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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랑 단풍 구경하려고요. 중학교 사생대회 때 왔던 곳인데, 데이트할 장소 고민하다가 생각나서 카메라 들고 왔죠. 그때나 지금이나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네요."

지난 10월 31일, 깊게 단풍이 든 나무 아래서 남자친구와 셀프사진을 찍던 이선민(24, 노원구 상계동)씨는 국립4.19민주묘지를 만족스러운 데이트 장소로 꼽았다. 다른 시민들에도 4.19묘지는 엄숙한 장소가 아니다. 코가 시큰해질 정도로 신선한 가을 공기와 넉넉한 햇살, 곱게 물든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4.19묘지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4.19묘지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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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4.19민주묘지는 1960년 419혁명에 희생당한 영령을 모시는 묘역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학생 데모를 시작으로 4월 19일 학생들의 데모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의사들과 공로자들이 묻혀 있다. 1963년에 3천 평쯤 되는 터에 건립되었다. 1994년 4월 19일에 국립묘지로 승격하면서 4만 평쯤으로 확장됐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을 생각하면 절로 머리를 숙이게 되지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표정은 티 없이 밝다. 유모차를 끄는 신혼부부, 등산복 차림을 한 중년 남성들,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즐기는 모습이다.

잔디밭에서 뒹굴며 배우는 '핏빛 역사'

역사적 비극이 깃든 장소를 교육, 오락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한다. 2000년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Glasgow Caledonian University)의 맬컴 폴리(Malcolm Foley)와 존 레넌(John Lennon) 교수가 함께 쓴 <Dark Tourism>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역사교훈여행'으로 우리말 다듬기를 했지만 아직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어두운 역사가 관광상품으로 변하는 모순,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곳이 뉴욕 맨해튼의 9.11 '그라운드 제로'다. 2011년 9.11 테러발생지 그라운드 제로는 테러현장을 원형 보존해 연간 수백만 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지는 관광 명소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깊이 9m, 면적 4천m² 규모의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도 한다. 국내의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는 광주 5.18묘역, 제주 4.3평화공원,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있다.

 부모들과 함께 4?19묘지를 찾은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곳곳을 살펴본다.
 부모들과 함께 4?19묘지를 찾은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곳곳을 살펴본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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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민주묘지는 서울시 강북구를 지키고 있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의 이름, 얼굴, 모두를 살피고 역사를 되돌아본다. 지난 10월 29일 공로자 한 명이 추가되어 366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이들이 흘린 피는 이곳의 공기를 무겁게 한다.

한편으로 공들인 조경과 분수, 벤치, 조각품들은 여느 유원지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 강북구에 있는 학교들은 백일장, 사생대회, 졸업앨범 등 행사를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한다. 민주묘지 관계자는 "사오월과 구시월에는 하루 한 학교 이상이 단체로 방문한다"며 "며칠 전에도 창문여고 학생 400여 명이 백일장을 왔다"고 말했다.

두 아이와 함께 묘지를 찾은 김경선(31, 강북구 인수동) 씨는 올해만 네 번째 방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한 번, 나머지는 아이들 손을 잡고 왔다. 그는 "봄가을에 아이들 데리고 소풍 나오기엔 이만한 데가 없다"고 말했다.

"묘지에서 기념사진 찍고 애들 뛰놀게 하는 게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강북구에 이만한 소풍지도 없어요. 깨끗하고 주차공간도 잘 되어 있고요. 애가 좀 더 크면 기념관에서 공부도 시키고 묘역도 참배하게 해야죠."

소란함과 정숙함이 공존하는 4.19민주묘지

 성역공간과 휴게광장을 구분하는 철탑이 사선으로 뻗어있다.
 성역공간과 휴게광장을 구분하는 철탑이 사선으로 뻗어있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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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 19일이 되면 검은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곳답게 묘역은 정숙함이 깃들어 있다. 반면 연못과 분수가 있는 다목적광장은 사람들이 재잘대는 소리로 '평화로운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 두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하늘을 향해 뻗은 철탑이다. 좌우 5개씩 서 있는 사선형 철탑은 민주 영령에 대한 충정의 감정을 고양하고자 제작한 것이다.

철탑을 지나 기념탑까지 가는 길 양옆에는 4.19혁명을 소재로 발표된 시를 각인한 '수호예찬의 비'가 줄지어 있다. 조지훈, 장만영, 송욱, 이성부 등 12명 시인의 작품이 화강암에 새겨져 민주화의 저항정신을 전한다. '수호예찬의 비' 앞에는 길이 12m의 청동 조각상이 성인 키만하게 놓여 있다. 잔디광장 좌우 양옆을 지키는 '자유의 투사' 조각상이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과 진압하는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고요한 잔디광장에 '협잡 선거 물러가라'는 울부짖음이 울리는 듯하다.

잔디광장을 지키는 '수호예찬의 비'와 '자유의 투사'를 지나면 4월학생혁명기념탑이 나온다. 화강석 탑주 7개로 구성된 이곳에서 합동 참배가 이루어진다. 4.19묘지 홈페이지에서 10명 이상 인원은 미리 신청하면 합동참배를 할 수 있다.

 4월학생혁명기념탑 아래 4·19혁명 당시 민중의 형상을 나타내는 군상환조와 참배단이 있다.
 4월학생혁명기념탑 아래 4·19혁명 당시 민중의 형상을 나타내는 군상환조와 참배단이 있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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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기념탑 뒤편에는 묘역이 마련돼 있다. 3개 묘역으로 나뉘는데 1묘역에는 4.19 전후로 당시 희생된 사람들, 2묘역에는 4.19 부상자, 3묘역은 공로자들을 안치한다. 5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3묘역 안치는 계속되고 있다. 묫자리가 얼마 남지 않아 유영봉안소 앞터를 4묘역으로 준비중이다.

초등생, 구두닦이, 영혼결혼한 대학생이 잠든 곳

4.19혁명의 주체는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학생과 시민이었다. 그 사실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장소는 묘역이다. 묘비 앞에는 사진이 붙어있고 사진 옆에 학교나 거주지가 쓰여 있다. 묘비 뒤에는 죽은 경위를 서술했다. 지금도 안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3묘역과 달리 1묘역 묘지에는 흑백사진 아니면 초상화가 붙어 있다. 1960년 당시 잠든 영혼들은 제각기 가슴 아픈 사연들은 가지고 잠들어 있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소녀는 고 진영숙양이다. 4.19 당시 한성여중 2학년이던 진양은 부정선거 규탄에 나갈 채비를 한다.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집에 오지 않자 메모를 남긴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니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저는 부정선거 규탄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친구,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저를 책하지 말고 건강하게 계세요.'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앞장선 중앙대 약대 3학년 김태년군과 법대 2학년 서현무양은 1960년 11월 11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앞장선 중앙대 약대 3학년 김태년군과 법대 2학년 서현무양은 1960년 11월 11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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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모가 유서가 될 줄 몰랐던 진양은 미아리 고개에서 '부정선거 옳지 못하다'고 외치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1묘역의 216개 안장자 중 가장 어린 희생자는 종암국민학교 4학년 임동석군이다. 당시 만 10세였다. 흑백 초상화 속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임군과 같은 초등학생 중 수송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던 전환승군도 가까이에 묻혀 있다. 전군은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다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4.19혁명 당시 사망한 초등학생은 6명, 중학생 17명, 고등학생, 대학생은 각각 40명 정도로 추정된다.

비극을 마주하려는 노력

자유, 민주, 정의의 가치를 붙잡기 위해 몸을 던진 시민들. 그들이 묻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지난해 108만여 명이었다. 올해는 9월까지 총 105만여 명이 4.19묘지를 찾았다. 각자 민주묘지로 발을 들인 이유는 다를 것이다. 참배하러 또는 아이에게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 방문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풍놀이를 하러 올 수도 있고, 억지로 끌려온 사생대회 장소가 하필 이곳일지도 모른다. 장소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변하지 않은 점은 366명의 영혼이 잠든 이곳이 앞으로도 계속 민주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크 투어리즘 관점에서 4.19묘지는 뉴욕 그라운드제로나 서울 서대문형무소 같은 곳과 비교할 때 장소의 매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재현하기보다 묘지로서 장소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먼 곳에서 수고롭게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보다 강북구 주민들로 대부분 방문객이 채워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그냥 묘역에 안주하지 말고 매력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일반 관광과 달리 상품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곱씹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활성화할 가치가 있다. 4.19묘지를 포함한 전국의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름 그대로 비극의 장소를 찾아 나서는 게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둠을 기억하고 체험할 때 우리의 내일은 더 밝아질 것이다.

 묘역 뒤편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4?19묘지.
 묘역 뒤편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4?19묘지.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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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매체 <단비뉴스>에 중복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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