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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지러운데 병원은 안 가고 보건소 약만 드시면 어떡해요?"

두 주 만에 친정에 갔다. 경첩 위에 놓인 약 꾸러미의 정체를 알고 나는 놀랬다. 전화를 매일 해도 말씀을 안 하시면 친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앉았다 일어날 때 휘청하시는 게 눈에 띄었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어지러워서 갑자기 쓰러지시면 큰일이다. 아이들 학교시간이 되어 친정에서 서둘러 나왔다. 집에 돌아가며 어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야 하나 생각했다. 어지러움의 원인이 귀에 있는 경우도 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친정으로 전화해서 이비인후과 연락처를 알려 드렸다.

다음 날, 친정에 전화하니 계속 안 받았다. 팔순이 넘은 두 분이 병원에 잘 가셨을지 걱정되었다. 저녁에야 통화가 되었다. 이비인후과에 오전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며 당일 진료를 예약해줘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오는 길이란다. 아버지 상태가 심각한 건가? 팔순 넘은 부모님이 온종일 밖에 있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가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귀 검사 예약하고 왔어. 그리고 의사가 무슨 약을 먹냐고 그래. 아버지가 소변 잘 나오는 약 먹는다고 말하니까? 그 약 먹는 사람 중에 어지럽다고 오는 사람이 있다고 다음 검사 때까지 그 약을 먹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그 약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까 엄마 마음이 좀 놓이더라."

두 번째로 병원 가는 날, 모시고 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뇌 MRI도 찍고 귀 검사도 하자고 하는데 MRI는 60만 원이 넘어. 엄마는 과잉진료라고 뭐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예약 안 해서 섭섭하신가봐. 어떡하지?"

언니는 일단 귀 검사만 하는 것으로 예약했다. 귀 검사 후 이상 없으면 뇌 MRI를 찍기로 했다. 두 분이 내내 다투셔서 힘들었다며 다음번에 내가 병원 갈 때는 엄마는 모시고 가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큰 병원에서 귀 검사를 하고 뇌 MRI까지...

다음 예약일에는 오빠와 함께 갔다. 의사는 귀에만 이상이 있다고 보기에는 증상이 길다며 다시 뇌 MRI를 권했다. 검사비가 63만 원. 주의사항을 듣고 보호자 서명을 했다. 아버지 표정이 밝아졌다. 어지럼증이 귀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면 큰 일일 텐데 걱정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친정에 갔다. 엄마가 "너희 아버지가 아직도 소변 잘 나오는 약을 먹고 계시다" 하고 귀띔을 했다. 아버지에게 어떤 약을 드시는지 물었다. 비염약은 한의원에서 3개월 치 120만 원에 지어 오셨다고 했고 소변 잘 나오는 약은 어느 협회의 신문 광고 보고 주문한 약으로 이것도 한 16만 원 한다고 했다. 그리고 동네 병원 의사가 권한 비타민제도 드셨다.

"소변 잘 나오는 약은 병원 가서 처방받아 드셔야지 왜 그런 걸 드세요?"
"협회신문에 나왔으니까 믿을 만하지. 그리고 거기서 먼저 먹어보고 효과 있으면 약값은 나중에 내라고 했어. 얼마나 약효에 자신 있으면 그러겠냐?"
"아버지 신문은 광고랑 아무 상관 없어요. 그리고 약값 나중에 받는 건 다 상술이에요."

"협회신문을 왜 못 믿어?" 아이고 머리가 아프다.

"아버지, 일단 검사 전까지는 소변 약은 드시지 마세요."
"의사가 약을 줄이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야. 약은 먹어도 상관없어."
"너희 아버지가 저런다. 내가 아주 못 당해. 의사가 먹지 말라고 그러면 안 먹어야지."

엄마는 잔뜩 화난 목소리다. 그날 친정에서 나올 때 아버지 소변 약을 몰래 훔쳐서 나왔다. 이 약 때문에 매일 다투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뇌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아버지와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가 어떨지 몰라 긴장되었다.

"이석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귀 검사 한 번 더 해보죠."
"네네."

아버지가 답하셨다. 이석이 뭐지? 아버지는 이석이 뭔지 아시는 걸까? 그런데 의사가 검사결과는 안 알려주고 진료를 끝내려고 했다.

"뇌 MRI 검사 결과는요?"
"검사 결과요?"

의사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컴퓨터에서 검사 결과를 찾았다.

"뇌에 조그마한 혹이 있어요. 정확한 것은 신경과 쪽으로 가서 설명을 들어 보세요."

신경과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석'이 뭘까? 아버지께 물었지만, 아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까 '네네' 하셨잖아요? 잘 모르는데도 그냥 '네네.'하신 거예요?"
"응."

아이고 내 실수다. 아버지가 '네네' 하시더라도 자세히 물었어야 하는 건데. 이비인후과에 가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석증'이라는 병이 있고, '이석증'의 치료는 물리치료를 중심으로 약물치료도 한단다.

동네 병원에서 들을 수 있었던 자세한 설명

신경과 의사는 물혹의 크기와 위치로 보았을 때 어지럼증과 관련 없는 곳이라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뇌혈관 CT를 찍어보길 권했다. 다시 검사를 예약하고 약을 받고 나왔다. 뇌 CT를 찍은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 두 분이 병원에 방문했을 때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과 약 처방만 받아서 오셨다. 그렇게 대학병원 진료가 끝이 났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이석증을 치료하지 못한 거 같아 찜찜했다. 130만 원도 더 넘게 병원비를 들였지만 정작 아버지는 이석증 물리치료를 못 받았다. 약을 처방받은 게 끝이었다. 어지럼증이 계속되자 아버지는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고 한약을 새로이 드셨다. 한약 두 달 치에 160만 원이 들었다. 어지럼은 조금씩 좋아지긴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아갈지 아니면 더 큰 병원을 가야 할지 다녔던 곳에 다시 가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언니는 다녔던 병원 의사에게 전화 상담을 받자고 했다. 병원에 전화하기로 한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의사들은 전화로 상담 안 한다네."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전화해서 그간 사정 이야기하니 내원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곧장 가자고 했다. 아버지도 이석증이 찜찜하고 걱정이 되셨나 보다. 병원 가니 의사가 싹싹했다.
진찰한 의사가 말했다.

"이석증이 한 달 정도 되면 자연히 좋아지는 병이에요. 그래서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아버님은 증상이 남아있긴 하는데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러니 굳이 치료하실 단계는 아니세요."

그리고 간단히 할 수 있는 물리치료법을 알려줬다.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검사하고 치료받느라 큰 병원에서만 130만 원도 넘게 들었는데 한 달 뒤면 자연히 좋아진다는 설명도 듣지 못했다. 환자에게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 대학병원이란 곳이 이러니 더욱 한심했다. 부모님은 점점 아픈 곳이 많아지시는데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이런 경험을 더 해야 하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2013년 가을 일이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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