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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목소리가 원래 큰 편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커졌어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25일, 세 명의 여성을 만났다. 별로 건장하지도 않은 체구,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다.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 홀로 사는 노인들 방문과 전화를 하는 것이 주 업무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거나 통화할 땐 목소리를 높여도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단다. 큰 소리로 설명을 끝내고 확인 차 물으면 또 딴소리. 목소리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내 담당구역, 노인 고독사란 없습니다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와 추석명절을 앞두고 홀로 사시는 어르신을 찾았다.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와 추석명절을 앞두고 홀로 사시는 어르신을 찾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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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애, 강옥자, 김남억씨. 7년 가까이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지역에서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 일을 해 오신 분들이다.

"비가 내릴 때나 눈이 왔을 때 심지어 한밤중에도 차를 몰고 산속 마을을 찾은 적도 많아요."

별일 없으신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만사 제쳐놓고 나설 수밖에 없다. 쪽방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님이 곤하게 주무신다. 나무랄 수도 없는 일. 전화를 왜 받지 않으셨는지는 뻔하다.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하신 거다. 진동으로 해 놓고 꼭 주머니에 넣고 계시라고 했는데 뭘 만지셨는지 벨 소리기능으로 바뀌었다. 허탈함보다 안도감이 앞섰다.

"대상자는 아니지만,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죠."

이곳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들이 담당하는 인원은 90여 명이다. 홀로 사시거나 자식들이 있지만,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일정 소득이 있지만, 부모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다. 법적으론 제외대상이나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빈손으로 들르기가 어색해 자비를 들여 두유를 사다 드렸다.

도시에서 고독사(孤獨死)한 노인을 며칠이 지나 발견했다는 뉴스를 본 이후 이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단다. 자식들이 연락을 끊었거나 방치가 문제라고 했다. 그런 분들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유란다.

밥과 된장국, 계란도 삶았다
화천군 사내면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 3인방. 좌측부터 김성애씨, 강옥자씨, 김남억씨
 화천군 사내면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 3인방. 좌측부터 김성애씨, 강옥자씨, 김남억씨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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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 줘서 고마워>

김혜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책 제목이 떠올랐다.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명절에 아무도 올 사람 없는데 찾아줘 고맙다'고 손을 잡을 때, 홀몸노인 친지나 자녀들로부터 '돌봐줘서 감사한다'라는 전화를 받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주일에 1회 방문, 2회 전화 확인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게 되나요. 아프신 분이 계시면 매일 전화로 확인하거나 찾아뵙는 게 도리죠."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들 급여는 69만 원이다. 추가로 지급되는 유류비 15만 원을 보태면 한 달 85만 원을 받는 셈이다. 시골은 도시와 다르다. 담당 범위도 넓다. 산허리도 훌쩍훌쩍 넘어다녀야 한다. '다리가 아픈데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어르신을 모시고 100여 리 떨어진 병원도 다녀왔다.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반찬이 남을 땐 배달도 서슴지 않는다. 방문날짜에 맞추면 음식이 상할 수 있다. 출발하기 전 일부러 달걀을 삶기도 한다. 모두 규정엔 없는 일이다. 그냥 더불어 사는 인정을 실천하고 싶다고 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인데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단다. 이들을 찾아 혜택을 받도록 조치도 취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꾸준한 소통의 결과라고 말했다.

당신의 부모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아이고 어여 와. 이거 가져가."

지난 25일, 관리사들과 쌀 포대를 메로 홀몸노인 방문에 나섰다. 할머니는 풋고추를 손질하다 맨발로 뛰어나오며 반기셨다. "면장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난 안중에 없다. 관리사 손을 잡고 풋고추를 한 줌 쥐여준다.

"추석 명절에 누가 오세요?"
"오긴 누가 와. 이런 생활이 오래돼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김은례 할머니(74세)는 17년 전 할아버지와 사별 후 늘 혼자였다고 했다. 이젠 익숙해져 괜찮다고 했지만, 쓸쓸한 표정까지 지우진 못하셨다.

낙이라곤 TV 보는 것이 전부일 텐데, 매시간 '귀성 행렬과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즐기는 설 풍경을 쏟아낸다.

"명절 연휴 기간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 보면 문득 늙으신 부모님만 남기고 떠나는 사람은 없길 바라요."

올해엔 유독 추석 연휴 해외 여행객 수요가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공항에선 '이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 준비에 한창이다'는 말도 들린다. 김성애 홀몸노인 생활 관리사의 말처럼 늙으신 노부모를 내버려두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길 바랐다. 어린 자식들은 그것을 보고 뭘 느낄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겠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독거노인 생활 관리사, #사내면, #화천군 사내면, #독거노인,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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