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이 되니 마당에 만수국이 활짝 피었다.
 가을이 되니 마당에 만수국이 활짝 피었다.
ⓒ 조명신

관련사진보기


귀촌 598일째다. 글을 쓰면서 궁금해 날짜 계산기에 돌려보니 그렇다. 연재명이 '활골마을 생존기'이다 보니 뭔가 절박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늘 한가한 생활은 아니더라도 하늘 쳐다볼 여유는 있다.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이끌어 가는 느낌, 도시 생활과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말했듯 자기 주도형 학습이다.

많은 사람이 시골살이에 대한 우려로 문화적 소외를 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긴 하지만 결국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예술의전당 옆에 산다고 매일 공연을 보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지난해 귀촌한 후 오페라를 본 적도 있고 얼마 전에는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 산골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시골에 살아도 영화를 본다. 다만, 금산에는 극장이 없어 대전으로 나가야 한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아침을 먹은 후 바로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조조 영화 시작 1시간 전,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몇 번 반복하니 어느새 극장에 도착했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던 터라 주말을 기다렸다.

그럴싸한 현실을 잘 버무려 낸 <마션>

<마션>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는 화성의 기지 안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한다.
 <마션>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는 화성의 기지 안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관련사진보기


영화 <마션>을 봤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사이언스 픽션'(SF)이라는 것에 이끌려 보러 간 것이다. 에스에프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말로 흔히 '공상과학'이라고 표현하기에 뭔가 허무맹랑한 느낌을 주지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세계라는 점에서 '판타지'와 다르다.

<마션>도 그렇다.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실화 같은 영화다. 화성 탐사 중 모래 폭풍으로 인해 동료들은 철수하고 혼자 남겨진 주인공의 생존을 그렸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서 소금물 흔적을 발견했다거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상추를 길러 먹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처럼 영화는 그럴싸한 현실을 잘 버무려냈다.

이를 위해 나사의 전폭적 지원과 조언을 받았다는데 한 편의 세련된 나사 홍보 영상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영화 흥행으로 인해 나사는 한동안 예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영화에는 나사가 실제 연구 중이거나 개발한 기술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관련 기사에는 "99%의 과학적 사실에 1%의 영감을 더한 과학드라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기자의 평가인지 홍보사의 작문인지 헷갈리지만 그만큼 '리얼리티'가 높다는 의미일 게다.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에스에프라 하더라도 사실과 다른 오류는 지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주'나 '과학'에 대한 부분은 과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리얼리티' 높으나 '디테일' 떨어져

우리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다.
 우리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다.
ⓒ 조명신

관련사진보기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식물학자다. 화성에 갇힌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감자를 키워 식량을 조달한다. 시골에 살고 있어서인지 감자 재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난봄 내가 한 일이니까.

와트니는 기지 식당을 뒤져 감자를 발견하고는 실내 정원을 만들어 재배에 성공한다. 그리고 수확한 감자 일부분을 다시 심는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하다. 구조대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속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자연스러운 설정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게 감자라는 점이다. 감자는 그렇게 심을 수 없다.

감자는 수확 직후 다시 심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 다른 작물과 달리 감자에 있는 '휴면성'이라는 독특한 성질 탓이다. 종류와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감자는 보통 수확 후 90일에서 120일 정도 지나야 싹을 만드는 능력이 생긴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써놓으니 뭔가 단점 같지만, 실제 생활에선 오히려 장점에 가깝다. 감자 보관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바로 이 휴면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흔히 '솔라닌'이라는 독성물질 때문에 꺼리는 싹이 나지 않은 상태로 저장할 수 있다.

영화에서 추수감사절에 먹기 위해 감춰둔 감자를 우연히 발견해 재배하는 걸 보면 평범한 식용 감자로 보인다. 우주 재배용 특수 감자라거나 휴면성을 없애기 위해 특별한 호르몬 처리를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감자의 특성을 무시한 설정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과학적 '리얼리티'는 높으나 비과학적 '디테일'은 떨어진다고나 할까. 마치 맥가이버처럼 모든 것을 잘 해내는 마크 와트니가 현장 경험은 없는 식물학자였거나 혹은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식물학에 문외한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마션>은 여전히 재밌고 흥미로운 영화다. 나는 이렇게 봤다. 아니, 시골에선 에스에프도 이렇게 본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태그:#마션, #감자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