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집회와 행진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주말인 24일에는 시민 2000여명(경찰 추산 1000명)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모여 2차 범국민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에서부터 백발이 희끗한 역사학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거리로 나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찬성의견은 전주보다 6% 하락한 반면, 반대의견은 5%가 상승해 찬성 36%, 반대 47%를 기록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국정교과서 반발 기류에 결정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한 여고생의 1인 시위였다. 15일 서울 삼성고등학교 2학년 이다혜 학생의 사진과 영상이 공개된 이후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언니 오빠들의 사과와 자조가 줄을 이었다. 온라인을 가득 채운 열기는 천여명이 모인 17일 광화문 집회로 이어졌다. 이 에너지의 출처가 고등학생이라는 데에 정부와 여당은 각성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나라를 뒤집어놓은 대형 사건들은 대개 10대로부터 시작됐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최초로 항거한 것은 대구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야당 후보였던 장면의 선거유세에 힘을 빼기 위해 당국이 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를 강제하자 경북고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거리로 나섰다. 이후 대구고, 경북여고, 경북대사대부고가 동참해 1200여명의 고등학생이 "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깨끗한 선거를 촉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마다에서 발견되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은 당시 마산상고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계승하는 민주이념이 꽃을 피운 4.19 당일에도 고등학생들이 가장 먼저 교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동대문구의 대광고 학생들이 오전 8시 30분에 서울 중심가로 행진을 시작했고, 9시경에 움직인 서울대 문리대를 시작으로 대학생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이날 경찰의 발포에 사망한 고등학생은 숫자는 36명으로, 22명이 사망한 대학생의 1.5배가 넘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명동성당을 경찰이 포위해 물과 음식이 끊기자 담장 너머 계성여고 학생들이 벽을 기어올라 시위대가 있는 물과 도시락을 넘겨줬다. 2008년을 흔들어 놓은 광우병 촛불 집회도 첫 참가자의 60%는 고등학생이었다. 학생들의 옳은 목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낀 어른들이 하나둘 이끌려 나온 덕에 전국적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촛불집회가 두 달 이상 이어지자 MB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한 자리 수까지 떨어졌고,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 전반의 강한 반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되었다.

교육부는 16일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필요한 이유로 '한국 학생들의 성숙하지 못한 지적 수준'을 들었다. 비판의식이 결여된 어린 학생들이 선동될 것이 염려되므로 하나의 역사관으로 가르쳐야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망언 또한 잊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들의 국어사전에는 '성숙'의 동의어가 '부패' 또는 '오염'으로 등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미성숙'이 썩지 않았고 더렵혀지지 않았다는 말이라면, 한국의 학생들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 맞다. 아이들은 정의를 말할 때 주판알을 튕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직 이룬 것이 없기에 가능성이 무궁한 것처럼, 가진 것이 없기에 뺏길 것 또한 없다. 행여라도 그동안 일군 것을 잃을까 싶어 전전긍긍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용감하게 말하고 자신있게 행동한다. 어느 사회나 학생들이 가장 정의롭고 상식에 따라 움직인다. 배운 대로 행하고 아는 대로 실천하기에 비겁하지 않다. 보이는 대로 보며, 들리는 대로 듣기에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려낸다. 눈칫밥과 염치없음으로 무장한 어른들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해 어린 것들은 공부나 하라고 외쳐서는 곤란한 이유이다.

잔 다르크는 열일곱살에 신의 계시를 받고 고향을 떠나 영국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열일곱살의 나이로 팔도를 누비며 항전을 지휘하고 민심을 위로했다. 3.1 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또한 열여덟살의 나이로 충청권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독립정신의 불꽃으로 산화했다. 지금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 또한 그들과 같은 비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교복 입은 이들의 목소리를 계속 무시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2004년 탄핵 정국 이상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페이스북 계정에 친구공개로 올렸습니다.



태그:#한국사교과서국정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