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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따뜻한 그림과 글로 담아낸 책. 그 모든 선입견과 수식어를 걷어내도 여전히 아름다운 작품. 귀가 유난히 큰 토끼 베니와 만나보고 싶네요.
 아픔을 따뜻한 그림과 글로 담아낸 책. 그 모든 선입견과 수식어를 걷어내도 여전히 아름다운 작품. 귀가 유난히 큰 토끼 베니와 만나보고 싶네요.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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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이 나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온다면 나 역시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감히 이 작품을 이야기하려 든다면 나 역시도 죽을힘을 다해야만 할 것 같아서.

듣지 못 하는 삶은 어떤가요?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구작가는 어릴 때부터 듣지 못 했다. 그래서 남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귀가 큰 토끼를 그렸다. 울 때조차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이 캐릭터는 작가 본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가진 콤플렉스나 장애는 뛰어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껴안을 뿐. 구작가는 모든 걸 받아들였다. 대신에 남들보다 사물을 잘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을 살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었던 저는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했어요. 엄마는 말을 해보지 못 한 제 혀가 굳을까 봐 설탕을 입 주변에 묻혀 빨아 먹는 연습을 하게 했어요. 계속 움직여야만 혀가 굳질 않으니까요. (중략) 아무도 모르는 나와 엄마만이 아는 시간.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지루하고 힘겨웠던 시간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네요."

싸이월드라는 이름의 미니홈피를 기억하는가?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사이트다. 남들이 싸이월드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공유할 때 그녀는 배경이미지를 디자인해서 판매했다. 즉 정식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것이다. 그것으로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어머니에게도 보답하고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저도 직업이 갖고 싶었거든요. 친구들이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저만 계속 제자리였거든요. 씩씩하게 도전을 시작했지만 작가가 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중략) 꼬박 9개월이 걸려 싸이월드 스킨작가가 되었어요. (중략)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을 인정해주었어요."

더 이상의 아픔은 주지 말았어야죠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2부에 해당하는 챕터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마구 울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은 그녀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다시 말해 시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미역국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구작가를 묘사한 그림은 한 없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긍정이란 무엇인가? 끊임없는 시련에도 좋게 생각하는 힘인 걸까. 자기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에서도 악바리처럼 일어나는 힘인가. 세상은 과연 공평한가? 그렇다면 왜 이 모녀에게 아픔을 주는 걸까? 들리지 않는 것조차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음에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눈물이 필요한 걸까?

하지만 구작가는 말한다. 소리와 빛이 없어도 아직 느낄 수 있는 두 손이 있다고. 그걸로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그녀가 가진 재능은 다만 그림을 그리는 기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거다. 애정을 담아 사람과 사물을 느끼지 못하면 그릴 수 없다. 그 힘은 그녀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소리를 잃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요.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어요. 아직 제겐 많은 감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직 느낄 수 있어요. (중략)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 계속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으니까요."

헤어진 친구 찾기와 살빼기 그리고 마라톤 참가하기 등은 그녀가 써내려간 버킷리스트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녀의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을 써오면서 한 번도 노골적으로 대놓고 말하지 않았던 바람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그녀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버킷리스트를 완성할 수 있기를. 그리고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저자 구작가|예담 |2015.02.17 | 페이지 272| 정가 12800원



그래도 괜찮은 하루 (기프트 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예담(2017)


태그:#그래도괜찮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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