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친일독재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서 시민들의 서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서명운동 동참 호소하는 문재인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친일독재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서 시민들의 서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최대 현안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계속되는 내부의 '돌출행동' 등으로 당력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와의 '역사전쟁'을 계기로 당을 결집해 내년 4월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각오와 달리, 여당의 계속되는 공격에 방어전만 펼치며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지난 12일 낮, 문재인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나가 '역사왜곡·친일미화 교과서 반대'라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국정화 총력 저지를 위해 대여 투쟁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겠다는 방침이었다.

같은 날 오전, 새정치연합의 전직 지도부 인사들은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 주최한 행사에 총출동했다. 안철수·김한길·박지원 의원은 '새정치연합,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한목소리로 문 대표와 혁신위원회를 향해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여권과의 싸움이 막 시작된 상황에서 적군이 아닌 아군에게 총을 겨눈 모양새가 연출됐다.

당내에서는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김기식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로 보수 이념 프레임 구축을 시도하는 시점에 내부를 상대로 '낡은 진보 청산'을 제기하는 것이 야당 지도자로서 적절한가"라며 안철수 의원을 비판했다.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교수도 "문 대표가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하는 날 토론회를 연 것은 '거시기'하다, 타이밍을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강동원 '개표조작' 의혹 제기에 꼼짝 못한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전북 남원순창)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전북 남원순창)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근에는 강동원 의원의 뜬금없는 대선 개표조작 발언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손에 역공할 기회를 쥐어줬다. 강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2012년 대선 개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근혜 대통령은 정통성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이 강 의원의 발언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대정부질문 질의자들은 질문 요지를 원내지도부에 미리 제출해 의제를 조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이 지난 12일 사전 배포한 대정부질문 의원별 질의 요지에는 강 의원이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 논란'을 물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원식 기획부대표와 이춘석 수석부대표가 사전에 강 의원에게 주의를 줬다고도 한다. 내용을 파악하고도 제재하지 못한 것이다.

일이 벌어진 후의 대응도 지리멸렬했다. "강 의원의 발언은 개인 의견으로, 당의 입장과 무관하다"라는 공식 반응뿐이었다. 논란의 당사자인 강 의원은 대정부질문이 끝난 직후부터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는데도 연결이 안 돼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 간의 '네 탓'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대정부질문 자체가 원내 사안이기 때문에 당 대표가 나서 조치를 취하기가 애매하다"라면서 이종걸 원내대표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원내 관계자는 "당이랑 원내가 따로 있나, 문 대표가 먼저 강 의원 발언과 관련해 '부적절했다'는 식으로 세게 나가줘야 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장이 커지자, 원내지도부는 15일 강 의원을 국회 운영위원직에서 사퇴시키기로 결정하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문 대표도 이날 강 의원 발언을 두고 "상식적이지 못하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사태 발생 사흘 만이다.

새정치연합이 갈피를 못잡는 사이, 가만히 앉아 호재를 잡은 정부·여당은 즉각 '대선 불복'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판 뒤집기에 나섰다. 내부 '돌출 발언'의 덫에 스스로 빠져 역공을 자초한 셈이다.

결집 가속화하는 보수층, 우위 빼앗긴 야권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집모, 콩나물모임 주최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뭐가 문제인가'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집모, 콩나물모임 주최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뭐가 문제인가'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내용의 새누리당 현수막을 두고 국가보안법 위반 검토 방침을 밝힌 것 역시 너무 앞서간 듯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4일 "현행 교과서는 교육부의 검·인정을 통해 합격 받은 도서다, 역사교과서에 주체사상이 그대로 담겼다면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라며 교육부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고무·찬양죄를 위반했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새누리당이 허위사실 유포로 교과서 집필진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법적 대응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과 국보법 위반 혐의는 양립할 수 없다.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국보법을 어겼다고 고발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현수막 내용이 사실이면 국보법 위반이나 다름없다'는 정치적 수사는 가능할지 몰라도, 진짜 법적으로 대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노무현 정부 때 폐지를 추진한 국보법을 꺼내드는 것 역시 자가당착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음 날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현수막을 철거하겠다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국보법 위반 검토'에서 '사과 요구'로 선회했다.

내부 잡음과 불분명한 대응이 계속되는 새정치연합은 여권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은 47.6%, 반대 의견은 44.7%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역사 전쟁'을 더욱 밀어붙이려는 기세다. 이번 교과서 파동으로 지지층을 결집시켜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심산이다.

새정치연합이 더 이상 여권의 프레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부를 제대로 정비해 전략적 공세 모드로 하루 빨리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야권은 교과서 이슈를 계기로 지지층과 중도층을 모두 끌어와야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라며 "여권의 공격에 방어하는 자세만 취해서는 안 된다"라고 조언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교과서 파동을) 실질적으로 저지시키기 위해선 전략적 시야와 기획이 필요하다"라며 "'비정상-정상', '이념집단-글로벌스탠다드' 식의 구도를 통해 우군을 최대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의 명운을 건 '역사전쟁'에 뛰어든 새정치연합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태그:#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박근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여의도 본색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