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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케어'의 AJ 가르시아 미국 법인 대표는 지난 9일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공관 앞에서 지난 8월 도축농장에 매각된 서울대공원 사슴·흑염소의 구조를 요청하는 단식을 시작했다.
▲ 단식 9일째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AJ 가르시아 미국 법인 대표는 지난 9일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공관 앞에서 지난 8월 도축농장에 매각된 서울대공원 사슴·흑염소의 구조를 요청하는 단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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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단식농성을 하는 제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나 어제부터 제 옆에 와서 기도와 노래를 하는 동성애 반대 예수 재단은 "왜 외국인이 남의 나라에 와서 간섭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비폭력을 위한 모든 활동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한국의 전역을 다니고 동물 학대를 직접 조사하며 한국의 동물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동물들을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 그뿐입니다.

저는요, 한 살 된 예쁜 딸이 있어요. 우리 딸 어제 저를 보러 와서 엄청나게 힘이 됐습니다. 우리 지구 안에서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도축농장에 매각된 서울대공원의 사슴·흑염소를 구하기 위해 지난 9일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공관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한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AJ 가르시아 미국 법인 대표. 그는 단식 8일째인 날 위와 같은 현장 메시지를 전해왔다.

무수한 의사·구조대원·자원봉사자들이 고통받는 약자를 돕기 위해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오늘날. 말 못하는 약자인 한국의 동물들을 구하려는 미국인의 단식을 그저 '간섭'으로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지난 8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사슴·흑염소가 도축농장에 매각된 후,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이 사건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증거물로 입수한 흑염소의 사체를 공개했다.
 지난 8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사슴·흑염소가 도축농장에 매각된 후,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이 사건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증거물로 입수한 흑염소의 사체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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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슴·흑염소 43마리가 '잉여동물'이라는 이유로 도축농장에 식용으로 매각됐다. 케어는 해당 동물들이 도축농장에 실려가는 현장을 추격·급습하여 이 사건을 폭로했다(관련 기사 : 식용 사슴, 알고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

케어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노력해왔다. 도축농장에 매각된 사슴·흑염소를 동물원에 복귀시키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번식을 제한하여 잉여동물 발생을 막아달라고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요청했다.

이에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않아 동물들의 재매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됐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이뤄졌다.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케어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장 임명 권한을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직접 호소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9일부터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박원순 시장 공관 앞에서 AJ 가르시아 대표의 단식농성이 시작됐다.

케어와 서울대공원, 사슴·흑염소 구조하기로 극적 합의

케어와 서울대공원의 합의 후, 단식을 끝내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AJ 가르시아 대표.
 케어와 서울대공원의 합의 후, 단식을 끝내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AJ 가르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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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날,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결국 협상을 제안해왔다. 그리고 3일간의 협상 끝에 동물들을 전부 구하고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18일 오전, 케어는 서울시청 앞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케어는 도축농장에 매각된 사슴·흑염소를 재수용하기 어렵다는 서울대공원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케어는 동물들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보살피고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라도에 있는 유기농 목장과 대전의 오월드 동물원에 나눠서 보내기로 서울대공원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케어는 해당 목장을 답사한 결과, 8만 평의 공간에 사슴·흑염소가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슴과 흑염소들은 서울대공원 동물원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신선한 풀을 뜯으며 살게될 것이라고 했다. 

AJ 가르시아 대표는 이번 사건이 "가정에서 기르는 반려견을 식용으로 도축장에 보낸 것과 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한국 사회에 개 식용 산업이 존재할지라도 반려견을 식용으로 팔면 비난을 받듯이, 이번 도축농장 매각 사태 역시 상식에 반하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비상식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국의 동물보호운동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단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대상마저도 식용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 동물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얘기다. 

"한국 공무원들, 어린이보다 동물에 대한 인식 수준 낮아"

파주 문산에 있는 파평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식 중인 AJ 가르시아 대표를 응원하며 영어 수업 시간에 만든 작품이다.
▲ 사슴은 우리 친구 파주 문산에 있는 파평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식 중인 AJ 가르시아 대표를 응원하며 영어 수업 시간에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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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 가르시아 대표는 동물 권리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음에도 정작 한국의 공무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어린이들조차 동물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의 법과 제도·행정 조직은 그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했다.

단식농성을 하는 동안 작은 천막조차 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비바람을 맞으며 밤을 새운 고통도 겪었다. 또한 농성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을 곁에 있지 못하게 감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돌려보내거나 멀리 떨어져 있게 해야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이에 반해 보수·종교단체 사람들이 시장 공관 앞에서 벌이는 시위는 무엇이든 허용하고 오히려 공손하게 대하는 시장 공관 관리자·경찰들을 보며 이 땅에서 동물권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 절절히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들은 본인이 단식하면서 당한 억압·무시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진심을 보여 줄 거라 기대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단식농성 동안 단 한 번 눈도 맞추지 않고 본인을 무시했던 것에 대해, "박원순 시장에게 동물은 보살펴줘야 할 약자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동물들을 도우려면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단결해야 한다면서, 동물보호단체 후원과 서명운동, SNS 활동 등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동물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해결된 것은 시민들 덕분이라고 하면서, 단식하는 동안 걱정하고 보살펴준 서울시장 공관의 이웃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높은 경제 수준만으로는 선진국 될 수 없어

18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
 18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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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와 함께 이번 사태 해결을 이끈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물복지 콘퍼런스(Asia For Animals Conference 2015)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전 대표는 콘퍼런스에서 한국 동물원 동물에 관해 발표한 후 외국인 활동가들로부터 "한국은 경제적으로 아주 잘 사는 나라인데 동물복지가 왜 그렇게 낙후돼있느냐?"는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겉보기에 아주 잘 살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오로지 높은 경제 수준만이 선진국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진정한 선진국을 만드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는 문화적·법적 장치"라고 했다.

이에 지난 두 달 동안 잘못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자세들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상식인 현실에서 큰 절망을 느꼈다고 했다.

또한 전 대표는 코끼리·사자·호랑이와 같이 소위 '비싼' 동물들은 동물원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대접을 받는 것에 반해, 사슴·흑염소·토끼와 같이 값싸고 번식이 쉬운 동물들은 형편없는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런 동물들을 보살피는 동물원의 직원들 역시 열악한 대우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전 대표는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귀하게 대우해야 그들을 보살피는 사람도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어느 동물원 직원의 말을 빌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잘못됐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지는 것이 바로 동물복지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동물원에 대한 감시를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케어와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합의문
1. 동물단체 케어와 서울동물원은 매각된 사슴과 흑염소의 재매입 후 수용할 동물원과 목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동·중성화 등 복지문제 전반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의 주체가 되고, 해당 동물원과 목장은 사슴과 흑염소를 자연적 죽음에 이를 때까지 책임 있게 보호하고 관리한다.

2. 사슴과 흑염소의 중성화 수술(수컷)은 서울대공원이 책임을 지고 시행한다. 중성화 수술은 이동할 동물원과 목장으로 이동 전·후 동물의 건강과 치료를 고려하여 실시하고, 해당 목장은 수술 후 회복관리에 책임을 다한다.

3. 사슴과 흑염소를 보호하게 되는 목장과 동물원은 사슴과 흑염소가 질병에 걸리면 신속하게 치료에 임해야 하며, 치료가 불가능하게 되어 고통이 지속화되었을 때는 수의사에 의한 인도적인 안락사를 시행해야 한다.

4. 사슴과 흑염소를 보호하는 목장과 동물원은 케어와 서울동물원의 동의 없이 모든 동물을 매각할 수 없으며,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5. 서울동물원은 향후 기존의 실험동물윤리위원회 내에서 동물원 동물복지에 대한 심의에 대한 논의를 확대할 것이며 이 위원회에 케어를 참여하도록 한다. 서울동물원은 추후 독립된 동물복지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6. 서울동물원은 향후 가축동물의 개체 수가 환경 수용능력을 넘어 늘어나거나 동물원 전시 기준의 변화에 따라 동물을 반출해야 할 시, 식용 등 상업적이고 비인도적인 도살·매매 등을 시행하는 업소에는 매각할 수 없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케어, #서울대공원 동물원, #식용 매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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