 여기저기 아이들의 한숨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다.     

아이들이 채점을 시작한 지 약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한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울면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이유를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책상 위 구겨진 수험표를 본 순간 그 이유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사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 최상위에 있던 터라 학교의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시험 보러 가기 전날에도 교무실로 찾아와 수능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내심 걱정되어 잠시 교실을 조용히 시켜놓고 그 아이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교정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체육관 쪽 등나무 벤치에서 누군가가 훌쩍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자신이 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피했다.

가채점 하다 뛰쳐나간 학생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시험 시작 시간이 임박해지자 수험생들이 두손을 모아 눈을 감은 채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시험 시작 시간이 임박해지자 수험생들이 두손을 모아 눈을 감은 채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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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때문에 많이 속상하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말이다."
"……"

내 말에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위안이 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정확하지 않은 결과를 속단하여 앞으로 남아있는 대학입시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채점이니까 지금 점수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 결과는 나와 봐야지."
"선생님, 이번 수능 잘못된 거 아녜요? 분명 쉬울 거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시험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것에 화가 많이 난 듯했다. 그리고 이제 갈 대학이 없다며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속에 있던 이야기를 토로했다. 적어온 답과 수능 정답을 몇 번이고 맞혀 봐도 점수는 변동이 없었다며 한탄했다.

특히 1교시 국어시험을 보고 난 뒤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전혀 알 수 없는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을 낭비해 결국 몇 문제는 풀지도 못하고 찍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1교시 국어시험의 여파가 2교시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수학시험까지 망쳤다며 하소연하였다.

더군다나 3학년에 올라와 치른 매번 모의고사에서 줄곧 100점을 맞아 자신만만했던 3교시 영어시험도 단락 속에 몇 개의 어려운 어휘 때문에 해석이 모호하여 정답을 맞히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였다.

3교시를 마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4교시 탐구시간은 제일 자신 있게 문제를 푼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탐구영역 선택한 2과목 모두 만점을 맞아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무엇보다 몇 년 동안 계속된 쉬운 수능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각종 매체의 이야기만 듣고 심도 있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에 때늦은 후회를 했다. 

일찌감치 재수학원 알아보겠다는 아이들

문득 1교시 국어 시험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작년 수준과 비슷하게 출제했다는 수능 출제위원장의 말과는 달리 직접 시험을 치른 수험생이 느끼는 수능 체감 온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교시 국어시험이 끝난 뒤, 시험이 너무 어려워 '멘붕' 상태로 시험을 치렀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론과 실제가 너무 다른 출제위원장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3학년 ○반의 가채점 결과, 지난 6월과 9월에 치른 모의고사와 비교하여 성적(총점기준)이 향상된 아이가 고작 5명뿐이었다. 대부분 과목에서 성적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어떤 아이는 무려 총점이 50점 떨어졌다며 울먹였다. 심지어 수시모집 1단계에 합격한 아이 중 일부가 최저학력을 맞추지 못해 다음 주에 시행되는 대학 면접을 아예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 아이를 비롯해 학급별 상위권 학생 중 일부 아이들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아예 정시를 포기하고 부모님과 상의하여 일찌감치 재수학원을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단 한 번의 실패로 아이들이 일 년 동안 다시 입시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감돈다.

앞으로 수능 성적 발표일(12월 2일)까지 약 이십여 일이 남았다. 정확하지도 않은 가채점 결과에 너무 주눅이 들지 말고 수능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기말고사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에도 송고합니다



태그:#2016대수능, #수능가채점, #수능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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