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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이들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유우성씨는 제2의 인생의 시작이고, 변호인단은 잊지 못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이를 기록해야 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 유우성 간첩 혐의 무죄 판결, 변호인단과 '찰칵'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이들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유우성씨는 제2의 인생의 시작이고, 변호인단은 잊지 못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이를 기록해야 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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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0일 오전 9시 40분]

29일 대법원은 드디어 유우성씨에게 "당신은 간첩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건의 첫 단추, 동생 가려씨가 한국에 들어온 지 딱 1095일째인 날이었다. 약 3년 만에 모든 싸움을 끝나자 잔뜩 굳어있던 유씨와 변호인들의 얼굴은 180도 달라졌다. 선고를 마친 뒤, 이들은 법정 복도에서 서로 "수고했다"며 격려하느라 분주했다.

사실 이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세월이었고,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버텼다. '끝내 이기리라'라는 어느 노랫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피고인과 변호인 모두 끈질긴 덕분이었다.

숨지 않은 피고인, 제 돈 쓰며 미안해한 변호인

여느 북한이탈주민처럼 유씨는 한국에서 잘 살고 싶었다. 오빠를 따라 2013년 10월 30일, 중국에서 제주공항으로 들어온 동생 가려씨도 마찬가지였다. 두 남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입국하자마자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아래 합신센터)에서 이뤄지는 조사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20여 일 뒤, 가려씨는 "오빠는 간첩"이라고 자백했다. 2013년 1월 10일 유우성씨도 체포됐다. 악몽보다 더 악몽 같은 날들의 시작이었다.

유우성씨는 억울했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겠다며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국정원은 들어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1월 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인단(천낙붕·장경욱·양승봉·김용민·김진형·김유정)이 유우성씨를 찾아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씨는 싸우기로 마음먹었고 국정원의 회유를 견뎠다.

숨지 않은 그를 위해 변호인들도 움직였다. 이들은 검찰과 국정원이 주장한 유씨의 밀입북 행적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중국에 네 번이나 다녀왔다. 그 결과 공소장에 나오는 밀입북 날짜에 유우성씨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항소심 때 새로 제출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도 변호인단의 노력 끝에 위조임이 밝혀졌다. 이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증거 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김보현 과장과 그를 도운 재중교포 김원하·김명석씨 등을 기소했다. 29일 대법원은 이들의 유죄 판결도 확정했다(관련 기사 :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항소심도 유죄 나왔지만...).

그런데도 양승봉 변호사는 2014년 4월 11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제 시간과 돈을 쓰며 일하는데도 유우성씨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너무나 가혹한 행위에 대해 변호인이기 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인권 침해 사각지대' 합신센터의 베일 벗기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4월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대국민 사과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4월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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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를 벗는 것이 싸움의 전부는 아니었다. 유우성씨와 변호인단은 잘못된 대공수사 관행에도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특히 이들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던 합신센터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합신센터는 한국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다. 국정원은 이들을 합신센터에 최대 6개월간 수용하며 위장 입국 여부 등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벌인다. 이때 북한이탈주민들은 피의자에 가까운 대접을 받지만 한국 사정에 어두워 자신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

유씨 동생 가려씨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물론 자신도 북한 보위부 간첩이라고 했기 때문에 가려씨의 신분은 피의자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그에게 진술거부권, 변호인 접견권 등 기본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고 대부분 독방에서 지내게 했다. 위축된 가려씨는 '간첩 혐의를 인정하라'는 국정원 수사관들의 압박을 버텨내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3월 5일 열린 1심 증거보전절차 때 오빠를 처음 만난 그는 진술을 유지하기는커녕 계속 울기만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가려씨가 합신센터에서 진술한 내용들은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 조사과정에서 나왔다는 이유였다. 29일 대법원은 이 판단을 유지했다. '간첩을 잡는다'는 명분에 가려졌던 북한이탈주민 인권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 합신센터를 감시하고 통제할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그가 꿈꾸는 "평범한 삶" 언제쯤 이뤄질까

억울한 간첩 혐의를 벗고, 대공수사의 부끄러운 민낯까지 드러냈지만 유씨와 변호인단은 아직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유씨는 또 다른 형사재판의 피고인이다. 항소심까지 간첩 혐의 무죄 판결이 나오자 검찰이 2010년 기소유예처분했던 불법대북송금사건을 다시 들춰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배심원도 '보복기소'로 봤지만... 유우성씨 '유죄').

29일 대법원이 '유죄'까지 확정한 점도 문제다. 유씨는 간첩 혐의뿐 아니라 중국 국적을 가진 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감추고 남한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받은 일로도 기소됐다. 법원은 줄곧 이 혐의를 인정,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한국 밖으로 추방당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원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유죄 판결이 확정된 외국인은 강제퇴거대상"이라며 "(유우성씨 문제를 두고) 당장 결론을 내리진 않았지만 관련 절차에 따라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억울한 혐의를 벗었지만 유씨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모든 재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뤄지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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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유우성 스토리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유우성, #국정원 증거조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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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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