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롯데, 현대 등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추석을 앞둔 지난 25일경부터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란 이름으로 가을 정기 세일을 시작했다.
 롯데, 현대 등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추석을 앞둔 지난 25일경부터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란 이름으로 가을 정기 세일을 시작했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서울은 경기가 좀 어떤가요. 지방은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네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도 하고... 형님네 장사는 괜찮지요?"

추석 때 고향에서 만난 후배가 술자리에서 장사는 어떠냐고 묻는다. 뻔한 경기에 나 혼자만 떼돈 벌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그렇다고 시시콜콜 어려운 속사정을 다 내보이기도 난처한 일. "뭐, 그냥 그렇지 뭐"라며 대충 둘러대고 화제를 바꾼다. 취직 여부가 백수 청년들이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라면, "장사 잘 되느냐"는 겉치레 인사는 나 같은 자영업자는 안 들었으면 질문이다.

내수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연구기관과 경제학자들이 쏟아내고 있다. 시장이나 서민들도 희망보다는 걱정을 앞세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무한정으로 쏟아냈던 내수 활성화 정책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약발이 온데간데 없고 가계 부채 급증 등 부작용만 키워왔다. 처방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처방이 그르니 내수 경기는 오히려 뒷걸음치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만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드는 것이다.

나아질 기미 보이지 않는 내수 경기

정부가 또다시 내수 활성화 정책을 내놨다. 일명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 미국의 연말 최대 할인행사를 본 떠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과 편의점을 망라한 대대적 할인행사로 소비를 늘려 내수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10월 1일부터 2주간 정부 주도로 시행되는 이번 행사는 기간이나 규모 면에서 최대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번 행사를 평가해서 연말 특화된 세일행사를 추진하고 행사를 정례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대로 최대 규모의 행사가 거기에 걸맞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백화점, 대형마트만 붐빌 뿐 재래시장은 행사 참여 여부도 알기 힘들다. 행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조차 재고 떨이냐며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정기세일보다도 못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방적이고 즉흥적인 정책이 빚어낸 전시행정의 후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낸 곳에 있지 않다. 정부의 의도대로, 미국처럼 일 년 소비의 20%가 '블랙프라이데이'기간 동안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대기업 매출일 뿐, 내수 활성화의 척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그랜드 세일 기간 동안 늘어나는 소비는 결국 서민들에게 버거운 카드 대금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위험 요소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 성공 여부에 앞서 논해야 할 것은 '내수 활성화=그랜드 세일(블랙프라이데이)'라는 정부 처방이 올바른가를 짚어 보는 것이다.

대기업이 내수 활성화의 첨병? 어이없다

백화점 71개, 대형마트 398개, 편의점 2만5400개, 대형 유통업체 2만6천여 점포.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한 업체의 면면이다. 재래시장 몇몇의 참여를 제외하면 대형마트, SSM 등 대기업이 소유한 업체들이고, 이들은 오랜 기간 문어발식 확장, 저임금. 납품업체 쥐어짜기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재래시장은 초토화시키고, 피자와 치킨 시장에 진출해 영세 자영업자를 길거리에 내몬 것도 이들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강요해 부를 축적해 온 것도 이들의 이력이다. 내수 침체를 핑계로 이들을 내수 활성화의 첨병으로 내세우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처사다. 

"혼수 장만으로 10월이 최고 피크철인데, 2주 동안 개점 휴업하는 것 같고. 손님들을 대기업한테 다 뺏기는 상황 같아요."
"손님? 없어요. 나라에서 백화점, 대형마트가 대규모 할인행사 한다고 광고하는데 누가 여기까지 오겠어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시행 다음날, JTBC 뉴스가 전한 침구업체 사장의 하소연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할인행사가 커질수록 재래시장과 영세 자영업자는 직접적인 매출 감소로 피해를 입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아무리 내수 진작 정책을 편다고 해도, 그것이 대기업 밀어주기에 지니지 않음을 상인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재래시장 상인과 자영업자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정책을 내수 활성화, 서민 살리기, 경제 회생의 포장지를 덧씌워 국민들 앞에 꺼내 놓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재벌 집착증'을 보여준다.

내수의 기본은 서민 호주머니 채우는 것

정부의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얼마나 알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청년 일자리 펀드를 만들면 대통령을 따라 비정규직까지도 몇만 원씩 낼 수 있다고 생각할까? 정부 주도 초대형 할인 행사를 기획하면 장롱에 쌓아 놓은 돈다발을 들고 대형마트 백화점이 터져 나가도록 국민들이 줄을 설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정부가 펼치는 내수 진작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부분의 정책은 서민 호주머니 털기를 우선한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도 변함없다. 서민 호주머니는 안중에도 없이 내수를 위해서는 돈부터 쓰라는 투다.

그러나 가계 부채가 1천조를 훌쩍 뛰어넘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서민들은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흔쾌히 참여할 여력이 없다. 손쉬운 해고, 저임금 정책을 고수하면서 국민들에게 통큰 할인행사를 내놓는 건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보다 더 비열한 짓이다.

내수의 기본은 서민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것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정책에는 저임금 정책을 고수하면서 소비를 늘려 내수를 살리자는 강변, 성장을 위해서라면 서민의 살림살이는 불쏘시개로 써도 좋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들어가 있다.

2015년 한국판 정부 주도 블랙프라이데이. 미국과 같이 흥행이 된다고 해도 내수가 살아나고, 서민의 살림살이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서민 살림살이에 검은 장막이 되지나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블랙프라이데이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